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쓰는 日기업, 쌓아둔 현금만 5800조원...아베노믹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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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9-0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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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장기업 보유현금 역대 최대...미·중·일 제외 세계 각국 한해 GDP보다 많아

  • 장기불황 경험에 불확실성 대비 현금 쌓아둬..."펀더멘털 개선 결과" 반론도

"일본 기업들은 스크루지 같다."

가미야마 나오키 일본 닛코 자산운용 수석 투자전략가는 3일 블룸버그를 통해 씀씀이에 인색한 일본 기업들을 구두쇠의 대명사인 스크루지에 빗대며,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회사 성장이나 주주이익 환원을 위해 돈을 쓰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성장세를 자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2012년 12월 취임한 뒤 대기업 경영자들과 잇달아 골프, 식사 회동을 하며 투자확대,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공약으로 내세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들이 씀씀이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아베 총리의 노력과 압력은 통하지 않았다. 그가 경기회복을 위해 추진한 경제정책(아베노믹스)의 성과가 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506조4000억 엔(약 5785조 원, 4조8000억 달러)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는 일본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4조9700억 달러에 가까운 것으로 미국, 중국, 일본을 제외한 세계 각국의 GDP를 능가한다. 아베 총리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이후에만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30년에 이르는 장기불황을 겪으며 경영의 보수성이 짙어졌다. 일본 경제가 호황이던 1980년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미국 경쟁사와 랜드마크 부동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지만,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이어진 장기불황에 '야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투자자들은 불만일 수밖에 없다. 주헤어 칸 제프리스 일본 법인 리서치 책임자는 일본 기업들이 주주들에게 이익의 70%를 돌려줄 수 있으면서도 40%만 내준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은 일본 기업들이 현금을 움켜쥔 채 성장할 기회를 허비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아베 정권의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사주 매입(바이백)과 배당 등 주주이익 환원 규모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이 급증한 게 단순히 불경기에 대비하려는 보수 성향이 강해진 탓이 아니라,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개선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펠릭스 램 BNP파리바 홍콩 주재 아시아태평양 주식 포트폴리오 선임 매니저는 일본 기업들은 대개 부채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거들었다. 덕분에 큰 돈이 드는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할 때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주주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주주환원에 인색한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계속 현금을 쌓아올릴 것이고, 주주들에 대한 이익 분배는 이보다 더디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투자자들의 중론이라고 지적했다.

니콜라스 스미스 CLSA 일본 도쿄 주재 투자전략가는 "기업들이 바이백을 늘려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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