[문재인 시대] ​정부,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고민'…"실익 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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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길 기자
입력 2019-09-0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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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제시 시한 한달여 앞…대만 등 4개국 개도국 주장 안하기로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에 개도국 지위 개선을 요구하며 제시한 마감 시한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현지시간)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 WTO가 이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WTO에서 90일 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도국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4가지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에서의 비중이 0.5% 이상을 들었다.

트럼프가 제시한 마감 시한은 다음달 23일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WTO 내 다자간 협상에서 개도국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WTO는 회원국 스스로가 판단해서 자국이 개도국임을 선언하는 '자기 선언' 방식을 채택한다. WTO 협정·결정 내 개도국 우대 조항은 지난해 기준 155개이다.

개도국은 선진국보다 관세나 보조금을 덜 깎고, 관세 철폐 기간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996년 OECD 가입 당시 향후 협상 및 협정에서 농업 외 분야에서는 개도국의 지위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사실상 중국과 인도를 겨냥한 것이다.

WTO 내 가장 큰 화두인 수산물 보조금 금지와 전자상거래 협상을 두고 중국, 인도 등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의 갈등을 촉발했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에서 어획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중국인데 개도국이라는 이유로 보조금을 계속 허용한다면 협상의 의미가 없다"며 "중국이 더는 개도국을 주장할 수 없게 미국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농업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 만큼 수산물 보조금 협상에는 별문제 없이 참여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속하는 유일한 나라여서 계속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기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만약 한국이 계속 개도국으로 남는다면 중국과 인도가 한국을 핑계로 댈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자칫 미국 대 중국의 싸움이 미국 대 한국의 싸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해 30여개국에 서한을 보내 WTO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대만,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 4개 국가가 미국의 주장에 동조했다.

대만은 지난해 9월 WTO 무역정책검토 회의 때, 브라질은 지난 3월 미·브라질 정상회담 때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UAE는 7월 29일 개도국 특혜는 자국에 불필요하다고 말했고 싱가포르는 지난달 1일 자국은 개도국 특혜를 누리고 있지 않으며 미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10월 23일 마감 시한을 앞두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나라가 잇달아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앞으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할 협상이 사실상 없고 WTO 회원국 일원으로서 확보한 권리는 개도국 지위와 상관없이 계속 가져가게 된다"며 "개도국을 유지했을 때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 맞서는 것이 바람직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내 협의가 진행 중"이라면서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이 국제 통상의 농업 부문에서 지금처럼 개발도상국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개도국 지위가 주는 혜택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경제력 등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4가지 조건 때문에 (개도국 지위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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