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감정적 무데뽀 대응,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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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7-0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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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2004년 12월, 한·일 정상회담 장소를 놓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하필 그곳이냐는 비판, 그리고 옮겨야 한다는 여론으로 들끓었다. 그해 한·일 정상회담 장소는 가고시마 이부스키(指宿). 검은 모래찜질로 유명한 온천 휴양지다. 논란은 가고시마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 때문이다. 가고시마는 조선을 무력 침략하는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된 곳이다. 정한론은 일제 36년 식민지배에 필요한 이론적 토대가 됐다. 또 가고시마는 군국주의 색채가 짙다. 태평양전쟁 당시 이곳 치란(知覽)에서는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우리 외교부에 문제가 있었다. 논란을 접한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 정부가 원하는 곳으로 변경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만류했다. “마, 그냥 가자. 내가 욕 좀 먹으면 되지.” 노 대통령의 결단은 일본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일화를 떠올린 이유가 있다. 만일 노 대통령이라면 최근 한·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까 싶어서다. 솔직히 지금 우리 정부에 제대로 된 대응이 있는지 답답하다. 보수언론은 뒷북대응과 편협한 역사관을 꼬집고 있다. 100% 공감하지 않지만 일부분 수긍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론 또한 감정적으로 흐르는 듯하여 조심스럽다. SNS에는 연일 반일, 불매운동을 독려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붉은 일장기를 이용한 포스터는 꽤 선동적이다.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인증 샷도 잇따른다. 그 대열에 끼지 못하면 친일로 치부될까 걱정이다. 한편에서는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세는 반일, 불매운동이며 갈수록 확산될 조짐이다.

일본이 우대 조치를 폐지한 3개 품목은 우리에겐 급소다. 당장 대체가 어려운 핀셋 보복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본 정부가 준비한 보복 카드는 100여개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이제 겨우 한 개가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몹시 아프다. WTO에 제소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게 능사일까. 설령 이겨도 이긴 것일까. 생각은 꼬리를 문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년 1조원씩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궤도에 오르려면 최소 2~3년은 필요로 한다. 그동안 우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버텨낼지 의문이다. 물고 물리는 싸움 끝에 양국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승자 없는 이전투구다.

일본은 산업화 역사가 150년을 넘는다. 반면 우리는 50여년 남짓이다. 그 만큼 일본 경제는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문제가 된 3개 품목을 90%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현실이 단적이다. 일본은 한때 미국과 G2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록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역전 당했지만 일본 전자산업은 아직도 저력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도 우리를 훨씬 앞선다. 히든 챔피언도 우리보다 10배가량 많다. 독일이 1307개로 가장 많고 미국 366개, 일본 220개에 이어 우리는 23개에 불과하다.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최악을 각오해야 한다.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같이 쓰이는 말로 ‘무데뽀’가 있다. 대책 없이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말한다. 총도 없이 싸움터에 나서는 무모한 짓이라는 ‘무데포(無鐵砲)’가 어원이다. 일본은 1543년 철포, 즉 조총을 개발했다. 이로부터 50년 후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조총 앞에 추풍낙엽이었다. 선조는 도망쳤고 국토는 망가졌다. 일본 국민성은 치밀하다. 조총도, 임진왜란도, 메이지유신도 그렇다. 그들은 메이지유신에 앞서 서구에 유학생을 파견했다. 당시 조슈(현 야마구치)와 사쓰마(현 가고시마)는 훗날을 대비해 서구에 유학생을 보냈다. 이때 자란 인재들이 메이지유신을 주도했다. 일본 근대화는 치밀한 준비가 맺은 결실이다.(조선을 탐한 사무라이·이광훈)

지금 아베 내각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그 일본이 아니다. 구인난을 겪을 만큼 호황이다. 아베는 1기 내각에서 실패한 뒤 5년 만인 2013년 재기했다. 그해 2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은 달라진 2기 내각을 예고했다. 그는 “일본은 결코, 앞으로도, 절대로 2열 국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일본 역시 돌아올 것입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현실로 옮기고 있다. 힘이 있다고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한다면 깡패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경제보복은 치사하며 졸렬하다. 조만간 일본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다.

조선은 1607~1811년까지 200여 년간 열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다. 조선통신사는 문화적 우위를 앞세운 친선 사절단이었다. 한자와 불교 등 선진 문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치사하게 경제보복으로 갚았다.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치밀해야 한다. 감정만 앞세운 무데뽀론 안 된다. 긴 호흡과 폭넓은 현실 인식, 통 큰 결단을 필요로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응을 고민할 때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갈등을 풀어갔을까. 문제는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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