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中, 홍콩판 '6월 항쟁' 급한불은 껐지만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19-06-18 09:42
홍콩의 가치는 다방면의 자유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영국의 1997년 홍콩 주권 반환을 앞두고 제시한 원칙 두 가지가 있다.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국가에 두 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이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처음 이례적으로 2017년 7월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는 "홍콩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콩인들은 일국의 관점을 따라야 하고 중앙 정부의 권력에 도전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시 주석이 연설에서 일국양제의 '일국'만 강조하면서 홍콩인들의 불안감은 늘어갔다.

중국은 2012년 시 주석 집권 후 홍콩의 직선제 약속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홍콩의 고도 자치권을 인정하는 일국양제 원칙을 마구 흔들었다. 홍콩은 오랜기간 정치·언론·사법 등 민주적 시스템을 바탕으로 세계 무역과 금융의 허브로 성장했다. 또 서방 세계의 중국 진출과 교류의 발판 역할을 해왔다. 1인당 GDP가 무려 6만5000달러에 이르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홍콩의 주민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등 자신들의 핵심적 가치가 중국에 의해 강요받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15년 중국 공산당의 내부 권력암투와 지도층 비리를 다룬 반체제 서적을 판매하는 홍콩 서점의 주주와 주인 5명이 잇따라 실종되거나 납치되어 본토에서 조사를 받은 사건은 중국의 공안과 사법체제에 대한 공포 심리를 확대 시켰다. 이들이 <시진핑과 여섯여인들 (Xi and His Six Women) >이라는 이라는 제목의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납치 사건은 실종됐던 5명 중 한 명이 2017년 전모를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렇게 홍콩 주민들의 중국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홍콩 정부가 주민을 중국 본토에 송환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 (송환법)을 추진하자 마침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뜨리게 만든 계기가 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인은 사법 기관이 공산당 아래에 있어 판결과 집행이 홍콩과 전혀 다른 중국의 사법체제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시민들을 대거 거리로 몰려 나오게 만들었다. 시민들의 분노와 규모는 1997년 이후 전례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놀란 홍콩 정부는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시민 항의와 시위로 홍콩 당국이 법안 추진을 중단한 것은 2003년 7월 시민 50만명이 국가보안법 입법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자 철회한 이후 처음이다. 홍콩의 지도자인 케리 람 행정장관(62)은 지난 15일 발표문을 통해 시민에게 사과했다. "진심으로 겸허하게 모든 비판을 수용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법안의 철회는 절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홍콩 정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법안의 완전 철회와 친중 성향 람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검은 옷'시위가 16일 홍콩 곳곳에서 열렸다. 홍콩인들의 분노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홍콩의 번영과 안정유지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익에 부합된다." 시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송환법 추진을 전격 보류한 직후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이 발표한 내용이다. 담화는 홍콩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했다. 이어서 "홍콩은 중국의 특별 행정구이며 홍콩의 일은 중국 내정에 속하므로 그 어떤 국가나 조직, 개인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을 향한 경고이다. 중국과 홍콩 당국은 강경 대응 모드에서 한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거센 비바람과 소나기가 걷히면 또다시 입법을 향해 '돌진'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홍콩 주민들이 '홍콩의 중국화'를 서두르는 중국 지도부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현 홍콩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오는 2047년 시한이 다가올수록 양측의 충돌은 격화될 수밖에는 없다는 관측이다.


미·중 협상 앞둔 시 주석의 정치적 패퇴 

무역에 이어 대만, 화웨이 등 미국의 전방위 대중 공세에 맞서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일부인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 사태 발발과 혼란은 그의 집권 이후 가장 뼈아픈 정치적 패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시 주석은 무엇보다도 이달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을 앞두고 있다. 그리하여 '홍콩 사태'라는 내부 동요를 하루속히 최소화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콩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홍콩 정부의 법안 처리 보류 발표 기자회견 직전 홍콩에 머물며 분위기를 살핀 후 법안 추진 보류를 지시했다고 홍콩 언론은 전하고 있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가 중국이 피하고 싶은 서방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자, 중국 정부는 굴욕을 감수하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법안의 사실상 무기한 연기를 지시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고층 빌딩 숲과 화려한 야경, 쇼핑 천국으로 유명한 홍콩의 중심가에서 5년 만에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자 국제사회는 비상한 관심을 쏟아냈다.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거나, 곤봉으로 강경 진압에 나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모습은 32년 전 우리나라의 '6월 항쟁'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중국의 정치·사법체제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피플 파워'에 중국 당국이 백기를 든 이번 사태는 2014년 9월 하순부터 두달 반 이상 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기억도 새롭게 만든다.

'우산혁명'의 추억 

당시 서방 언론은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낸 시위대의 행동을 '우산혁명 (Umbrella Revolution)'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시위대의 요구는 홍콩 특구 최고 수반인 행정장관 선거에서 친중국 인사만 당선될 수 있는 중국 중앙정부의 결정을 철회하고, 진정한 의미의 보통선거를 통해 중앙 정부의 입김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자는 것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당시 시위대는 한때 1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늘어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하자 시위는 점차 힘을 잃고 소멸됐다.

비록 '우산혁명' 시위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1997년 이후 홍콩인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절박감과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일깨워준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중국몽(中國夢, Chinese Dream)을 앞세우며 대외 영향력 확대에 나선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홍콩의 민주화 시위 불길은 그의 집권 후 첫 정치적 위기의 순간이기도 했다. 시위대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도 제2의 톈안먼(天安問)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상황이 무력진압이나 유혈사태 없이 종료된 것은 그래도 시 주석에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약 당시 평화적인 시위가 군부에 의해 진압됐더라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 톈안먼 사태 이후처럼 거센 후폭풍에 휘청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억눌렸던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다시 표출되면서 홍콩발 제2의 정치적 위기가 시 주석에게 몰려오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무역 갈등과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 주석의 이번 '홍콩 사태'에 대한 해법 마련이 더욱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모습이다. 규모가 5년 전에 비해 무려 10배인 100만명 시위로 늘어나면서 이제 공권력을 동원한 진압에는 한계가 있다. 또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시위대를 거들면서 이번 사태가 국제 갈등과 대결 국면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태 조기수습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17일 발표된 시 주석의 '북한 방문(20~21일)'은 미·중 통상분쟁에 홍콩 사태까지 겹치자 대내외 정세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소통과 대화보다는 강경 진압을 고집하다가 사태를 악화시킨 람 행정장관의 거취도 주목이 되고 있다.

홍콩은 미국 등 20여개 국가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고 있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지역을 추가하는 법안을 추진하다가 홍콩인들의 불안감을 지폈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주한 홍콩인의 대만 인도 문제가 발단이 됐다. 베이징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홍콩 내 반중(反中) 세력 제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홍콩 당국은 살인·마약·밀수·탈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만 중국 본토에 인도하는 등 인권보장장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했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강력 반발했다. 이와 관련 대만도 홍콩의 민의를 무시한 법안 추진은 원치 않는다며 범인 인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천명해, 홍콩 당국을 궁지에 몰았다.

이 법안에 대한 홍콩 주민의 엄청난 저항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중국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2017년 3월 선거위원단 선거에서 당선된 람 행정장관은, 당선 직후 내각 16명 중 15명을 친중인사로 채웠다. 야당은 그를 "홍콩을 팔아넘기는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라고까지 매도하고 있다. 지난해 홍콩 정부는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을 해산했고, 독립 성향을 가진 야당 후보의 피선거권을 잇달아 박탈하기도 했다.

일국양제의 약속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이후 등장한 과도기적 체제인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홍콩이 누리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본토와 별개의 체제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은 1984년 영국과의 협정에서,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은 갖되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사법 독립권을 부여하고 2047년까지 50년간 자본주의를 유지하며. 2017년에는 홍콩인이 선거인단의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로 지도자(행정정관)를 선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014년 8월 말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는 직선제에 나설 행정장관 후보를 사실상 친중인사로 제한하는 내용의 선거 방안을 내놓았다. 당시 시민들이 이에 분노해 '우산혁명' 시위에 나섰지만 선거제도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고, 2017년 선거도 기존의 간선 방식으로 진행됐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이 홍콩인의 억눌린 민심 폭발의 뇌관이었다는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가 퇴진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람 장관보다 더 큰 피해자는 시 주석이다. 중국이 그동안 외부적으로 엄청나게 몸집과 힘을 키웠지만 인권 문제와 사법제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권위주의 통치와 공포로 자유를 억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홍콩의 가치는 (중국에 없는) 언론 등 다방면의 자유다"라고 강조한 한 홍콩 주민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뇌리에 스며든다.

 

홍콩 도심 가득 메운 '송환법 반대' 검은 시위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지난 12일 시위 때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했다. 홍콩 언론은 이날 시위 참여 인원이 1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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