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 백서에 나타난 중국의 고민과 속내

이수완 논설위원입력 : 2019-06-05 17:15
일단 버티면서 미국과의 오랜 지정학적 충돌 준비하는 듯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지난 달 초 워싱턴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이후 양국은 한 치의 양보 없는 보복전과 자존심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지난 2일 '중미 경제·무역 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작년  9월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백서로, 미중 무역전쟁 발발과 협상 결렬이 미국의 일방적이며 고압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무역 협상에 임하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내용이지만, 중국이 무역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하며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백서에 나타난 몇 가지 주요 내용을 보면 중국의 고민과 깊은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백서는 지난 워싱턴 회담 직전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2000억달러(약 235조원)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인상 (10%→25%)하는 조치는 무역 갈등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로한 시진핑 주석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이며 전세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라고 했다. 또 회담 결렬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합의 사항을 철회했다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했다.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 양측 실무진은 협상을 통해 대부분의 이슈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었다. 나머지 합의 안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중국 정부는 상호 이해와 타협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자고 노력했지만, 미국은 위협적인 자세로 지나친 요구를 계속 제시하며 합의문에 중국의 주권과 관련된 내용까지 포함시키려 했다고 백서는 설명하고 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설정한 '레드 라인'은 넘지 않는 것이다. 백서는 중국이 이런 원칙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다. 또 미국과 중국은 국가 발전 단계와 제도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상대방의 발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을 강요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지적재산권 보호와 외국인 투자가들의 영업  환경 개선을 위해 쏟아온 중국의 노력에 대해 미국은 모른체하고,  중국에 대해 편파적이며 부정적인 견해를 퍼트리고 걸핏하면 관세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 갈등의 근본 원인이 미국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양국의 무역 협상 막바지에서 큰 걸림돌의 하나로 지적된 것은 중국이 합의 사항을 과연 제대로 이행할 것 인지에 대한 미국의 우려였다. 이에 대해 백서에서 밝힌 중국의 입장은 미국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11차례의 고위급 협상이 큰 진전을 이루었고, 중국은 협상 과정에서 약속을 지켰고, 무역 합의안이 타결되면 이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미국 측에 반복적으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8300자 분량의 이번 백서에서 중국은 무역협상 결렬의 책임이 미국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미국을 관세 인상을 무기로 무역 파트너를 위협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랬다 저랬다 높은 조건을 내세우는 신뢰할 수 없는 협상 상대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는 3일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가 최근 성명과 백서 발표를 통해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성명은 양측 협상단이 "여러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중국이 이전에 합의했던 조항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입장을 후퇴한 것에 대응해 미국이 기존에 발표했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 인상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달 워싱턴 고위급 회담이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무역 분쟁을 넘어, 중국과의 기술 냉전, 경제 전쟁에 돌입했음을 사실상 선포했다. 미국은 5G 이동통신 기술의 선도업체인 화웨이 죽이기에 나서면서 동맹국들에게 대(對)화웨이 거래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압박할 주요 무기인 '희토류 카드'까지 만지작 거리며 대미 장기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싸움이 격해지면서 전 세계 경제는 긴장하고 있다. 특히 미.중 양쪽과 협력관계에 있는 한국은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전략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볼 수있다. 

이번 중국의 백서의 내용을 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중국이 백서 발간 직후 기자회견에선 대화 의지를 보인 것을 보면,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더욱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셔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정말 중요한 것은 서로 신뢰를 높이고 협력을 강화하고 차이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해결을 위해 협력적 접근법을 채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서에도 역시 “양국의 협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이견과 갈등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런던에 있는 에노도 이코노믹스(Enodo economics)의 다이애나 초이레바 수석 연구원은 이번 중국이 발표한 백서가 반드시 미국과의 갈등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완강하게 버티며 미국과의 오랜 지정학적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희토류 산업시설 시찰하는 시진핑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를 방문, 희토류 산업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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