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면 하기 싫은 건 연준도 마찬가지...'금리인하' 물 건너 가나

김신회 기자입력 : 2019-04-09 10:56
트럼프 '금리인하파' 2명 차기 연준 이사 낙점...'독립성' 강조 연준 반동 가능성 1990년대 연준 금리인하 사례 해석 엇갈려...시장선 연내 금리인하 확률 50%
"누가 시키면 막상 하려던 일도 하기 싫은 법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얘기다. 연준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4번이나 올렸지만, 올해는 사실상 금리인상 중단을 선언했다. 경기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유동성 고삐를 죄는 통화긴축 행보에 제동을 건 셈이다. 연준 안팎에선 금리동결을 넘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엿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금리인하를 원한다는 점이다. 그는 전부터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를 비판해왔다. 연준이 고금리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막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트럼프는 최근 금리인하 압력을 더 노골화했다. 연준 이사 빈자리 2개를 '금리인하파'로 채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치적 독립성을 신조로 여긴다. 대개 물가안정을 지상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목표가 분명하니,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더불어 완전고용이라는 '이중책무'를 법에서 부여받았다. 1960~70년대 정권에 휘둘린 적이 있지만, 1990년대부터는 대통령이 연준 결정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전통이 됐다.

이 전통을 깬 트럼프의 압력은 금리인하 여지를 견주고 있던 연준의 속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독립적인 판단 아래 금리인하를 단행해도 트럼프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기 쉬워서다. 연준이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내 금리인상 중단 결정을 내린 것도 트럼프의 압력 때문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연준 출신인 조 가뇽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연구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연준의) 다음 행보로 금리인하를 예상하는 건 정신나간 게 아니다"라면서도 "연준이 트럼프가 요구한 걸 하기는 곤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독립성을 짓밟으려 하면 연준의 다음 결정이 더 어려워질 뿐이라고 거들었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연준이 아무리 금리인하 필요성을 절감해도 트럼프의 압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금리인하 카드를 접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 본부[사진=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이사 7명 중 6명 지명...연준 '트럼프판'

FOMC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 비슷한 연준의 정책결정기구다. FOMC 정례회의에서는 연준 이사 7명(의장, 부의장 포함)과 12명의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가운데 5명 등 모두 12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 연은 총재는 해당 은행 이사회가 지명하고 연준 이사회의 승인을 받으면 되지만, 연준 이사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7명의 연준 이사 가운데 이미 네 자리를 채웠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2명의 부의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남은 공석은 두 자리. 트럼프는 스티븐 무어 헤리티지재단 연구원과 허먼 케인 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이사를 지명한다는 방침이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 외에 7명 가운데 6명의 이사가 트럼프의 사람이 되는 셈이다.

파월 의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우려와 달리 연준의 독립성을 웅변하며 트럼프의 압력에 저항해왔다. 지난해 2월 취임한 그는 트럼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네 번이나 올렸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무어와 케인을 차기 연준 이사로 낙점한 게 파월 의장을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 출신인 빌 잉글리시 미국 예일대 교수는 연준이 노골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독립성을 뽐내온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안 그래도 복잡한 연준의 일이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기준금리 추이[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그린스펀도 낮췄는데...금리인하 찬반 논란

연준은 지난달 FOMC 정례회의에서 연내에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양적긴축도 오는 9월 말에 끝낼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곳곳에서 짙어진 경기둔화 신호에 대응한 것이다. 연준 안팎에서는 금리동결을 넘어 금리인하 필요성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호전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향방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역전됐던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가 정상으로 돌아서면서 경기침체 공포가 누그러졌고, 지난 5일 확인된 미국의 3월 고용지표도 전월에 비해 급개선되면서 완전고용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지표도 여전히 연준 목표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위기관리 차원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이 유효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CME그룹에 따르면 미국 금리선물시장에서 본 연준의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은 50%에 이른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1987년 8월~2006년 1월 재임)의 사례를 근거로 금리인하 가능성을 엿봤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이 미국 경제지표가 탄탄했는데도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잉글리시 교수는 연준이 1990년대 초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한 뒤 1995년부터 다시 금리인하에 나섰다며, 이때도 미국 경제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경제가 올해 성장세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면, 연준이 당시와 비슷한 '중간궤도 수정'에 나설 수 있다고 봤다.

잉글리시는 또 '중립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상태라 연준이 평소보다 성장둔화에 더 민감해졌다고 지적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경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궁극적인 금리를 말한다. 중립금리가 낮아진 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 아래 저성장 추세가 짙어진 탓이다. 금리를 더 낮출 여지가 작아진 만큼 연준이 성장둔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가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반면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성장세가 추세선을 웃돌고 있다며 금리인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연준이 1995년, 1998년 금리인하에 나선 건 각각 이전의 과도한 긴축과 시장 위기에 대응한 것으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FT는 연준 내부에서 무역갈등과 세계적인 성장둔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같은 외부 악재를 금리인하 근거로 내세우는 이들이 있지만, 미국은 그동안 외부 변수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또 연준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준이 시장이 간과한 심각한 악재를 발견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준이 과거 금리인하의 역효과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로 그린스펀 전 의장이 1990년대 말 단행한 금리인하는 자산시장의 거품을 일으켜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씨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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