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유달산, 그리고 '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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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1-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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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지난 주말, 목포에 다녀왔다. 손혜원 의원 투기 논란으로 한창인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겨울비가 내리는데도 제법 많은 이들이 구도심을 헤집고 다녔다. 단순한 호기심에다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목포 근대역사관 직원은 “개관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평소보다 3~5배가량 많다. 저녁 식사를 위해 들린 북항 일대 횟집 단지도 마찬가지다. 노이즈 마케팅에 힘입은 ‘손혜원 특수’인 셈이다. 상인들은 때 아닌 활황을 반겼다. 이런 특수도 반겨야하는지 마뜩치 않았지만 그 만큼 목포는 절박하다.

논란이 된 곳은 유달동, 만호동 일대다. 지난해 8월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됐다. 개별 건축물이 아닌 거리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기는 첫 사례다. 이 일대는 한때 불야성을 이뤘다. 일제 식민지배 당시다. 한동안 지역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가 물러간 뒤 쇠락을 거듭했다. 지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늙은 거리다. 한 집 건너 빈 집이고, 한 집 건너 매매 임대다. 상인들 얼굴도 어둡다.

쇠락하는 지방도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보는 내내 답답했다. 서울 중심 일극화와 지역 불균형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는 세계 모든 도시가 겪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서울과 수도권 쏠림이 반세기 넘게 이어지면서 지방은 황폐화됐다. 서울은 모든 자원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지방은 쇠락을 넘어 피폐한지 오래다. 어쩌다 지방 도시를 방문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도무지 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애잔한 눈길로 바라보기엔 떠나온 고향 현실은 너무 안타깝다.

“너희가 아무리 투기라고해도 우리에겐 투자다.” “너희들은 투기라도 해줘봤냐. 눈길이라도 한 번 줘봤냐고!” 손 의원 조카가 운영한다는 카페에 붙은 포스트잇이다. 목포 시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로 들렸다. 손 의원이 투기를 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다. 선의에서 그치길 기대해본다. 그러나 선의에서 시작했더라도 공직자로서 올바른 처신이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손 의원은 이해 충돌을 지나치게 간과했다는 비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선의를 믿지만 일반인들이 느끼는 상식과 정서는 어떤지 겸허히 살펴야 한다.

관건은 투기가 됐든 투자가 됐든 지역민들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재조명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 목포 근대역사공간에 집중된 관심을 생산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기려야 하지만 감추고 싶은 기억도 남겨야 한다. 그것이 역사다. 우리에게 일제 36년은 지우고 싶은 흔적이다. 경복궁을 가로막은 총독부 청사는 폭력적이다. 한 나라, 왕조를 위압적으로 억눌렀다. 그래서 총독부 건물 철거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총독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역사 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적당하다.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제 잔재가 많은 대표적인 도시가 군산과 목포다. 일제는 쌀과 전략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이들 도시를 계획적으로 개발했다. 군산과 목포에 유독 근대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다. 목포에 앞서 군산시는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 마케팅에 나선지 오래다. 히로쓰 가옥에서는 영화 ‘타짜’를 찍고, 월명동 일대에서는 ‘장군의 아들’을 촬영했다. 또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한 ‘8월의 크리스마스’도 이 일대가 배경이다. 문화재청은 목포 근대역사공간에 5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상권 활성화는 물론이고 주민들 얼굴에도 웃음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일본 가나자와, 대만 타이베이에도 맞춤한 사례가 있다. 가나자와 시는 오래된 염색공장을 철거하는 대신 시민 문화예술촌으로 바꾸었다. 시민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24시간 이곳을 이용한다. 가나자와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타이베이는 술을 제조하던 공장을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식민지배 당시 일본인들이 세운 공장이다.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창의적으로 재생했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로 불리는 이곳은 연중 관광객과 현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역상권 활성화는 덤이다.

건축물과 공간은 기억이 집합된 곳이다. 함께 추억하고 공유해야할 게 많다.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자한다. 이 사업은 쇠락한 지방도시를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개발, 재건축은 철거를 전제로 한다. 모든 기억과 흔적을 지운다. 이와 달리 도시 재생은 기억과 흔적을 보존하고 도시도 살린다.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할 경우 지방도시는 부활을 꿈꿀 수 있다. 그 꿈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 넘어야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투기꾼들을 배척해야 한다. 탐욕에서 자유로워야 추억도 살고 지역도 살아난다. 그럴 때 ‘목포의 눈물’이 ‘목포의 희망’으로 바뀐다. 손혜원 의원 투기 논란이 진위를 떠나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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