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진영의 광풍'이 나라를 흔드는 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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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19-09-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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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정부 '비판적 지지'가 빠져나가고 있는 까닭을 직시할 때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그들은 왜 지금 등을 돌리고 있는가


2년여 전 촛불정권이 출범했을 때, 그 많은 국민의 열광을 기억하는가. 지금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중에도 그때 가슴이 설렜던 이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땐 왜 그랬고 지금은 왜 달라졌는가. 

당시 국민들이 큰 기대감을 보인 까닭은 도덕성 높은 정부가 이성적인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이 나라를 바꿔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었다. 그 높은 지지율 속에는, 이 정부와 정확하게 이념의 궤를 같이하는 건 아니지만 상식과 원칙으로 지난 적폐들을 바로잡아가며 나라를 새롭게 부흥시키려는 의지에 갈채를 보내는 '비판적 지지자' 혹은 '지지적 비판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이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점에 이 문제를 직시하고, 근본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지 모른다.
 

[최진석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상국 논설실장. 사진=남궁진웅 기자]



#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진단 핵심은 '진영적 사고'

본지는 지난달 28일 철학자 최진석 교수와 와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찾아낸 난국의 최대핵심은 '진영적 사고'였다. 진영적 사고는 보수나 진보와 같은 정파(政派)적 특성에 자신을 투영하는 생각을 가리킨다. 그는 "우리나라는 '우리'에 갇혀 있다"고 단언했다. 그 우리는 존재를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고, 진영의 집단주의를 가리키기도 하는 말이다. 어떤 진영에 갇혀서 진영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으면서 자기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우리가 중진국의 목젖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후진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의 이념적 '분열'이 우리 사회의 잠재적 창의성과 뛰어난 역량들을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덕적이고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 문제를 풀어내지 않으면, 명실상부한 선진화와 일류적 가치지향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진영적 사고를 혁파하는 대대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왜 증오나 혐오 발언이 많아졌느냐의 문제에서도, 그는 자기 독립성을 갖지 못하는 '진영의 화신'을 거론한다. "진영의 논리에 갇혀 있으면, 사람이 굉장히 표독스러워집니다." 이들은 자신의 윤리까지 진영에다 맡겨놓고 있기 때문에, 표독스러움조차도 윤리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말한다.

# 진영적 사고가 6대 문제의 원인

'진영적 사고'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6가지 문제적 상황의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정치의 독주에 대한 견제나 비판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상식적이고 건전한 의견일 수 있는 대목도 정파와 진영의 문제로 해석해 방해와 거부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결정들이 비판이 차단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지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이 정부는 출범부터 적폐청산을 야심차게 주도해 왔다. 국민적 관심사였던 적폐청산은 전시대에도 있었던 '정치청산'의 의미를 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정파적 입장에서의 청산은 상대 정파를 일소하거나 위축시키는 청산이 되며, 이것은 국가의 진화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동일한 레벨끼리의 씨름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정한 적폐청산이 되려면, 진영을 떠난 국가적인 큰 그림이 필요하며 이것이 선진국의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셋째, 외교적 고립을 부른 것도 진영적 사고에서 빚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진영적 사고는 내편과 네편을 엄격하게 가르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특정국가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할 수 있고, 또 다른 국가에는 과도한 관용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국가 간의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도 진영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민족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까닭은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진영'의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며, 이 또한 섣부른 제기로 전략적인 면모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넷째, 정부에 대한 불신, 국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도 진영의 폐해일 수 있다. 정부가 초기에 공표했던 인사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것도 '진영'의 인재를 고집하려는 유혹 때문일 수 있다. 특정한 신념에 갇혀 있으면 다른 영역에 대한 배려가 소홀해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국가를 이루는 전체적인 대립면을 읽어내지 못하는 셈이다. 천하의 인재를 쓰려 했던 초심, 그 탕평은 어디에 가 있는가.

다섯번째, 촛불의 역설도 진영의 논리가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촛불과 2019년 촛불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3년 전 야당을 비롯한 정치세력은 기꺼이 촛불에 가담했고,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지만, 올해 벌어진 조국 관련 촛불에 대해서는 야당의 참여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도 진영이 달라진 때문이다. '촛불의 순수'가 비정치적인 것에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 또한 자체 모순일 수밖에 없다.

여섯째, 이게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이 '진영의 갈등' 때문에 우리는 정파적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자기 목소리와 자기 생각을 키울 기회를 잃어버렸다. 스스로의 사유 능력과 창조 능력을 강화해야 할 스마트 시대에, 철 지난 이념적 유령을 껴안고 그것의 명령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적 자아로 둔갑해 있는 셈이다.

조국 소용돌이를 통해 저마다 깨달은 것은 '망국적인 진영 갈등'이었다. 적폐세력의 방해공작이라고 주장하며 조국의 중단 없는 진격을 외치는 쪽과, 그를 '촛불의 배신자'로 비판하며 상징도 자격도 상실했다고 외치는 쪽의 극한대립이 날마다 아우성이다. 조국을 살려야 조국이 좋아질까, 조국을 끌어내려야 조국이 좋아질까. 이 어리석은 질문을 변명하는 온갖 포악한 말들을 쏟아내느라 대한민국의 이성(理性)이 초토화됐다. 그러나 조국이 어디로 가든, 진영논리의 극한대립은 여전할지 모른다. 이건 조국의 문제보다 훨씬 크다. 지금 우리가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건 이 대목에 있다.

"나 같은 사람은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전 국민의 애국적인 희망이다." 지난 금요일(8월 30일) 한 신문에 기고한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은 소박하지만 간절하게 느껴졌다. 권력의 한시성을 일깨우는 말로 자주 인용되는 '메멘토 모리(네가 끝나는 때를 떠올려라)'를 언급하며 지금쯤 마음을 다시 다잡기를 바라는 당부의 말도 붙여놓았다. 저 말 속에 이 정부의 중대위기를 걱정하는, 무섭고도 부드러운 경고가 들어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철학자 최진석 와이드 인터뷰 26면-27면 : 대담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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