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칼럼] 新도광양회 모드로 전환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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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19-03-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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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제13기 2차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가 '외상투자법(外商投資法·외국인 투자법)’을 의결하는 것으로 이번 주 막을 내린다. 이 행사는 중국 정부의 다양한 대내외 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중요한 행사이다. 리커창 총리는 전인대 '2019 정부공작보고'에서 "중국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장기간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강한 중국을 내세우기보다는, 저자세로 중국이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개발도상국이라는 자리매김을 재차 강조하면서 새로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2019 정부공작보고(35쪽, 2만자 분량)에서 언급한 키워드를 찾아보니 중국굴기의 두 축인 인류운명공동체(2회)와 일대일로(4회) 언급은 상대적으로 자제되었고, 공산당정권의 핵심인 빈곤퇴치(30여회) 문제가 많이 등장했다. 지난해 19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 2기 출범과 함께 우렁차게 포효했던 중국이  미국에 덜미를 잡혀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등소평은 1992년 초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은 100년(1978~2078년)간 동요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28자 방침(冷静观察, 稳住阵脚, 沉着应付, 韬光养晦, 善于藏拙, 决不当头, 有所作为: 냉철하게 관찰하고, 내부의 질서와 역량을 공고히 하고,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조용히 실력을 키우며, 능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며, 절대 우두머리가 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함)을 준수할 것을 중국지도부에 당부한 바 있다. 이후 중국은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활용한 산업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인대에서 의결될 ‘2018 외상투자법’에 관심이 크다. 외국투자자에게는 중국시장 진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외합자경영기업법'(1979), '외자기업법'(1986), 그리고 '중외합작경영기업법'(1988) 등 '외자 3법'을 하나로 묶어 1995년에 처음 외상투자법을 제정한 후 9차례에 걸쳐 수정 보완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제도를 수용한 후 자본을 투자하는 외국인투자자에게 중국시장을 제공하는 ‘시장과 자본의 맞바꾸기(以市場換資本)’, 지속적인 고속경제성장과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상황에서 중점육성산업 분야의 투자를 선별적으로 유인하는 ‘선택적 외자유치(招商選資)’, 그리고 선진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외국인투자자에게 중국의 투자시장을 개방하는 ‘시장과 기술의 맞바꾸기(以市場換技術)’와 같은 단계적 외자유치 정책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국유기업보조금 지급, 지적재산권의 도용, 반시장적 기술탈취 등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지 못하는 약탈적 경제행위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2018년 후반기에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을 기점으로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던 양국관계가 첨단기술패권을 둘러싼 전략적 경쟁이 주가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번 전인대 업무 보고서에선 ‘중국제조 2025’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첨단기술력 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의 핵심내용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개발 가속화, 첨단설비 및 바이오의학 개발, 친환경에너지, 신소재 등 신흥산업 육성에 올인할 것이다. 다만 지속적으로 첨단기술력 수준을 제고하되 이를 자랑하지 않고 은밀하게 육성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당분간 미·중 무역전쟁으로 받은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체제를 재정비하는 신(新)도광양회의 모드로 전환할 것이다. 즉,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등소평의 28자 방침 혜안이 중국의 미래를 위한 금과옥조라는 경험적 사실을 겸허하게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또한 이번 양회에서 ‘중국몽’의 물질적 기초로서 기술 굴기를 상징하는 중국제조 2025를 언급하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은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중국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서 다시 구축(重思中國, 重構中國)’하는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실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개막한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연례회의에서 정부 업무보고 도중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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