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시간강사와 한국의 암울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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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7-0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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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재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사진=서울대]


과거 시간강사로 대표되는 비전임연구자는 전임교원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적 예비군’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석사학위만으로 대학에서 전임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 후에는 박사학위 취득자가 늘어나면서 학위 취득 후 몇 년의 시간강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의 전임이 되기 위한 준비기를 거쳤다.

이 시기가 신분이나 생활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비전임 시간강사에서 전임교수나 정규 연구직으로의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비전임 시간강사로서 강의를 맡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즉, 학문 생태계에서 대학원생, 비전임 시간강사, 전임 교수로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5년 설립준칙주의에 의해 일종의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대학과 대학원 설립기준 완화정책으로 대학과 대학원이 수적으로 대폭 늘었다. 1990년대 이후 브레인 코리아(BK) 사업 등으로 대폭 증가한 박사학위자에게 취업의 문을 어느 정도 열어줬다. 지방 대학의 경우에도 자기 대학에서 배출한 박사학위자들을 대학의 전임으로 고용하는 문화가 유지되고 있어서 지역 단위로 자기 재생산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박사학위자들의 전임교원 충원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대학원의 박사학위 배출자가 과거에 비해 급속히 늘어난 반면,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의 구조조정 앞에서 전임교원을 새로 충원하는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대학 연구소 내에 박사학위 전임직을 설치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인문한국(HK)과 한국사회기반연구(SSK) 등의 사업이 수행됐으나 비전임 연구자의 수요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재의 제도가 이어진다면 향후 대학의 전임 일자리는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이런 현실을 감지한 우수한 학생들은 대학원 진학을 꺼리고 있으며, 대학들은 부족한 입학생을 메우기 위해 외국 학생들을 대거 유치하는 전략을 세워 대학과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비전임 연구자들의 숫자가 많다거나 전임으로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상적인 문제를 넘어선다. 일종의 과도기로 존재했던 비전임 연구자의 기간이 ‘학술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져, 이제는 일시적·잠정적 상태가 아니라 항상적·지속적인 상태가 됐다. 일시적 기간이라고 간주됐기에 사회적 신분과 지위, 경제적 수입이 거의 부재한 ‘2등 시민’으로 지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미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전임교원 혹은 정규 연구직으로 가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한다는 순환 구조가 무너졌고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비전임 연구자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 이들의 지위와 신분은 다시 규정되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 선순환 생태계 모델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 상황을 인정해야 하며, 과거 모델에 입각해 시간강사를 비롯한 비전임 연구자의 존재가 규정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각에서는 자신들이 원해서 한 공부이니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원의 박사과정이 적어도 취미로 공부하는 곳이 아니며 개인의 연구자로서의 지향성과 국가의 학술연구 및 고등교육 담당자 양성이라는 목표가 만나는 지점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면, 대학과 국가의 책임과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학문의 미래는 곧바로 국가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조차 없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학문을 하겠다는 후학들이 없어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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