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중앙소방학교...'쉑쉑쉑'과 '헥헥헥' 힙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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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기자
입력 2019-07-1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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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소방학교 농연 훈련장... 가족 생각 절로 나

  • 레펠만 천국... 해병대 호기는 등짝 '파스'行으로

  • 정문호 청장 "소방 교육 산실... 국민 대상 확대"

쉑쉑쉑... 소방 공기 마스크(군대로 치면 방독면) 소리가 아니다. 턱까지 차오른 헥헥헥 거리는 숨소리가 '살려 달라' 산소통의 공기를 쉼 없이 들이키는 아우성이다. 18kg을 넘는 산소통 등 장비와 소방복이 온 몸을 짓누르는 데, 유일하게 가벼운 눈알은 쓸모가 없다. 사방으로 굴려봐도 보이는 건 칠흑 같은 어둠뿐이니까. 쿵쿵쿵 머리 부딪치는 소리로 길을 찾는다. 머리가 '더듬이'다. 

◆소방관의 어려움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11일 충남 공주 중앙소방학교 농연(짙은 연기) 훈련장. 잔해에 갇힌 조난자 구조를 위해 화재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다. 정글집같은 미로 구조를 위, 아래로 옮겨 다니며 턱을 넘기도 하고 좁은 공간을 돌파하기도 한다. 때로는 장애물과 좁은 통로 때문에 산소통을 벗어 앞으로 밀어놓고 몸을 빼 이동하기도 한다. 훈련인데 빛이 없다. 화재 현장은 의외로 어두운 상황이 많기 때문이란다. 믿을 건 손과 발의 감각이 전부다.

 

농연 훈련을 받기 직전. 산소통과 헬멧 소방복 등 18kg이 넘는다. [사진=소방청]


호기로웠다. 해병대 출신이다. 올해 40세가 됐지만 체력이 괜찮다. 달리기라면 4Km를 18분 안에는 너끈히 주파한다. 실제로 이날 4인 1조의 선두에서 조원들을 챙기며 농연 훈련을 받았다. 신체적으로 유리했다. 그리 큰 키가 아니다. 그래서 장애물도 쏙쏙, 좁다란 통로도 다람쥐처럼 잘 빠져나왔다. 그런데 삼각형 모양으로 좁아진 통로를 빠져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공기 마스크가 걸려 외부 연기가 마스크 내부로 들어온 것이다. 문득 '실제 상황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두려웠다. 유독가스가 가득 찬 화재현장이라면 조난자를 구해야하는 소방관 역할의 본인이 조난자가 됐거나 사상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수도 있었다. 쉑핵쉑핵쉑핵. 호흡이 가빠진다. 무거웠던 몸이 더욱 천근만근이다. 온 몸에 땀이 차는 게 느껴진다. 뜨거운 탕속에 서서히 몸이 잠기는 느낌이다. 조급하다. 칠흑으로 한치 앞 뵈는 게 없는데도 시야가 좁아지는 게 느껴진다.

 

농연 훈련장 안, 그야말로 칠흑이다. [사진=김정래]


"뒷사람, 조원들을 챙기세요"라는 농연 훈련장 조교 소방관의 외침이 들린다. 솔직히 "난 몰라"를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갑자기 집에 있는 11개월 된 아들과 육아휴직을 내고 독박 육아를 하는 마누라가 생각났다. 동공에 힘이 들어갔다면 연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실제 화재현장을 다녀온 게 아니다. 중앙소방학교 농연 훈련장이다. 소방청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2238억원을 들여 부지 42만㎡에 전체면적 6만 8075㎡·건물 39개동 규모로 지은 '소방 교육의 산실' 중 하나. 잘 지었다. 인정한다. 그러니까, 출구가 대체 어디냐고!

 

공기 마스크를 쓰면서 본인처럼 머리를 앞으로 밀면서 줄을 잘못 당기면 마스크가 얼굴에 잘 밀착되지도 않고 목을 삐끗해 등부터 여러 장 파스를 붙여야 된다. [사진=소방청]


혼자만의 '우여곡절' 끝에 농연 훈련장을 탈출했다. 처음 300bar(45분 분량)를 충전한 산소통은 140bar를 가리키고 있었다. 교관이 산소잔량을 보더니 "좋습니다"라고 했다. 웃으며 "감사합니다"고 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웃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농연 훈련장 연기를 마셔서 내면 연기가 얼굴에 자연스레 표현된 것일테다. [사진=소방청]

 
◆레펠만 천국... 호기는 등짝 '파스'行으로

이날 체험 훈련은 농연 훈련 외에도 다양했다. 실제 건물을 묘사한 10.2m 높이의 구조물에서 하는 '외벽 레펠'과 모형 헬리콥터에서 하는 '헬기 레펠', 15층 규모로 조성된 복합건물화재진압 훈련, 공동구 내부 화재 진압, 드론을 활용한 도시탐색구조 체험 등을 했다. 15층 복합건물과 공동구 내부 훈련은 실제로 불을 일으켜 소방호스를 사용해 불을 끄는 훈련이다.

 

15층 규모로 조성된 복합건물화재진압 훈련. '플래시 오버' 현상으로 가연성 가스가 천장 부근에 모인 것을 가정해 훈련했다. 물 줄기가 나가자 몸이 휘청였다. [사진=소방청]


해병대에 이런 말이 있다. '레펠은 천국이다' 해병대 모든 훈련 중 레펠 훈련 강도가 가장 약하다는 뜻이다. 레펠 훈련은 농연 훈련을 하기 전에 했다. 잘못된 호기로움은 여기서 시작됐다. 그래서 하릴없이 공기 마스크를 쓰다 등을 삐끗했나보다. 파스 두 장을 등짝에 붙이고 글을 쓰면서 느낀다. 인간은 늘 감사와 겸손해야 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레펠은 천국이다'를 몸소 시전. 저 여유로운 등을 보라. 곧 닥칠 재난도 모른채 평화롭기만 하다. [사진=소방청]

소방 헬기 레펠 준비. 시범 조교를 포함해 총 4명이 탑승했다. 안전을 위해 헬기 레펠은 시범 조교만 실시했다. [사진=소방청]


방금 전 까지 불길 치솟던 밸브를 손으로

마지막으로 훈련을 지켜봤던 조교들이 화학물질훈련장에서 화재 진압을 시연했다. 교관이 신호를 주자 화학 시설과 화학물질이 실린 탱크로리 여러 곳에서 다발적으로 불길이 쿠르룽 굉음을 내며 치솟았다. 이날, 가는 빗줄기가 오락가락하고 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런데 불길이 치솟자 순식간에 초여름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여기서도 마누라 얼굴이 떠올랐다. '공포'. 그런 곳을 조교들이 구령에 따라 발을 맞춰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어디까지 가시려나 지켜보다 아연실색했다. 소방호스를 들이밀며 결국 시뻘건 불이 나오던 밸브를 손으로 잠갔다.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진심'.

 

화학물질을 실은 탱크로리의 거센 불길을 향해 연신 물을 분사하며 다가가는 소방 시범 조교들. [사진=소방청]

 

시뻘건 불이 나오던 밸브를 손으로 잠근 소방 시범 조교들.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사진=소방청]


중앙소방학교의 훈련시설은 내년부터 민간에도 개방한다. 지금도 학교 등 일부 기관·단체의 신청을 받아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중이용업 소방안전관리자와 의용소방대원, 석유화학단지 자체 소방대원, 소방관련학과 대학생 등으로 확대된다.

최태영 중앙소방학교장은 이날 몇 차례 본인에게 소방관이 어울린다고 말해줬다. "초면에 실례입니다"고 즉답했다. 왜냐, 소방관의 어려움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런데 난 해봤다. 이제는 이 글을 읽은 여러분 차례다. 
 

화재 상황을 가정해 통합지휘·관리 훈련을 하는 가상현실(VR) 기반 시뮬레이션 훈련장, 관리자급 훈련생들이 지휘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소방청]

 

'수중 탐색 훈련장'. 빨간 볼(조파기)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60㎝, 80㎝, 100㎝, 120㎝ 총 4단계로 파도의 높이를 달리 만들 수 있다. [사진=소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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