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인물전] 김용균씨, 목숨을 담보로 밥벌이에 나선 슬픔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윤경진 기자
입력 2018-12-19 00:0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고(故) 김용균씨[사진=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지난 11일 새벽 3시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 청년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나이는 24세, 이름은 김용균이다. 사망한 김씨는 한국서부발전의 외주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1년 계약직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근무했다.

김씨의 죽음은 알면 알수록 괴로워진다. 입사 3개월 차인 김씨는 고작 3일 안전교육을 받고 고무벨트 무게만 20t이 넘는 컨베이어 벨트 안에 들어가 이물질을 꺼내는 작업에 투입됐다. 벨트에 말려들어 가면 철근도 휜다고 발전소 직원들이 증언할 정도로 위험한 작업 현장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홀로 일했다.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주거나 막아줄 동료 직원은 없었다. 한국서부발전은 김씨 사고 후 부랴부랴 고위험작업을 할 때 '2인 1조'로 작업하라는 안전지침을 내려보냈다.

김씨가 남긴 유품은 조촐했다. 사비로 산 손전등과 건전지, 과자 1봉지와 컵라면 3개, 업무 수첩 등 유품에는 검은 석탄 가루가 묻어 있었다. 컵라면을 보고 많은 이들은 구의역 사고를 떠올렸다. 2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진 19세 김모군의 유품에서도 컵라면이 나왔다. 불규칙한 업무 탓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구의역 사고 당시에도 2인 1조로 작업을 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2년 전 사회적 비극을 끊어야 한다며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964명이다. 처벌도 무겁지 않다. 2016년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사업주에게 내린 평균 벌금액은 432만원이었다. 실형 판결은 없었다. 반면, 영국은 2008년 '기업살인법'을 도입하고 산재사망사고 처벌을 강화했다. 지난해 영국의 슈퍼마켓체인 ‘아이슬란드 푸드’에서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하자 영국 정부는 250만 파운드(약 37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김씨의 직장 선배 이선규씨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또 사고가 날 거라는 걸 100% 자신한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안전 조치며 개선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이상 이런 사고를 떠안고 또 일해야 한다"며 "내 눈앞에서 그 어린애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죽은 모습을 봤는데 이 회사를 어떻게 다니냐"고 회사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느슨한 산업재해 예방 법안은 2년 전 구의역 사고 이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고, 김씨는 목숨을 담보로 잡고서야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김씨의 빈자리를 또 다른 청년이 채울 것이다. ‘2인 1조’ 근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현장에서 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