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미국이 놀란 한국馬님...나는 경마계의 손흥민, ‘닉스고’올시다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18-11-12 11:58

2018미국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경주에서 2위를 차지한 10번말 닉스고. [사진=마사회 제공]




# 말 되는 자기소개

2007년 4월 7일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 분향소가 차려졌던 거 기억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애도의 글을 남겼죠. 영정사진 속에 있는 이는 사람이 아니고 말이었습니다. 그 전해 개봉한 영화 ‘각설탕’에 나왔던 주인공 천둥이 형님이 돌아가셨죠. 신문들은 저마다 “하늘나라에서 맘껏 달려라”며 정성껏 부음기사를 써줬더군요. 이 정도면 말팔자도 상팔자입니다.

 



그럼, 넌 누구냐고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를 혹자는 경마계의 박세리, 혹은 류현진이라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얘기를 했냐고요?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이요. 지난 11월 2일 미국 켄터키주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브리더스컵 주버나일(1700m, 2세 수말 한정, 총상금 23억원) 대회에서 이 몸이 준우승을 하고 난 다음에 한 말입니다. “저, 저, 저런 대박은 말이죠. 야구선수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등판해 10승을 하거나, 골퍼 박세리가 미국에서 세상을 뒤흔든 것과 진배없을 만큼 경마계의 쾌거입니다.” 칭찬해주시는 건 좋은데, 나는 남자란 말입니다. 흥분해도 그렇지. 세리 누나는 아니잖아? 이 말보다 괜찮은 건 ‘경마계의 손흥민’이나 ‘경마계의 알파고’ 이런 거 아닐까요? 떠오르는 별 냄새도 나고, 뭔가 좀 지적(知的)이기도 하고··· ㅋ

 

2018미국 브리더스컵 주버나일 경주에서 2위를 차지한 10번말 닉스고. [사진=마사회 제공]



# 말도 안돼, 닉스고의 반전

말 같잖은 자뻑 좀 그만하고, 자초지종을 좀 찬찬히 읊어보라고요? 브리더스컵은 경마올림픽이라고도 할 정도로 말들에게는 선망의 대회죠. 34년이나(1984년 시작) 됐는데 매년 11월 첫째주에 미국 전 지역을 순회하며 이틀간 대회를 열죠. 세계 각국의 경주마들이 한곳에서 실력을 겨루는데, 14개 대회 총상금이 한국 돈으로 340억원쯤 될 걸요? 이 중에서 나는 ‘청년남자 대회’인 주버나일에 출전했죠. 경주 장면을 보시면 알겠지만, 4코너 이후에(1200m쯤부터) 일등으로 치고나가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지게 했죠. 결국 2등으로 들어왔지만 말입니다. 나의 스승인 벤 콜브룩(조교사)은 “경기가 끝났는데도 닉스고가 이렇게 잘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오오 말도 안돼, 엄청난 성적이야.”라며 눈물을 매달았더군요.

왜 저분이 저렇게 감정 기복을 보였느냐 하면요. 나는 영화 속의 천둥이 형님처럼, 별 기대도 안 한 말이었거든요. 경주 시작 전 인기 순위를 발표하는데, 14두 중에서 난 12위였죠. 거의 눈여겨 안 보는 말이란 뜻이죠. 지난 10월에 있었던 예선전 브리더즈 퓨처리티 대회에서 내가 1등을 하고 올라왔는데도, ‘듣보잡’으로 봤나 봐요. 그랬다가 뛰기 시작하자 객석에서 뒤집어진 거죠. 물론 이름도 재수(?)없는 ‘게임위너’가 더 잘 뛰긴 했죠. 그 친구는 중반 이후 선두권에 붙으며 그 좋은 뒷심으로 나를 추월하고 우승했습니다. 이 친구는 최근 4연승을 기록하며 올해 2세 챔피언을 거의 확정해놓고 있습니다. 경마 최강 미국의 ‘말부심’인 게임위너를 거의 이길 뻔할 정도로 잘 달렸다는 게 뉴스죠. 나와 그 녀석의 차이는 2와 4분의1 마신(馬身, 말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는 단위인데 1마신이 2.4m 정도)으로 5m 차이였죠.
 
 


# 말 많아진 마사회

나 때문에 마사회는 난리가 났죠. 원래 좀 잘 ‘오버’하는 데이긴 하지만 이번엔 내용이 있잖아요. 이곳에서 유전자 정보분석으로 경주마를 발굴하는 첨단프로그램인 케이닉스의 첫 작품(?)으로 내가 뽑힌 겁니다. 그러니 나를 알파고 동생처럼 ‘닉스고(케이닉스+알파고)’로 짓지 않았을까요? 마사회는 경매시장에서 7500만원에 나를 구매했죠. 이번 경주로만 4억원을 벌었으니 이 공기업이 어깨가 으쓱할 만도 하죠. 데뷔 5개월간 5개 경주에 출전해 번 상금이 8억원이고요.

그런데 마사회는 자랑질이 좀 커졌죠. 우선 향후 브리더스컵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몸값이 200억원이 넘어갈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가 숨은 경마맨들의 핀잔을 들었죠. 얼마전 브리더스컵 주브나일에서 우승한 2세 한센을 국내에 사들일 때 지급한 가격은 40억원에 못 미쳤거든요. 마사회는 또 닉스고가 씨수말로 새끼를 낳아 팔 경우까지 고려해서 300억원 이상 벌어들일 수 있다면서, 이게 몇 배 장사냐고 주판알 들고 흥분하기도 합니다. 고마워요, 나는 그런 산수(?) 잘 못하는데···.

#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정책

또 나를 마치 박세리, 류현진, 손흥민인 것처럼 자랑하는 것도 솔직히 문제죠. 난 미국에서 미국인 조교가 가르치고 있고 거기서 뛰고 있으며 우리 주인만 마사회님이거든요. 솔직히 한국 말은 아니죠. 물론 뭐, 천둥이 형님처럼, 아니면 평창올림픽 때 봤던 고구려 벽화 속의 전투마처럼, 기마민족 한국의 ‘긍지’로 떠오른 건 기뻐요. 이러다가 진짜 한국이 경마강국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다만 한국의 정책이 좀 ‘말’도 안 되는 게 있긴 해요. 2011년 말산업육성법까지 만들어서 말달리기 운동을 펼친 나라인데, 말산업의 핵심인 경마산업만은 끝없이 족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이런 소식 하나 들려오면, ‘말’잔치 한번 벌이다 또 끝낼 거잖아요.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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