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 애국가 '무궁화 3천리'는 친일파 윤치호의 국토농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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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9-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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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서도 4천리라 일컬었던 강토를 임의로 줄여…대한민국 100년에 진정한 '애국가' 다시 만들어야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애국가는 가사와 작사자가 문제의 핵심인데 작곡자에만 국한하고, 간도는 조선후기에도 우리 땅인데 아득한 고구려 발해시대에만 가둬두는 법. 법은 고치라고 있는 것인데 악법도 지켜야만 한다는 프레임, 그 악마의 프레임을 깨뜨려라. 

필자는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만 친일파였다면 애국가 교체에 반대했을 것이다. 애국가 곡조에 딱히 친일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국가는 연주곡이 아니라 가사곡이다. 악기로 연주만 하기 위한 곡이 아니라 연주에 맞춰 가사를 부르는 곡이란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지(知)와 정(情)을 하나의 노랫말로 응축한 애국가 가사는 그것의 곡조에 비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언·관·학은 수십년째 애국가 작곡자의 친일성만 ‘간헐적’으로 지적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다. 외인이 들으면 애국가가 마치 스페인 국가처럼 가사 없는 연주곡인 줄로 알겠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게 아니라 프레임에 있는 것인가.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는 1904년 8월 일본제국에 대한제국의 모든 정책결정권을 상납한 갑진늑약을 체결했고 1905년 11월 외교권을 상납한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했다. 1909년 11월에는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 추도행사 한국 측 대표를 맡았다. 합방 이듬해 1911년 남작 작위를 세습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일제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일어난 3·1 독립운동을 윤치호는 3·1폭동이라고 모독했다. 일제침략군이 30만 난징 대학살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남산기슭의 조선신궁에서 제사장으로서 난징함락 일본군 승전기념제전을 집전했다.

윤치호는 이토지코(伊東治昊)로 앞장서서 창씨개명하고 조선인의 일제 침략 전쟁 참여를 독려했다. 마침내 그는 친일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도 못해본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역임했다.

“우리 민족의 아버지 미나미 총독이 총을 메고 나서라면 총을 메고 나섭시다. 우리 반도 민중도 일본 내지 동포와 같이 ‘나라’를 위하여 살고 ‘나라’를 위하여 죽자고 각오합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윤치호(이토지코), 그의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그가 작사한 애국가의 '국(國)'은 어디일까?

국가(國歌)는 문자 그대로 한 나라의 찬가이다. 애국가에 종교적 색채와 국가주의 경향은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독교나 국가주의라기보다도 우리 영토를 축소 조작한 애국가의 ‘국(國)’이 일본이라는 데 치명적 문제가 있다. 특히 후렴구 무궁화 삼천리(특히 삼천리)는 어영부영 넘어 갈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19세기 후반 일제 침략 이전 조선과 중국의 모든 문헌에 우리 영토는 사천리로 표기되어 있다. 삼천리는 하나도 없다. 고대사까지 멀리 갈 것까지 없다. 중국의 근세인 명(明)·청(淸) 시대를 대표하는 총서·사서·지리지 등 각종 문헌에는 조선 영토는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조선 영토를 삼천리로 표기한 중국 옛 문헌은 단 1개도 없다. 참고로 중국의 1리(里)는 약 0.5㎞로 한국의 1리 약 0.4㎞보다 긴 거리다. 따라서 조선영토 남북 사천리는 약 2000㎞로 제주도 남단에서 러시아의 하바롭스크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거리다.

그렇다면 삼천리는 어디에 쓰는 용어였을까?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반복학습 덕분일까. 흔히들 삼천리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전체를 이르는 말로 쓰여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삼천리는 강토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사형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형벌용어였다. 삼천리는 대명률(大明律)에 삼천리 유형의 죄라는 뜻이다. 장일백(杖一百), 유삼천리(流三千里), 즉 곤장 100대를 때린 후 가장 먼 삼천리 유배형에 보내는 것이다. 곤장 100대를 맞을라치면 다 맞기도 전에 출혈로 급사한다. 삼천리 귀양을 떠나기 전에 황천으로 영원한 유배형을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불행과 죽음의 관재수를 뜻하는 삼천리가 우리 강토의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 이후다. 그 시절 그 누구보다도 삼천리 강토를 제일 많이 말한 자는 윤치호였다. 임금은 국토를 사천리라 하는데 신하는 삼천리라 하다니. 윤치호가 얼마나 삼천리를 입에 달고 달았으면 고종실록에도 두 차례 ‘윤치호’와 ‘삼천리’가 나란히 나온다.

그리고 ‘무궁화 삼천리’의 무궁화는 황해도 이북지역에는 자생하지 않는 꽃이다. 무궁화의 한반도 내 자생범위는 삼천리는커녕 이천리도 안 된다. 결국 ‘무궁화 삼천리'는 간도는 물론 북한지역조차 포함할 수 없게 만들었다. 조선 왕실의 국화는 오얏꽃(李花·자두나무 꽃)이었다. 자두나무 자생범위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의 지린성·랴오닝성 등지다. 무궁화의 자생범위인 한반도 남쪽 절반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넓다. 조선왕조실록의 사천리 조선 강토와 부합한다.

윤치호는 1907년 ‘무궁화 삼천리’를 작사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 ‘사천리’를 ‘삼천리’로 축소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일제의 ‘식민 반도사관’을 수용한 종일매국 민족반역죄이자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 야욕의 단초가 되게 한 국토참절 대역죄를 저질렀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특히 펜이 악마의 손에 들려진다면 그 해악은 칼보다 백만 배 크다. 사천리 우리 영토를 일천리나 참절, 무혈 헌납한 '애국가'의 '삼천리'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게 어찌 윤치호 개인만을 비난 성토하고 통탄만 하고 그냥 지나칠 사안인가.

애국가 문제는 미래지향적 사고 운운하며 덮고 지나갈 역사문제가 절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권과 국토, 국가 근본 존재 이유와 직결된 핵심현안이다.  세계 주요 20개국(G20)은 물론 유엔회원국 193개 중 한국처럼 주권국가의 상징이자 영혼인 국가를 헌법과 법률은커녕 하위법령도 아닌 행정기관 내부지령에 지나지 않는 훈령으로 취급된 나라는 없다.

개살구가 살구가 아니듯, 너도밤나무가 밤나무가 아니듯,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있지도 않은 국가로서의 ‘애국가’ 폐지에 따르는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조차 없다. ‘애국가’를 폐지하고 진짜 국가를 제정하는 건 골키퍼 없는 빈 골대에 공 넣기보다 쉬운 일이다. 허구한 날 친일청산 말로만 부르짖지 말고 이처럼 법 개정이 필요없어 개선이 쉽고 생활에 밀접하며 나라의 영혼인 애국가부터 바로잡자.

순국선열 호국영령들이 선혈을 쏟아 물려준 사천리 금수강산에서 남한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일천리나 스스로 참절하는 그 입으로 어떻게 남북통일, 동북공정, 친일청산, 새로운 백년을 말할 것인가.

우리 대한국민은 국토참절가(歌) 일본애국가를 듣고 부르며 살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과 지혜를 모은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 국가 제정을 선포하라. 새로운 100년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올 광복절엔 '일본애국가'가 아닌 '한국국가'를 부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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