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용의 CEO열전] 통신장비 1위 기업 화웨이 일궈낸 승부사 '런정페이'... '기술냉전'도 헤쳐 나올까?

강일용 기자입력 : 2019-05-25 13:26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 30년 상무 정신으로 화웨이 이끌어... 창사 이래 최대 위기 5G 기술력으로 극복
중국의 통신장비(네트워크) 기업 '화웨이'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미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와 미국 기업 간 거래 금지' 조치를 내린지 일주일만에 미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영국 등 타 국가 기업까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면서 향후 기업 활동에 먹구름이 드리웠기 때문이다. 타고난 승부사로 알려진 화웨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任正非, 75)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제조사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2017년 화웨이의 전 세계 통신장비 점유율은 28%로, 27%인 에릭슨이나 23%인 노키아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 2년 전만해도 이들보다 점유율이 떨어졌음을 감안하면 LTE 시장에서 화웨이가 얼마나 세을 넓혔는지 알 수 있다.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의 가장 큰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경쟁사보다 70% 저렴한 가격에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후지원 비용이 타사보다 비싼 편이지만, 초기의 저렴한 공급 비용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화웨이는 동남아시아, 중동, 남아메리카, 남유럽 등 LTE 전환이 느린 시장을 집중 공략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통신장비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업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8년 2분기 화웨이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5.5%로 2위를 차지했다. 11.8%를 차지한 애플을 앞섰고, 20.4%인 삼성전자를 매섭게 따라잡고 있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전략은 통신장비 시장과 동일하다. 중국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유럽 등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사진=화웨이 제공]


◆고난에 굴하지 않고 불혹에 창업나서

이러한 화웨이는 지난 1987년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가 중국 선전시에서 5명의 동업자와 함께 자본금 2만 1000위안(약 360만원)으로 창업한 회사다. 그의 나이 43살 때 일이다.

런정페이는 1944년 중국 구이저우성 안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교사인 교육자 집안이었다. 7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런정페이의 어린 시절은 결코 풍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소원이 제대로된 만두를 먹는 것일 정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충칭토목공학대학 건축과에 입학한 런정페이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중국을 휩쓴 문화대학명의 광풍이 그의 집안에 밀어닥친 것이다. 그의 부친이 국공내전 도중 국민당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런정페이와 그 가족들은 순식간에 반동분자로 내몰렸다.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런정페이는 시골로 쫓겨나 축사에서 일하는 처지에 몰렸다.

힘든 처지 속에서도 런정페이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가라앉은 후 그는 통신과 컴퓨터 관련 지식을 스스로 익혔다. 그 경험을 살려 대학 졸업 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통신병과로 배치받았다.

하지만 반동분자라는 낙인은 늘 런정페이를 따라다녔고, 번번이 승급과 포상 등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차별을 느낀 런정페이는 1984년 군에서 떠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전자회사에 들어가 IT 분야를 접하게 된다. 그는 부사장까지 승진했지만, 사기 사건에 휘말려 결국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런정페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불혹의 나이로 늦깎이 창업에 나섰다. 훗날 그는 "불혹(不惑)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나는 IT와 통신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직감하고 창업을 결정했다"고 당시 심정을 술회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 사기업을 할 수 있게 해준게 전부

화웨이는 중국 남부의 도시 선전시와 함께 성장했다. 처음에는 농촌 지역에서 통신 교환기를 팔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회사들이 꺼리는 오지에 통신 장비를 공급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런정페이는 정부의 지원으로 화웨이가 급성장할 수 있었다는 세간의 추측을 부정했다. 이에 따르면 런정페이는 계급도 별 볼일 없었고, 군을 떠난 후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 창업 자금도 주변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마련했다.

유일한 도움은 당시 중국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해 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선전시를 사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경제 특구로 지정해준 점뿐이다. 당시 화웨이와 같은 소규모 통신 교환기 판매상이 수백군데가 있었지만, 살아 남은 것은 화웨이 하나 뿐이었다.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사진=바이두]


◆기술이 핵심 경쟁력...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

30년이 지난 현재 화웨이는 중국 500대 민간 기업 중 1위에 올랐다. 텐센트, 알리바바등 중국의 IT를 상징하는 기업들도 아직 화웨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전 세계 직원 수는 지난 해 18만 8000여명을 넘었고, 평균 연봉도 1억원을 돌파했다.

중국 통신장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의 7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이 아직 중국 내수에 기대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과 대조된다. 레노버, 페트로차이나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화웨이는 중국 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선입견인 모방, 특허 도용 등과 가장 거리가 먼 기업이다. 평소 런정페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기술 개발이다. 런정페이는 중국 선전, 미국 실리콘밸리, 러시아 모스크바, 스웨덴 스톡홀름, 인도 방갈로르 등에 연구소를 세우고 화웨이 전 직원의 40% 이상을 기술 개발 인력으로 채울 정도로 원천 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저렴하기만 해서는 글로벌 기업들과 유의미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혜안이다.

화웨이는 총 8만여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1만여개는 미국 정부의 심사까지 거친 핵심 특허다. 주로 통신 기술 관련 특허를 집중 취득하고 있다. 특히 5G 시대에 접어들어 화웨이의 관련 특허 취득이 급증하고 있다. 독일의 특허조사기업 IP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기업별 5G 표준특허 출원 건수에서 화웨이가 15.05%로 1위를 차지했다. 노키아(13.82%), 삼성전자(12.74%), LG전자(12.34%)가 그 뒤를 이었다.

막강한 특허를 바탕으로 화웨이는 다른 중국 기업과 달리 전 세계 시장에서 아무런 차질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내 스마트폰 부분 경쟁사인 샤오미는 관련 특허가 없어 중국과 인도 등 서구 기업들의 영향력이 없는 제 3세계 시장에서만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화웨이는 서구 기업들과 크로스라이선스를 맺고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군대식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일직선 돌격

런정페이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와 중국 인민해방군의 유착설은 끊임 없이 제기된다. 국가의 기초 인프라로 여겨지는 통신장비를 다루는 회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런정페이가 추구하는 군대식 조직 문화도 이러한 오해에 일조하고 있다.

화웨이는 개방과 협업을 추구하는 타 IT 기업과 달리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식 문화를 강조한다. 런정페이라는 리더가 방향을 세우면 회사와 구성원들이 그 방향을 향해 늑대처럼 쉬지 않고 돌격하는 것이다. 비판도 많지만, 이러한 조직 문화가 오늘날의 화웨이를 만드는데 효과적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런정페이는 보상이라는 당근과 해고라는 채찍을 함께 회두르고 있다. 매년 하위 성과자 5%를 해고한다. 대신 성과만 달성하면 억대 연봉과 파격적인 보너스를 제공한다. 회사내 야근은 당연시 여겨지며, 특정 기간내로 어떤 일이 있어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야근을 하다가 가정에 소홀해 이혼을 당한 것이 훈장처럼 여겨질 정도다. 중국 IT 업계의 살인적인 근무 강도를 상징하는 '996 근무제(아침 9시 출근 저녁 9시 퇴근 주 6일 72시간 근무)'의 원조가 바로 화웨이다.

런정페이는 창업 후 50년 동안 기업 공개를 하지 않고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런정페이는 화웨이 지분의 1.4%만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98.6%는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을 외부로 보내지 않고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 런정페이의 설명이다.
 

쉬원웨이 화웨이 전략마케팅 총책임자가 화웨이의 새로운 데이터 센터용 고성능 칩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바이두]


◆미국의 압박... 런정페이의 해법은 5G 기술력

지난 해부터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대상으로 압박과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동맹국에게 화웨이를 배제하라고 요청했지만, 실제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지난 해 미 의회는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의 모든 제품을 미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방수권법(NDAA)을 의결했다. 이어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런정페이의 장녀인 멍완저우(孟晚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가 대 이란 제재 위반 및 스파이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가장 큰 타격은 이번에 내린 거래금지 조치다. 국가가 해외의 기업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행정 조치다. 이번 조치로 인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드는 구글, 모바일 반도체를 설계하는 ARM, 서버용 칩셋을 만드는 인텔, 통신장비용 칩셋을 만드는 브로드컴 등과의 거래가 끊길 전망이다. 통신장비, 스마트폰, 서버 등을 만드는 화웨이의 입장에선 사업을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업계에선 미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지난해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의 연장선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표적인 중국의 글로벌 기업인 화웨이를 압박함으로써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국가 안보라는 양보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화웨이를 시작으로 DJI 등 중국의 유력 IT 기업의 손발을 잘라내 중국 정부의 백기 선언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IT 외신들은 이러한 상황을 과거 냉전에 빗대어 '기술냉전(The Tech Cold War)'이 시작됐다고 표현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이러한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런정페이는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매체와 인터뷰에서 "오랫 동안 통신장비나 스마트폰용 반도체 자체 조달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미국의 압박으로 인한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성장세가 20% 미만으로 꺾일 것으로 예상하는 등 힘든 한 해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중국 통신장비 회사인 ZTE처럼 벌금을 내고 미국 정부에 굽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CCTV 등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화웨이의 5G 기술은 타사보다 2~3년 앞서 있다. 중국의 5G 구축이 본격화되는 만큼 내수 시장을 굳건히 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0년 동안 강조해온 기술력과 저렴한 가격을 바탕을 2020년 전 세계적으로 활짝 열릴 5G 시장을 선도하면 미국이 제 아무리 압박해도 화웨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런정페이의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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