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 스페셜칼럼] 아베에게 주어진 양날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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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이사, 정치경제학박사
입력 2019-07-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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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지난 21일 실시된 일본의 제25회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에게 양날의 칼을 안겨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날은 참의원 의석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군소정당의 의원들을 포섭하여 개헌발의라는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또 하나의 날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에 대하여 회유노선을 추구하는 자민당 내 파벌들 의석이 줄어듦에 따라, 강공드라이브를 지속 내지는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이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아베 인기의 퇴조

투표일인 지난 21일 일본 열도는 태풍에 휩싸였다. 그 결과 투표율은 48.8%로 참의원 선거 역사상 24년 만에 50%를 깨고 내려간 것이었다. 다만 그 전날에 1700만이 넘는 유권자가 미리 투표를 하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아무튼 개표의 결과는 자민당에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자민당은 투표 전에 가지고 있던 참의원 123석에서 10석이 감소한 113석에 낙착하였다. 그 대신에 연립을 구성하는 공명당이 3석을 늘린 28석으로 선방함으로써 집권’여당’은 141을 확보하여, 전체 245석의 57%를 차지하게 되었다. 보수성향을 공유하는 ‘일본유신의 회’가 3석을 늘려 16석을 얻었으나, 이 의석수를 합쳐도 157석이어서, 참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164석에서 7석이 부족하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아베가 의기양양할 수는 없다. 2021년까지 임기를 계속하여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의 총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어쩌면 자민당의 당규를 바꾸어 2024년까지 총리자리를 지키는 그림을 그리던 우익정치인들이 있으나, 이 꿈을 이제 버려야 할 것이다.


평화헌법은 바뀔 것인가?

여기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은 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전쟁의 권한을 포기한 제9조를 담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논의가 이제 막을 내릴 것인가이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이 질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베정권이 ‘못먹어도 고’의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첫번째 이유는 보수성향을 가진 작은 정당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이 ‘국민민주당’이다. 2018년 5월에 민진당과 국민당이 합쳐 만들어진 이 정당은 중의원에 39명의 의원에, 이번 선거에서 21명의 참의원을 확보하였다. 이 21명 중에서 7명 이상을 설득 내지 회유하는 것은 아베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당에는 이미 오자와 이치로라는 과거 대보수 정치가의 영향력이 남아 있으며, 당대표인 다마키 유이치로는 재무관료 출신으로 일본의 ‘이노베이션 뉴딜’을 주창하는 테크노크라트이다.

두번째, 자민당의 파벌 중에서 비교적 리버럴한 성향을 가진 고우치카이(宏池会)가 이번 선거에서 대패하였다는 것이다. 아베의 뒤를 잇는 정치가로 촉망되던 기시다 전 외무대신이 이끄는 고우치카이가 이번 선거에서 4명의 현역 참의원이 낙선하는 참패를 겪음으로써 파벌의 힘이 크게 위축하게 되었다. 평화헌법과 아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지지하는 이 파벌의 약화는 자민당의 외교노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세번째, 이번 참의원 선거로 아베의 뒤를 잇는 정치가로 두 사람이 클로즈업하는 인상이다. 한 사람은 현직 외무대신 고노 다로이다. 한국에도 익숙한 이름인 전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의 아들인 이 정치가는 현재 56세의 '젊은' 나이로 아베를 비롯한 자민당 중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아베의 후임자로 점칠 수 있는 또 한 사람은 현재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이다. 비교적 무명의 정치가였던 스가는 지금 자민당의 떠오르는 권력자로서, 아베와 가장 가까운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념과 실천 모두에 있어서의 동지들이다.

위의 세 흐름들이 공통집합이 될 때 의미하는 것은 헌법개정의 무드와 환경이 갖추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적 환경의 변화는 중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트럼프 정권이 일본의 군사적 기여를 더 요구하는 동력과 결합하여 정규군을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나라’로 가는 길을 넗혀줄 것이다. 일본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Free and Open Indo-Pacific)전략의 실천은 강한 해군이 없이 불가능하다.


한일관계의 전망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의 참의원선거 이후 한·일관계는 개선의 가능성이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부정적이다. 부정적이라기보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한 1965년부터 작금의 경제제재가 터진 2019년까지가 하나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이 새로운 시대는 이제까지의 한·일관계를 규율하던 규범, 정향, 인간관계 등이 작동하지 않는 미지의 시대가 될 것이다. 자민당에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닌 결과를 준 일본시민사회는 과거 6년 반의 아베정권의 공적에 대하여 60% 이상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반도체소재 수출규제에 대하여, 56%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21%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으며, 23%는 대답을 유보하였다.

이 조사는 아베정권의 행동이 무모하고 일시적이며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판단과 거리가 멀다. 1965년 이후 50년 이상 관계를 맺어 온 한국에 대하여, 일본인들의 평균적인 느낌을 요약한다면 ‘피곤하다’는 것이다. 미묘한 역사문제에 관하여, 일본시민사회는 한국편인데, 아베가 이끄는 우파정권이 유별나게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판단은 한국인의 아전인수이다.

파벌과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정책과 행동을 바꾸는 실용주의로 유명한 일본정계에 등장하여, 이렇다 할 정치경력도 없이 최장수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아베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굽히지 않는다”는 단순한 고집의 미학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신념과 고집의 정치지도자이다. 이 두 지도자가 이끄는 한·일관계는 바야흐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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