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더딘 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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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3-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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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매년 그렇듯이 봄은 더디옵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닷새째 서울에는 미세먼지 저감 경보가 발령됐고, 전국은 열하루째 뿌연 먼지에 갇혀 있습니다. 입춘, 우수를 지났으니 절기상으론 봄입니다. 내일은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3월 6일)입니다. 그런데 봄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닙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국회를 대하노라면 이 말이 딱 어울립니다. 온 국민이 기대했던 제2차 북미정상 회담은 결렬됐습니다. 또 국회는 공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4,500km 철길을 달려 하노이를 찾았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빈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워싱턴으로 복귀했습니다.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했기에 국민들이 느낀 실망감은 큽니다. 이산가족들은 또 다시 시름에 잠겼습니다. 남북철도 연결과 경협 특수를 기대했던 경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모든 게 뿌연 미세먼지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문이 아예 닫힌 것은 아닙니다.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판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끔씩 그냥 물러날 때도 알아야 한다”면서도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폼페이오 국방부 장관 역시 “지금까지 진전만 가지고도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긍정적으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북한 측 대응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결렬 이유를 설명하면서 절제된 언어로 비난을 자제했습니다. 공방은 벌이면서도 협상은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당부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중국, 일본, 러시아 대사를 새로 임명합니다. 4강 외교 라인을 재정비합니다. 보다 정교하게 비핵화를 뒷받침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전문가들은 회담 결렬이 오히려 비핵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리라고 전망합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상대가 요구하는 패를 정확히 읽었기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영변 이외 추가 폐기를, 북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주장합니다. 서로 눈높이가 다르기에 다시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물론 마냥 낙관적이지만 않습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최종 종착지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내 아이들이 평생 핵을 이고 살아가길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세 차례 만남을 통해 속마음을 확인했습니다. 불신은 걸림돌입니다. 봄을 맞으려면 겨울을 보내야하듯 믿지 못하면 평화도 없습니다. 한국당은 협상 결렬을 기다렸다는 듯 공세적입니다. 강대강 대치 국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당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습니다. 판문점 선언을 뒷받침하는 국회 비준 동의를 거부했습니다. 또 한미 정상회담 지지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도 반대했습니다.

제1야당다운 건강한 견제와 비판, 합리적인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러니 당리당략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몽니는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습니다. 정쟁에만 혈안 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날은 불 보듯 합니다. 고립을 넘어 도태, 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원인을 꼼꼼히 복기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냉정하게 비판하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실패가 득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2.27 한국당 전대에서 국민들은 퇴행적인 행태에 등을 돌렸습니다. 민심이 이렇습니다.

지난 주말 부안 내소사(來蘇寺)에 다녀왔습니다. 어느새 봄은 소리 없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노란 복수초는 메마른 숲을 별처럼 수놓았습니다. 설선당(說禪堂) 뒤편 산길에도 물오른 버들가지와 홍매화, 백매화가 한창입니다. 아무리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어도 봄은 봄입니다. 우리 마음이 아직 봄을 맞을 준비가 안 됐을 뿐입니다. 한국당은 아직도 어두운 겨울 숲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역사를 부정하고 시대 흐름을 거스른다면 봄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보수 재건이란 봄은 인식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조만간 북미회담 합의라는 봄 꽃이 활짝 필 겁니다. 그 봄을 위해 멀리 보고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은 아니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고 했습니다. 한나라 때 미인 왕소군이 느꼈을 소회를 읊었습니다. 억지로 흉노에게 시집가야 했던 왕소군에게는 어떤 봄도 봄이 아닙니다. 한국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국민들 뜻을 거스른다면 찬란한 봄은 지나쳐 갈 겁니다. 오늘 국회는 두 달 만에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이렇듯 더디지만 봄은 옵니다. 치열하게 논쟁하며 한반도에 봄을 열어야 합니다. 더딘 봄이 오히려 아름다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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