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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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2-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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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정치인들에게 명절 민심은 창구다. 팔팔 살아 숨쉬는 여론을 접하는 자리다. 그래서 명절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지역구로 달려간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교차된다. 서울과 지방, 지역과 지역이 섞이면서 서로 주고받는다. 다른 생각들은 충돌하고 수렴하며 큰 흐름을 만든다. 그게 여론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민심이란 바다에서 부끄러움을 확인한다. 정치란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공감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無恥之恥)’고 했다.

이번 설에도 여러 정치 현안을 놓고 다양한 주장과 견해가 부딪쳤다. 입장과 처지가 맞서면 두 가지로 귀결된다. 자기주장을 수정하거나, 오히려 확신을 굳히는 경우다. 정치적 편향을 줄이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확증편향에 머문다. 명절 민심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만 재확인할 뿐이다. 설 밥상에서 단연 화제는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구속이었다. 그런데 서로 자기 말만 한다. 설 명절 민심을 해석하는 여야 지도부 논평이 그렇다. 진영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당은 “재판 판결에 대한 비판이 굉장히 높았다. 제대로 된 재판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당은 “법원 판결마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법원을 권력 밑에 두려는 모습에 국민들이 화를 냈다”고 했다. 서로 귀를 막은 채 듣고 싶은 말만 전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 대변인은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 최악의 판결”이라고 했다. 또 홍영표 원내대표는 “판결이 보신과 보복 수단이 되고 있다. 반드시 국민의 힘에 의해 제압될 것”이라고 했다. 삼권분립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발언들이다.

김태우, 신재민, 손혜원에 이어 김경수, 안희정까지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리얼미터 1월 5주차 여론조사 결과다. 민주당 지지율은 38.2%로 3주째 내리막이다. 반면 한국당은 27.4%로 3주째 상승세다. 한국당 지지율은 국정 농단 이후 최고치다. 경제와 민생을 챙겨야 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2월 말로 예정된 북·미 회담도 빛이 바랠 가능성이 높다. 집권여당은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고, 한국당은 대선 불복 카드로 맞서는 안개정국이다. 국민들 눈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행태다.

헥터 맥도널드는 이런 행태를 '만들어진 진실'이란 책에서 집단논리로 설명한다. 집단이 지향하는 특정한 이슈가 도전 받으면 그 입장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의구심이 생겼을 때조차도 그런다고 한다. “우리 편은 옳다”는 진영논리에 맹목적으로 동조한 결과다. 그래서 지지층을 자극해 편을 가르려는 민주당 처신은 위험하다. 성창호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도 비이성적이다. 판결 불복 프레임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일반 상식에 비춰볼 때 법정구속은 다소 지나쳤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김 지사와 변호인들이 내야 할 목소리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민주당 대응이 마땅한지 돌아보게 한다. 김 지사 법정구속이 ‘적절한 결정’이었느냐는 질문에 46.3%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과도한 결정’은 36.4%로 10% 포인트 차이다. 여론과 민주당 인식에 그만큼 괴리가 있다. 그러니 차분하게 지켜보고 신중하게 대응하는 게 맞는다. 지금처럼 지지층을 자극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한국당이 내건 대선 불복 카드 역시 부끄럽다. 한국당은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정당이다. 그런데 2년 만에 대선 불복을 외치니 후안무치하다. 그런 주장에 공감할 국민도 없다.

교수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3년 차인 2015년을 ‘혼용무도(昏庸無道)’로 정리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는 뜻이다. 최순실 논란이 불거지기 수개월 전 청와대 오찬이 그랬다. 2016년 8월이다. 충복인 이정현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메뉴로 캐비어, 송로버섯, 샥스핀, 바닷가재가 나왔다. 그해 여름 국민 여론은 전기 누진요금제로 들끓었다. 그런 고통을 뒤로한 채 호화 요리를 즐긴 뻔뻔함은 오만함이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 몰락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데서 시작됐다.

‘김경수 구하기’를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당은 그동안 김 지사를 둘러싼 혐의에 대해 ‘정치 공작’, ‘황당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결백한지, 부당한 판결인지는 사법부 양심에 맡겨두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론 조작‧왜곡은 중대한 범죄다. 물론 국가기관을 동원한 여론조작과는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롯이 국민을 생각한다면 냉정하게 지켜보는 게 맞는다. 볼테르는 “진실이라고 해서 늘 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실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실은 아흔 아홉 개 얼굴을 가졌다는 말과 같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편집된 진실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 앞에 떳떳하다. 국민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에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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