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지방은 변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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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19-01-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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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예타 사업 면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23개 사업에 24조1,000억 원 규모다. 보수언론은 선심성, 나눠 먹기 토건사업이라고 시비를 건다. 끝내는 국가재정을 거덜 낼 것이란 악담까지 퍼붓는다. 정말 그럴까. 지역 현안을 추진하는 게 그렇게 비판 받을 일일까. 그들이 애써 외면하는 현실과 사실을 살펴보면 비판론은 힘을 잃는다. 오히려 지역균형개발과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확보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피폐할 대로 피폐한 지방 현실이다. 지난해 발표한 ‘한국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우울하다.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사라진다. 30년 후에는 228개 시‧군‧구 가운데 89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를 감안하면 현실이 될 가능성은 높다. 고향이 사라지는 것은 크나큰 정서적 상실감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다.

세계일보 보도(1월 27일)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전국 17개 시‧도(261개 기초단체) 가운데 92개 지역은 이미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전체 35%다. 또 고위험 지역도 13개에 달한다. 빠르면 5년, 늦어도 30년 안에 지도에서 사라진다. 강원,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북이 유독 심각하다. 이들 지역에서 위험 단계에 진입했거나 고위험에 놓인 비율은 무려 50%에 육박했다. 구체적으로 강원 61%, 전남 72.7%, 전북 68.8%, 경북 76%이다.

인구 통계는 훨씬 심각하다. 통계청 2018년 결과다. 지난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47만 명이 전입했다. 1년 전보다 2만3000명(5.2%) 늘었다. 20대는 특히 두드러졌다. 20대 이동률은 22.4%로 1년 전보다 1.0%p 상승했다. 전북(-4.3%), 강원(-3.9%), 전남(-3.9%), 울산(-3.3%), 경북(-3.2%)에서 20대 전출이 컸다. 30대 이동률도 21.5%다. 이동률이 가장 낮은 연령대는 70대(7.1%)다. 결국 2030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는 게 지방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서울 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228만 명 넘게 늘었다. 서울뿐만 아니다. 주변 도시도 급격하게 체중을 불려가고 있다. 용인, 성남, 수원, 화성, 동탄, 광명, 시흥이 대표적이다. 화성시 인구는 2006년 31만 명에서 2018년 70만 명으로 10년 만에 무려 2.2배 급증했다. 수도권 인구 증가는 지방 희생을 담보한 것임은 물론이다. 수도권이 과밀로 몸살을 앓는 동안 지방은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지방소멸은 씁쓸하며 가슴 아픈 일이다.

예타 면제를 이명박 정부 당시 토건 사업에 빗댄다. 그러나 4대강 사업과 예타 면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4대강 사업은 토건 공화국이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우려를 경고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5년 임기 동안 강행했다. 그 결과는 수질악화 등 여러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SOC 사업은 지역균형발전과 사회간접자본 구축을 꾀한다. 경기부양은 부대 효과일 뿐이다.

사회간접자본은 공공재다. 공공재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차등하기엔 복합적이다. 경제성만 따진다면 지방은 영원히 낙후를 벗기 어렵다. 공공재로서 사회간접자본을 대해야 한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낙도 오지나 산간벽지에도 학교를 두고 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의무 교육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의무 교육을 외면할 수 없다. 섬이든 산골이든 서울 청담동이든 같은 이치다.

예비 타당성 검토는 국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사업성, 경제성이라는 획일적 잣대만 들이댄다면 문제가 있다. 오히려 국가 재원을 불합리하게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혈세 낭비라는 비판도 적절하지 않다. 기업과 일자리, 연구개발 투자까지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지역균형발전은 절실하다. 어쩌면 예타 면제는 새로운 활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성장 격차를 좁히는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이며, 지역 살리기다.

보수 언론은 일본 사례를 들어 비판론을 전개한다. SOC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정책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경기부양이라는 일본과 구분된다.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놀라는 게 철도와 도로다. 기차와 자동차를 이용해 웬만한 소도시까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급하면 항공기로, 느긋한 여행을 즐기려면 철도를, 그도 아닌 이들은 자동차를 몰고 지방 소도시를 찾는다. 덕분에 나 같은 외국인도 자동차와 기차를 이용해 일본 전역을 편리하게 여행한다. 일본 정부가 촘촘히 깔아 놓은 사회간접자본은 시간이 흘러 훌륭한 관광 인프라가 됐다. 관광 대국을 가능케 한 효자다. ‘다람쥐 도로’의 역설이다.

그러니 괜한 시비 걸지 마시라. 일본도 방문해보고, 그것도 싫다면 떠나온 고향에 다녀오시길 권한다. 고향이 내지르는 신음 소리가 들릴 것이다. 가는 길에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고 했던 소설과 그 쓸쓸함을 떠올리면 좋겠다. 나아가 예타 면제를 통해 구축한 공항, 도로가 훗날 훌륭한 관광 인프라로 각광받을 때가 올 것임을 기억하라. 지방은 변방이 아닌 우리 삶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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