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가짜뉴스 세력을 ‘팩폭으로 뼈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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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8-10-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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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유튜브에서 ‘온라인에서 진실과 허구 구별하기’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TED살롱에서 마컴 놀란(Markham Nolan)이라는 저널리스트는 어머어마한 정보가 흘러다니는 온라인에서 자신이 찾아낸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는 구별법을 보여준다. 플로리다의 어느 집 영상과 자유의 여신상, 맨해튼 홍수 사진의 진위를 무료 인터넷 도구로 하나하나 가려내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다. 진실을 찾아가는 이 과정은 때로는 가공할 수확을 거두기도 한다. 피살된 시신을 강에 던지는 장면 등이 나오는 시리아 전쟁범죄 영상이 이런 경우다. 믿을 만한 정보원과 몇 가지 단서로 이 비디오가 진짜인지, 누구의 소행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5년 전에 본 놀란의 영상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요즘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가짜뉴스 논란 탓일 것이다. 엊그제 정부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법무부는 ‘알 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방안’을 발표하며 발생 초기부터 신속하게,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적극 수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거짓임이 명백하고 사안이 중대하다면’이라는 단서가 붙긴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가짜뉴스를 신속히 제거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에 ‘삭제요청권’ 명시를 추진한다는 것과 언론중재법상 언론기관이 아님에도 언론 보도를 가장해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방안을 새로 마련한다는 점이다. 언론사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행위를 단속·처벌할 수 있게 된다면 가짜뉴스의 제작·유통기지라는 유튜브 등의 1인 미디어가 바로 사정권에 들어온다. 사실 가짜뉴스는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기본법 같은 현행 법률로 규율할 수 있지만, 정부는 명예훼손이나 신용훼손·업무방해 같은 처벌조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간 날 선 공방을 벌여온 정치권은 차치하고라도 정부 처방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예방과 자율 규제를 포함한 종합 처방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엄벌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자칫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정부가 가짜뉴스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사실로 정의한 ‘허위조작정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의견 표명과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것도 그렇다.

가짜뉴스 폐해가 심각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가령 유튜브나 카카오톡, 페이스북 이용자라면 거의 예외 없이 가짜뉴스로 볼 만한 콘텐츠를 접해봤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콘텐츠가 순식간에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여기다 사람이 가진 확증편향과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의 알고리즘 등이 가세하면서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해악을 끼치는 것도 틀림없다.

가짜뉴스의 창궐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세계적인 쟁점이다. 그러나 법률로 처벌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해외 주요국 사례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이 독일인데, 지난해 제정한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법 집행 개선법(NetzDG)'은 혐오표현 금지법이지 가짜뉴스 근절법은 아니다. 가짜뉴스를 법률로 규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국회에 제출된 '가짜뉴스' 관련 법안은 20건이 넘지만 이 법안들이 순조롭게 통과될지 의문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가짜뉴스는 정말 종합처방이 필요한 ‘공적’이 아닌가 싶다. 정부가 밝힌 대로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명백한 가짜뉴스는 법적 단죄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사회가 해야 하는 첫째 과제는 가짜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여기서 법적 규제를 가할 부분을 특정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광범위한 대상을 포괄하면 우려와 반발을 낳을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와 관련된 여러 기관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된 플랫폼들이 자율규제를 강화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선 뉴스의 신뢰성을 높이고 언론사들이 힘을 합쳐 공동 팩트체크 서비스를 운영하고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보도한다면 가짜뉴스 퇴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꼽고 싶다. 국민들의 뉴스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가짜뉴스에 대한 저항력과 판별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정말 열심히 제대로 해야 한다. 미디어와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해독능력을 기르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은 가짜뉴스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민주시민으로서의 핵심 역량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미디어리터러시 해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가짜뉴스 퇴치법은 없다.

최근 온라인 유행어로‘팩폭(팩트폭력)' 과 '뼈때리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이 아닌 허위로 드러났을 때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인 듯하다.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가짜뉴스 선별능력을 갖고 있는 민주시민들이 한국사회 도처에서 가짜뉴스 제조·유통 세력들을 ‘팩폭으로 뼈때리는’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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