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스페셜 칼럼] 4차 산업혁명과 남북 해양수산 협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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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9-03-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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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4차 산업혁명 최적 조건 갖췄다 ..남북 '자율운항'배 공동개발 활용을

 

[최재선 선임연구위원]


선진국과 후진국,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해운회사인 머스크 라인은 지난해 1월 정보통신과 디지털 부문을 전면에 내세우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마케팅 부문이 강한 해운기업의 전통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글로벌 시장이 디지털 경제로 이동하는 점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같은 조치 이후, 머스크 라인은 디지털 해운경영에 올인하고 있다. 그 첫 작품이 IBM과 합작으로 만든 트레이드렌즈 라는 블록체인 해운물류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에는 머스크 라인뿐만 아니라, 이 회사 배가 기항하는 항만 터미널, 화주, 보험회사 등 모두 94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트레이드렌즈 출범 후 글로벌 해운물류업계는 순식간에 블록체인 열풍에 휩싸였다. 세계 2위인 프랑스 선사 CMA CGM 등은 별도로 글로벌 쉬핑 비즈니스 네트워크(GSBN)라는 블록체인 물류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유럽 항만은 물론 호주 내륙 물류단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최근 물류업계의 핫한 트렌드는 4차 산업혁명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대세다. 아프리카는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는 저개발국가가 대부분이다. 빈곤과 기아, 질병, 그리고 종족 간의 분쟁이 아프리카 대륙의 이미지다.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는 케냐는 2016년 기준으로 국민소득이 1600달러다.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적은 금액이다. 이런 케냐가 2000년대 후반부터 유선전화 시대를 거치지 않고, 곧장 휴대폰 시대로 직행했다. 열악한 통신 인프라를 건설하는 대신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됐다. 금융 분야에서 먼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사파리폰이나 영국에 기반을 둔 보다폰과 같은 통신회사가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 간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핀테크 산업이 피어났다. 스마트폰 소지자는 24시간 365일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돈을 보낼 수 있다. 이른바 엠페사(엠은 모바일, 페사는 현지어로 돈이라는 뜻)의 위력이다. 케냐 현지에서는 13만 개가 넘는 엠페사 에이전트를 통해 현금 입출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엠페사는 은행 역할은 물론 핀테크 산업의 기본공식을 보여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선진국 기업이나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서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협력 사업들이 논의되고 있다. 남북한이 합의한 서해 평화협력사업과 동해안 관광단지 조성사업, 도로와 철도 연결 사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달 초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추진할 남북 협력 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향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조치가 완화되거나 해제될 경우, 남북경협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시각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는 언뜻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 정도인 북한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지금의 북한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을 토착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케냐와 같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단계를 거치지 않고 한순간에 도약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북한 경제의 단번 도약도 4차 산업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여시재의 민경태 박사는 북한이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는 데 있어 다른 나라보다 더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경우 최고지도자의 의지만으로 이 같은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이나 토지 보상과 같은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특히 북한의 경우 2010년대 들어 전국에 모두 27개에 달하는 경제특구,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놓는 등 인민경제 개발에 대한 의지를 계속 다지고 있다. 북한 경제 특구를 개발할 때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최첨단 시스템을 구축하면,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테스트 베드 역할은 물론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데 유리하다. 해양수산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해양수산부와 관련업계는 4차 산업혁명 아이템을 현장에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 SDS 등이 개발한 해운물류 블록체인 시스템이 올해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다. 무인 자동화 항만과 스마트 포트도 만든다. 수산 쪽에서는 스마트 양식장 클러스터가 부산에 건설된다. 자율운항선박도 개발한다.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해양수산 분야 4차 산업혁명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남쪽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북한 실정에 맞게 변용하면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남북한 민·관 전문가가 ‘스마트 오션 코리아 전략’을 짜고, 그 틀에서 AI,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한반도 균형 성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운분야에서는 자율운항선박을 남북한이 같이 개발해 공동 활용하는 방안이 있다. 한반도 전역을 커버하는 연안 해운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 물류서비스 속도는 물론 선사 운영비용 절감, 바다의 안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북한 동해안과 서해안의 거점 지역에 스마트 포트를 건설하는 대안도 있다. 이 경우 북한이 경제특구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나선, 청진, 원산, 신의주, 해주 지역 등에 스마트 시티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서 스마트 항만을 개발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스마트 수산 양식장을 북한 동해안에 설치해 연어 등 냉수 어종을 집중 양식하는 사업도 가능하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해마다 신년사에서 수산업 발전을 강조하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높다. 해양수산 4차 산업혁명 관련 인력 양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평양 과기대 등과 같은 북한 교육기관과 협력 사업으로 추진해 볼 만하다. 이를 토대로 북한을 해양수산 4차 산업혁명 창업기지화하는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다. 남쪽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북쪽으로 확산되는 것은 이제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북한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단번 도약이 가능한 길, 그 길을 남북이 함께 만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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