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중독은 질병"... 찬반 논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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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입력 2019-05-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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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 개정안에 '게임중독(Gaming disorder)'을 등재하기로 25일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22년 1월부터 전 세계 200여개국 정부는 게임중독을 정식 질환으로 분류해 관리하게 된다. 국내에선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교육부가 환영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게임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는 의견과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산업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쪽의 의견이 갈린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일부 학자들도 가세해 특정 이익집단이 과잉의료를 부추기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향후 WHO의 게임 질병코드가 일으킬 파장에 대해 짚어본다.  

 
 

게임중독 질병 분류 찬반 논쟁[그래픽=아주경제]
 

◆게임중독의 질병 지정··· 국내 찬반 논란 확산 

게임중독이 조현병,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과 함께 국제 공인 질병으로 지정됐다. 전 세계 4위, 연간 10조원 이상을 움직이던 게임 대국 한국에서 이번 질병코드 지정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총회 B위원회에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게임중독(Gaming disorder) 질병코드 '6C51'를 포함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란 국제질병분류를 뜻한다. ICD는 전 세계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질병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참조하는 국제적 질병통계의 기초자료가 된다.

WHO 회원국 194개국은 2022년 1월부터 게임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취급하게 된다. 한국은 통계청이 2025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ICD-11을 반영한다. 당초 내년 7월 반영 고시하려 했으나 찬반 논란이 커지면서 다음 개정연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국은 이번 WHO의 게임중독 질병 지정으로 게임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게임업계는 이용자 대부분이 잠재적 정신질환자라는 낙인효과로 인해 소비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67%가 게임을 이용한다. 10명 중 7명꼴이다. 또,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2025년 게임산업의 경제적 손실이 최대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사라질 고용규모는 1만여명에 달한다.
 
윤태진 연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사회적인 담론의 영향은 강력하고, 간접적이다. 게임회사에 다니는 게 자랑스러운 일인가라고 봤을때, 우수한 인력이 게임업계로 진출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산업발전에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이 질병이라는 인식은 '게임 중독세', '게임 중독치료센터 건립', '게임 광고 제한' 등 규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담배·도박·술에는 각각 '국민건강증진기금' '중독예방치유부담금' '주류세' 등 세금이 붙는데, 게임도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중독관리 부담이 증세 또는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해소해야 할 규제가 산더미인데 게임이 질병이 되면 이용자들마저도 외면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규제기관들은 기존보다 더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할 거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울, 자살, 범죄 등 게임 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 예방과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게임 아이템 거래로 생계를 이어오던 20대 부부가 두살배기 아들을 학대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게임 레벨을 높이기 위해 동급생을 협박, 상습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일어났다.
 
보건복지부와 가톨릭대학교가 2012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해, 범죄, 치료 등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7조8000억~10조1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청소년 게임중독 연구를 주도해온 성윤숙 학교폭력예방교육센터장은 "최근 들어 일본, 독일 등 일부 선진국들이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중심의 중독성 있는 국내 게임 수입을 차단하고 있다"며 "게임 중독 예방뿐만 아니라, 초기 치료를 통한 사회적 비용 절감도 고려해야 한다. 규제로 볼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보호장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난리인데··· 미국·유럽은 시큰둥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한국은 WHO 미가입국인 중국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0시부터 6시까지 PC온라인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청소년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PC온라인게임 결제한도에 제한을 두고 있다. 

게임중독 연구를 주도해 온 것도 한국이다. 윤태진 교수가 공개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2013~2018년 게임중독 관련 국내외 논문 671편 가운데 한국 연구자에 의한 논문은 91%로 가장 많았다. 미국 정신의학협회(APA)가 2013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차 개정안(DSM-5)에 언급한 '인터넷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도 우리 연구의 영향을 받았다.

해외에서도 게임중독의 낙인효과를 경계한다. 글로벌 콘솔게임 빅3 업체 소니,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각사 플랫폼에 부모가 자녀의 게임 이용을 조절하는 '자녀 보호 기능'을 도입하는 등 기업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최고경영자(CEO)는 "진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자체 기준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유럽에선 정책적 규제로 연결될 것이란 우려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DSM-5에서 게임중독을 보류시킨 상황이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시장규모나 유병률 측면에서 한국만큼의 사회적·경제적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요르그 뮐러 리츠코 파더보른대 박사는 독일 매체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봤을때 아시아 국가들이 게임중독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아시아와 우리를(서양권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장조사기관 뉴주에 따르면 2018년 글로벌 게임 산업의 규모는 1379억 달러(약 150조원)에 육박한다. 국가별로는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가 52%, 북미 23%, 유럽 21%, 남미 4%다. 북미·유럽권은 매출 50%가량이 콘솔게임에서 나오지만, 한국은 PC모바일 매출이 80%에 달한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본부장은 "게임과몰입의 범위는 콘솔·온라인·모바일을 포괄하지만, 사실상 과의존 논란이 큰 네트워크 기반의 온모바일 게임에 맞춰져 있다"며 "국내 인터넷게임중독 연구는 질병코드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규제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100분 토론[MBC 캡처]

◆"사회적 부작용 예방" VS "과잉의료화" 의사들도 의견 분분

게임중독 질병코드화를 놓고 국내에서는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의료계도 '사회적 부작용 예방'을 지지하는 의사들과 '과잉의료화'를 지적하는 의사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다.

WHO의 게임중독 기준은 △게임 이용 시간이나 횟수에 대한 통제력 불능 △게임이 일상생활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진 경우 △게임으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도 지속하는 경우 세 가지다. 이러한 행동이 12개월 이상 반복되면 게임중독으로 본다. 단, 증상이 심한 경우 12개월 미만도 질병으로 인정된다. 앞서 WHO는 지난해 6월 게임중독 질병 지정을 추진했으나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행위를 질병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 반발에 부딪혀 1년간 유예기간을 가졌다.

이경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게임 질병코드화 과정에 정치·사회·문화적 이득을 위해 의료화의 추세를 극단화시키는 과잉의료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게임의 잠재적 유용성마저 차단하는 우리사회 부정적인 담론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국가가 책임지고 효과적인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질병이라는 정의가 없어 이를 지지하고 보호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며 "공중보건학적으로 보았을때 전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1~3%나 된다.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범부처 간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WHO 결정을 즉시 반영하겠다"고 공언한 반면,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은 "인과관계를 증명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맞서고 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가 인터넷 게임중독 과의존 용역연구를 주도하며 질병코드 도입에 발맞춰 규제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정례회의에서 질병코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동의견을 취합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2025년 KCD 개정에 맞춰 의료수가, 치료 프로그램을 재정비할 예정이다.
 
반면 문체부, 과기부 등은 콘텐츠 수출 및 IT 발전 전해 등 산업 위축 연쇄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박승범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수영중독, 낚시중독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하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라며 "사회적인 합의도 없이 국민 대표 여가생활을 질병으로 낙인 찍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임업계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 위원회'를 출범시켜 게임중독의 질병 지정에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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