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논란, 몸통인 교육부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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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박승호 기자
입력 2019-02-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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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지정 평가기준 정해 지역교육청에게 미루고 뒷짐

  • 전북, 상산고 자사고 폐지 막기 서명운동 돌입

전주 상산고 전경. [사진=상산고 제공]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놓고 전주 상산고와 전북교육청이 강 대 강으로 대치 중이다. 하지만 전북교육청은 교육부 방침에 따른 것이어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몸통인 교육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북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자사고 재지정 때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통합형전형 선발비율’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전북교육청과 상산고, 학부모의 입장을 차례로 알아보고 쟁점인 사회통합형전형 선발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전북교육청 "절차와 일정대로 평가하겠다"

상산고 측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거부하면 행정 절차대로 처리하겠다고 25일 으름장을 놨다. 학교가 평가를 거부하면 행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합당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계속 평가를 거부하면 사실상 자사고 재지정은 없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오는 8월에는 고교입시 전형을 발표해야 하므로 7월 이전에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가 7월 전에는 나와야 한다. 학교 의사와 관계없이 절차와 일정대로 평가하겠다”는 입장이다.

평가를 거부하면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고 자사고 재지정 여부를 판단할 평가 자료가 없으니 상산고는 더는 자사고가 아니라는 엄포다.

◆ 상산고 "평가거부나 법적대응, 둘 중 하나"

최근 열린 교직원회의에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대한 학교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의견이 정리되지 않았다.

교육청 성향에 따라 평가방식이 급변하지 않도록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과 학생을 보호해야 하니 도 교육청과 충돌을 피하고 평가와 별개로 소송을 제기하자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상산고 한 관계자는 “23일부터 회의를 열고 학부모, 교직원, 동문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 대응방안을 결정해 이달 안에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평가거부나 법적대응,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 상산고와 서울지역 자사고 학부모 "자사고 취소 위해 만든 평가 지표일 뿐" 집단 반발

"전국의 모든 자사고 특수목적고가 없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하필 낙후된 전북이 가장 앞장서 스스로 먼저 없애겠다는 건가. 지혜롭지 못한 처사다. 명문고교, 명문대학이 주는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큰데."

상산고 학부모들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는 불공정하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 150여명은 지난 23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강계숙 비대위원장과 학년별 대표 학부모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했다. 또 서명 운동과 시위, 교육감 면담 등 집단행동을 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은 상산고 측이 그동안 주장했던 평가지표의 불합리성에 공감하고 “전북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지표는 자사고를 취소하기 위해 만든 지표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전북교육청이 일방적으로 평가지표를 강화해 학생들이 피해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은 단순히 학교 유형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학생의 입시 방향이 바뀌고 새로 대비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사전 예고나 대비책이 없이 자사고 폐지를 고려한다면 지정 취소된 후에도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교육정책이 지역 교육청 방침에 따라 바뀌는 점도 지적했다.

학부모 김 모 씨는 “전북을 제외한 다른 지역 교육청들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 수정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같은 조건에서 학교가 전주에 있다는 이유로 자사고 재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기준을 70점으로 정하고 전국 11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10개 교육청이 교육부 입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북교육청만 유일하게 교육부의 기준보다 10점이나 높은 80점을 적용하기로 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반발이 거세다.

서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자사고연합회는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통과 기준선을 높인 재지정 평가기준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했다.

서울 지역 22개 자사고 교장들은 지난 20일 회의를 열고 서울시교육청이 최종적으로 재지정 평가기준을 수정하지 않으면 교육청의 평가 일정에 따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상산고 주변 상권 주민들도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서명에 참여한 인근 주민들은 상산고에 다른 지역 학생, 학부모들이 오면서 죽었던 지역 상권이 되살아났다며 상산고가 일반고로 바뀌면 학생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 사회통합형전형 선발 비율 합리적 항목 의문

전북도교육청과 상산고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배경에는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 10%가 핵심이다. 이 같은 방침을 제시한 교육부가 무책임하다는 주장도 함께 나온다.

교육부는 2013년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과 관련해 자사고의 사회통합전형 비율 확대를 권고했다는 이유로 재지정 평가에 반영했다. 따라서 전북도교육청과 상산고의 혼란만 부추기고 교육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산고의 경우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사회통합전형 선발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적정 수준이라 판단한 3% 비율을 유지했다.

전북도교육청도 교육부의 권고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현행법상 강제할 수 없어서 상산고가 정한 사회통합전형 선발 비율을 그동안 승인했다. 타 시도의 경우 전남을 제외하고는 교육부의 권고 방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부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지표 중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항목을 포함해 선발 비율 10%를 만점(4점)으로 정하고 그 이하일 경우 20%씩 점수를 깎도록 했다.

문제는 사회통합전형 선발을 위한 노력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선발 비율’ 항목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전주 상산고는 평균적으로 사회통합전형 선발(11명) 때 지원자가 10명 안팎으로 비슷하거나 미달인 수준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올해 사회통합전형 비율을 10%까지 확대한 전남 광양제철고도 지원자가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 권고에 따라 광양제철고에 사회통합전형 비율을 늘릴 것을 유도했지만 정작 지원율은 낮은 편이다”며 “이제는 우리 지역에서 성적 높은 학생들이 자사고를 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10%라는 선발 비율이 과연 현실에 맞는 기준인지 의문이 들고, 교육부가 점수를 깎기 위해서 올린 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전북도교육청도 불만이다.

대통령 공약인 일반고 전환 방침에 따라 교육부가 평가지표를 만들어 놓고 지역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북도교육청 한 관계자는 “상산고가 반발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다. 교육부에 수차례 문제점을 설명했지만 무시하고 평가지표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래놓고 평가 권한이 각 시·도 교육감에 있다며 교육부 방침 대로 바꾸도록 한 것은 교육정책의 신뢰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북 교육계는 “일반 학생들에게 자사고는 ‘돈 있어야 가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고려하지 않은 채 선발비율과 프로그램 참여율을 평가하는 게 공정한 평가 지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 "상산고 폐지는 절대 안 된다" 성토.. 서명운동 돌입

정부의 자사고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학교와 동문을 넘어 지역사회로 퍼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상산고가 있는 전북이다. 이 지역 인사들 중심으로 "상산고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 교육계 원로인 지은정 전북대 치과대 명예교수는 상산고 폐지를 막기 위해 서명운동에 나섰다. 지 교수는 "낙후한 전북에서 유일하게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명문 상산고인데, 그런 학교를 유치해도 모자랄 판에 없애는 건 정말 역사적으로 큰 오류를 범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자사고 평가) 소식을 접하고 서명운동이라도 벌여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준화도 좋지만, 거목(巨木)을 베어내고 잔 나무 숲을 만들면 안 된다"며 "우리도 외국 명문 사립고 같은 학교를 키워야지, 단점만 보고 없애면 되겠느냐"고 했다. 지 교수는 26일부터 지역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아 전북교육청과 교육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채수일 전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최근 '전주고 출신 언론인 모임'(전언회) 등 각계 전북 출신 인사들에게 "상산고를 살리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전북 지역이 뒤떨어졌지만 상산고라는 명성 있는 학교가 있어 지역 학생들에게 전국 수재들과 함께 공부하고 세계로 뻗어갈 기회를 줘왔는데, 전북도민 스스로 이런 학교를 문 닫게 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전북의 낙후를 벗어나게 할 훌륭한 교육 인프라가 사라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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