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2-10] 1592년 부산 앞바다 일장기로 피어난 '리큐의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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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9-05-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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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리큐가 할복하기 전날 밤이다.

여자가 손을 내밀기에 붓과 화지를 건넸다. 무궁화 꽃을 바라본 다음, 붓을 눌렀다. 꽃은 물을 흡수해 생기를 조금 되찾았다.

“무궁화는 하루뿐이나 스스로 영화를 이룬다(槿花一日自爲榮)
“백거이로구나.”

리큐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도 아는 시였다. 언젠가 마당에 무궁화가 피었다. 그는 붓ㄹ과 종이를 받아 여자가 쓴 옆에 한 줄 덧붙였다.

“어찌 세상에 연연하고 죽음을 근심하라(何須戀世常憂死)”

인간 세상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죽음을 근심해봤자 소용없다. 그러나 제 몸을 부정하고 생을 혐오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삶과 죽음은 전부 몽환, 몽환속의 슬픔과 기쁨에 어찌 연연하는가. 시는 그렇게 맺어졌다. 글을 써서 보여주자 여자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어지간히 기뻤는지 몇 번씩 거듭해 읽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는 야마모도 겐이치(山本兼一)의 소설 「리큐에게 물어라 利休にたずねよ),2008」의 마지막 부분이다.

일본 다도(茶道)를 완성하고 원칙을 세운 센리큐(千利休, 1520~1591년), 센소우탄(千宗旦, 1578~ 1658년) 부자가문이 가장 좋아했던 꽃은 무궁화다. 센리큐는 무궁화 중에서도, 특히 흰 꽃잎 바탕에 붉은 꽃심의 무궁화를 사랑했다. 자신의 후계자인 손자의 이름을 ‘마루 종(宗)', ‘아침 단(旦)', 소우탄(宗旦)으로 지었을 정도로. 현재 일본의 양대 무궁화 대표 품종 소우탄(宗旦)도 센소우탄 이름을 딴 거라고 전해진다. 센리큐는 무릎이 닿을 정도로 협소한 다실에서 무궁화 한 가지를 마주한 채 차를 나누길 즐겨했다.

그런데 무로마치 시대의 무궁화 마니아 고호조지 관백을 능가하는 아츠치 모모야마(安土桃山, 1568~1600년)시대의 무궁화 마니아는 바로 1585년 관백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년)이다.

히데요시는 언젠가 센리큐의 저택에 아름다운 무궁화가 많이 피었다고 해서 아침 일찍 일부러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원에 무궁화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다실에 들어가니 장식단에 단 한 송이 무궁화가 장식돼 있을 뿐이었다. 그 한 송이를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정원에 핀 꽃을 리큐가 전부 꺾어버린 것이었다.

센리큐는 무궁화 한 가지를 전문화된 다실에 장식해놓고 다도 교육을 시행하며 다도의 원칙을 세웠다. 무궁화는 하루 동안 피고 진다는 일기일회(一期一會)! 그 다회가 일생의 한번 뿐이라는 일본 다도의 기본정신과 닮았다. 일본인은 무궁화가 한 번에 만개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피고 지는 걸 반복하는 걸 한결같이 피어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무궁화를 정절과 절개의 상징이며 사무라이 정신 일본의 얼로 받들고 있다.

이는 센리큐 가르침의 영향이 크다. 그는 히데요시의 다도 자문 역할을 하며 차 스승으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센리큐는 교토의 다이도쿠지(大德寺)에 리큐 자신의 목상(木像)을 안치하고, 다기의 감정에 부정이 있었다는 의심을 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할복 명령을 받아 다이도쿠지의 정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센리큐가 할복한 이듬해 1592년 6월 부산 앞바다에 일본 사상 최초의 일장기 히노마루(日の丸)가 출현했다. 그 깃발은 센리큐가 사랑했던 붉은 태양을 실은 하얀 배-히노마루(日の丸) , 흰 꽃잎 바탕에 붉은 꽃심의 무궁화를 평면에 펼쳐 형상화한 모습 그대로이다. 

흥미로운 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신으로 기리는 도요쿠니(豊国)신사가 있는 오사카의 거리와 공원에는 무궁화가 유독 많이 피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당을 야생무궁화 자생지로 유명한 야마구치(山口)시의 풍신수길의 사당이 있는 아도가스지(後龍寺) 경내외에도 무궁화가 만발했다.

한편, 아츠치 모모야마 시대 무궁화 기록 대표문헌으로는 「지방전응구전(池坊専応口伝)」, 「체화전비서(替花伝秘書)』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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