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일하지 않는 국회, 염치 없는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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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3-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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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국회가 두 달 만에 문은 열었지만 살얼음판이다. 합의에 의한 국회 정상화가 아닌 까닭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서로 네 탓 만하며 벼르고 있다. 쟁점 법안은 물론이고 김태우, 신재민, 손혜원,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까지 곳곳에 지뢰밭이다. 싸움터만 장외에서 원내로 옮겨왔을 뿐이다.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은 방대한데 대략 난감하다. 미세먼지에 숨 막히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한반도 정세는 불안한데 국회만 바라봐야하는 국민들은 답답하다.

올해 국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국회법은 정기회(100일·9월 1일 소집)와 2, 4, 6, 8월 짝수 달에 임시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로 싸우느라 2월 임시회는 건너뛰었다. 짝수 달에 임시회를 열도록 국회법이 개정된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그런데도 세비는 꼬박꼬박 챙겼다. 국회의원 1인당 월 평균 세비는 1,500여만 원이다. 대략 계산하면 300명에게 지난 두 달 동안 80억여 원이 지급됐다. 울화통이 터진다는 국민들이 많다. 이쯤해서 생각나는 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다. 근로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임금도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다. 하지만 우리 국회만 예외다. 일하지 않고도 돈은 받는 대한민국 국회, 존재 의미를 묻게 한다. 세비를 반납하자는 목소리도 없다. 지난해 정세균 국회의장은 스스로 파행 책임을 물어 4월 세비를 반납했다. 정작 의원들은 외면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지역행사에도 참석하고 지역민도 만난다고. 그러나 국민들 시선은 싸늘하다. 국회의원에게 본업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본업은 제쳐둔 채 다른 일을 들먹이니 본말이 전도됐다. 그런 논리라면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 전투를 기피하는 군인, 범인 검거를 눈감는 경찰관도 용납된다. 더구나 지역구 관리는 다음 선거를 위한 것일 뿐이다. 입법 활동은 게을리 하는 국회는 국회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국회 열리는 게 뉴스가 됐다. 당연한 게 뉴스가 되는 대한민국 국회는 비정상적이다. 국회의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20대 후반기 국회에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법안이 산적돼 있다. 유치원 3법,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개편안, 선거제도 개편이 대표적이다.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은 31%다. 무려 1만2,551건이 계류 중이다. 일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았던 19대 국회 처리율도 47%였다.

그럼에도 20대 후반기 국회는 소중한 두 달을 허비했다. 협치와 타협은 실종 된지 오래다. 파행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 국회운영을 주도하지 못했고, 한국당은 제1야당으로 책임을 방기했다. 둘 다 국회 파행 당사자다. 집권여당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다. 여당(與黨)에서 ‘여(與)’는 주다, 베풀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양보하고 배려하는 기득권자임을 망각하고 있다. 대신 날선 비난에만 능하다. 집권했지만 아직도 야당 기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안마다 이기려고만 한다. 나만 옳다는 확증편향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양보와 타협이 없는 여당은 옹졸하다. 국회 파행 책임을 야당에만 떠넘길 수 없는 이유다.

한국당 또한 정쟁에만 매몰돼 있다. 아예 습관이 됐다. 툭하면 국정조사, 특검, 청문회를 꺼내들며 국회를 공전시킨 주범이다. 20대 국회에서 한국당 보이콧은 16차례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정기회와 임시회는 15차례 열렸다. 결국 회기 때마다 보이콧과 장외 투쟁을 밥 먹듯이 한 셈이다. 야당은 생산적인 견제와 비판, 합리적인 대안 제시가 있을 때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국민들 눈에는 잘못되기만 바라는 증오 정치로 보인다. 이런 행태를 고집한다면 한국당이 설 자리는 없다. 국민들은 그런 야당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협상에서 일방통행은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주는 게 상식이다. 북미정상 회담 결렬은 상식을 외면한 결과다. 북은 북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자신들 주장만 앞세웠다.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는 불안하다. 6일자 뉴욕타임지는 북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재건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어느 때보다 국회 역할이 요구된다. 생산적인 3월 국회를 바란다면 협상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손혜원 의원 처리가 시금석이다. 한국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다 상임위 청문회로 한걸음 물러났다. 이제는 민주당이 양보할 때다. 계속해서 탈당한 손 의원을 감싸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회는 싸움판이 되고 의혹은 부풀 수밖에 없다. 목포 투기 의혹은 국민들도 궁금해 하는 사안이다. 나아가 청문회도 못 여는 국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은 탈당 기자회견장에 배석한 홍영표 원내대표 처신에 대해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3월 국회는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문만 연채 정쟁을 반복한다면 두 정당은 거센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세비 반납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일하지 않고 세비만 축낸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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