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9억명 표심은 모디 향해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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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4-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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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바싼 선거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지구촌 최대 민주주의 선거

지난 11일 한 달여 일정으로 막을 올린 인도 총선이 '지구촌 최대 민주주의 축제’로 불리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인도에는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생활 풍습이 상존한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200년 가까운 기나긴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다.  당시 극심한 가난과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동방의 '잠자는 코끼리'에 불과 했던 이 나라가 주요 서방 국가들보다 먼저 성인 모두에게 보편적 참정권을 부여하고, 비밀.직접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꽃을 피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쿠데타나 헌정 중단 사태 한번도 없이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뿌리 내린 인도. 이젠 국민 모두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가꿔진 거대한 정원인 셈이다. 1950년 1월 26일 공표된 인도의 내각 책임제 공화국 헌법은 수천 년 간 이어온 신분제도인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또 종교나 신념에 관계없이 성인 남녀에게 투표권을 인정했다. 카스트 제도는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최근 인도 정치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글로벌 경제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를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의 선거

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록사바(Lok Sabha)라고 일컫는 하원의 의석수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총리를 배출한다. 올해 인도 총선의 유권자 수는 무려 9억 명이 넘는다. 미국 인구의 거의 3배이다. 이 중에서 4500만명은 2014년 선거 이후 18세가 된 신규 등록 유권자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 하려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도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지난 11일 우타르프라데시, 웨스트벵골, 마하라슈트라 등 주요 주를 시작된 투표는 5월 19일까지 전국 29개 주를 돌며 7차례나 실시된다. 개표 결과는 5월 23일 동시에 발표된다. 선거법은 유권자의 집에서 2km 이내에서 투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전 국토에 투표소만 100만여 곳이 설치됐다. 군인.경찰 등 치안인력을 포함 1천100만명의 선거 관리 요원이 동원된다. 일부는 눈 덮인 히말리아 산맥의 오지와 뱅골만의 작은 섬 지역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장거리 여행에 나서야 한다. 유권자들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들의 소중한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고난의 강행군’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서부 구자라트주(州)의 기르숲 국립공원에서 사자들과 함께 지내는 단 한 명의 유권자를 위해 별도의 투표소가 마련되기도 했다. 뉴델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디어 연구소는 올해 선거 비용은 2014년 선거 추정 비용인 50억달러의 거의 두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2016년 미국 대선의 비용은 65억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가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의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셈이다. 인도 인구의 약 3분의 2는 35세 이하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열기는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다언어 다종족 다종교의 사회문제 극복한 선거 제도 

인도의 선거관리위원회는 복잡한 다언어, 다종족, 다종교 사회에서 민주적 선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문제를 극복해왔다.  사용 언어가 영어와 힌두어 외에 무려 650개나 된다. 하원의원 543석(대통령 지명 2석 제외)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 등록된 정당수만 해도 무려 2천여개. 이는 신분제인 카스트와 다양한 언어, 종족 그리고 종교에 기반을 둔 지역 정당이 곳곳에 넘치기 때문이다. 정당의 설립은 쉽다. 그러나 의석과 득표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 정당은 선거 직후 해산된다. 또 전국 정당으로 인정받으려면 득표율 등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지역 정당으로 분류돼 중앙정부 지원이 끊긴다. 국민 지지가 없으면 정당을 과감하게 도태시키는 이러한 제도는 인도의 복잡한 정치 지형에서 교통 순경의 역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선관위는 글을 모르는 성인의 투표 권리도 보장한다, 그리하여 인도 정당의 상징적인 기호가 하나씩 투표용지에도 표시된다. 나렌드라 모디(68) 총리의 집권 인도인민당(BJP)는 연꽃,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는 손바닥을, 대중사회당은 코끼리가 각각 상징이다.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정치그룹의 공존

집권당인 BJP는 힌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1980년 설립된 극우성향의 정당이다. 지난 2014년 총선에서 '모디 돌풍'에 힘입어 놀랍게도 과반이 넘는 282석을 차지하며 집권했다. 반면 오랜 전통의 INC는 겨우 44석을 얻는데 그치며 10년만에 정권을 잃었다. 현재 인도의 대표적 정치 명문가 출신인 라훌 간디(48) 총재가 '모디 심판론'으로 INC를 이끌고 있다. 그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인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의 증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라지브 간디 총리는 1991년 유세 중 암살 됐다. 라지브 간디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는 네루의 외동 딸이다. 그녀도 총리 재임시 1984년 시크교도 경호원이 쏜 총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잇달은 피살은 인도 현대 정치사에 큰 영향을 끼친 '네루-간디 가문'의 비극의 정점이었다. 1885년 설립돼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INC는 1947년 독립 이후 16차례 치러진 총선에서 6차례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4차례 연정을 구성해 모두 49년 간 집권했다. 인도 정당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다. BJP와 INC 외에도 1999년 INC에서 분리한 국민회의당(NCP), 카스트 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중도좌파 대중사회당(BSP), 1925년 창당된 인도공산당(CPI) 등 도 전국정당이다. 인도는 그야말로 민족주의 정당에서 공산당까지 다양한 정치그룹이 공존하는 다원화 민주주의 국가다.

운명의 '모디노믹스'

모디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인 '모디노믹스'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게된다. 그는 친기업 정책으로 지난 5년간 평균 7%대 경제성장을 주도했으나, 청년실업과 소득 격차 심화 등 내실은 약해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부가 실업률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인도의 한 언론은 실업률이 45년래 최악인 6%까지 상승한 것으로 보도했다. 인도는 경제 성장과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매년 810만명의 신규 일자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화폐개혁과 2017년 상품서비스세(GST) 전격 실시 등의 영향으로  경제성장률이 주춤하면서 실업난도 악화됐다. 1년 전만 해도 모디의 재선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청년 실업자와 농민 등 소외계층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선거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선거를 앞두고 지난 3개월 동안 인도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내린 것도, 경제 둔화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디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안보 문제를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고 있다. 과거 힌두교 극단주의 단체인 'RSS'에서 활동한 것을 알려진 모디의 집권후 소수 종교집단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고, 종교적인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인도의 최대강점인 '다양성'을 훼손시키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비춰지고 있다. 모디는 지난 2월 14일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와 관련,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그가 소위 '인도판 북풍'으로 불리우는 승부수를 띄우면서 그의 인기는 올라갔다. 집권 여당 BJP는  지난 해 12월 실시된 북부 '힌두 벨트' 3개주 의회 선거에서의 참패했다. 5년전 자신의 '표 밭' 이었던 이 곳에서 제 1야당인 INC가 승리를 거둔 것은 모디에게 큰 충격이었다. 모디 총리는 2001년 부터 2014년 총선 직전까지 구자라트주(州)의 최장기 주총리(Chief Minister)로 재임하면서, 과감한 규제 철폐와 대규모 외자 유치,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강력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구자라트주는 그가 주총리로 재임한 기간 인도 전국 평균의 2배에 가까운 약 13%의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이른바 '구자라트 모델'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모디의 집권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패배하면 '구자라트 모델'을 기반으로 수립된 인도의 성장 전략도 빛을 잃게 된다.


농심(農心)이 좌우한다

안개 속에 빠진 선거 정국에서 가장 큰 변수는 농심(農心)이다. 인도 경제에서 농업 비중은 15%에 불과하지만 농업과 연계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보다는 농촌의 표심이 결국 이번 선거의 향방을 가늠한다고 볼 수 있다. 5년 전과 달리 BJP는 주요 표밭인 북부 농촌 지역에서 야당과 지역 정당들에게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모디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각종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실시되며 제조업, 건설, 서비스 분야의 성장은 약진 하고 있지만 농업 위기는 계속되며 농가 수익은 제자리걸음이다. 또 정부가 도시 지역 소비자들을 위해 농산물 가격이 제도적으로 낮게 통제되면서 사회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모디 집권 기간 농업 부문은 평균 2.5% 성장 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전 INC가 집권한 2004~2014년 기간 매년 5.2% 성장과 비교하면 절반 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이다. 5년 전 총선 당시 농가 수익을 2022년까지 2배 늘리겠다는 모디의 약속은 이젠 공허한 메아리가 된 것이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농민 자살률 증가이다. 농산물 가격 하락, 운송 및 저장 비용 상승, 부채 증가 등으로 생계가 극도로 어려워진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지난해 정부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농민들은 대도시로 몰려가 수없이 많은 시위를 벌였다. 지난 12월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했던 북부 '힌두 벨트'에서의 인구 75%는 농촌 주민이다. 모디 총리는 이곳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모든 농민에게 매년 6천 루피(약 10만원)의 현금 지급 등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 농산물 소비국인 중국에 농산물 수출 확대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의 틈새를 노린 전략이다. 중도 좌파인 간디 총재는 최근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가구에 매월 6천루피를 지급하고 전국 규모의 농가 부채 감면을 추진한다는 더욱 파격적인 대책을 내놨다. 두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선심 정책을 내놓으면서 농민들의 바닥 민심 구애에 나선 것이다. 

모디 총리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

5년 전 모디는 인도를 힌두 민족주의에 깊은 뿌리를 두고 경제에 활력이 넘치는 글로벌 파워로 변모 시킬 것이라는 '뉴 인디아(New India)' 공약으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모디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긍정과 부정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번 총선은 분명 모디에 대한 국민투표이다. 어떻게 보면 인도는 지금 총선이 아닌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 인도 총선 현장 (메루트[인도]=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1일(현지시간)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동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우타르프라데시주 메루트시의 집권 인도국민당(BJP)의 총선 유세장에서 BJP 소속 라젠드라 아그라왈 연방 하원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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