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랑' 김지운 감독 "멜로 부각 아쉬워…표면 말고 관찰·해독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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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7-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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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랑'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예측할 수 없는 장르의 마술사.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을 시작으로 호러영화 ‘장화, 홍련’, 누아르영화 ‘달콤한 인생’과 웨스턴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와 모던 클래식 스파이물 ‘밀정’에 이르기까지. 김지운 감독은 언제나 장르의 문법을 비트는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를 탄생시켜왔다. 언제나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 않는 김 감독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고민도, 부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재페니메이션의 전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명작 ‘인랑’을 실사화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2차 대전 패전 후 비정상적으로 격화된 사회운동과 그에 대응하는 경찰의 진압이 만연한 196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특기대와 권력 기관 간의 암투와 개인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원작 애니메이션은 묵직한 메시지와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운 분위기, 시적인 표현력으로 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작품이다.

“마니아들의 추앙을 받는 원작은 실사화했을 때,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김 감독은 ‘인랑’의 영화화를 두고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 팬들을 만족 시키면서도 상업영화로서의 몫을 다해야 했기에, 김 감독은 배경이며 작은 디테일까지 살피고 고쳐나갔다. 그 결과, 영화는 2029년 통일을 앞둔 혼란한 대한민국으로 치환돼 원작의 명맥을 잇고 한국적인 이야기로 전환하고자 했다. 같이 또 달리, 방향을 바꾸어나가는 영화 ‘인랑’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선택과 집중을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김지운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인랑'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영화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것 같다
- 어떤 영화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인랑’의 단점으로 언급된 것 중, 멜로라인 부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복기를 해봤다. 왜, 멜로가 부각이 되었을까? 저는 원작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기 때문에 오마주하였으며 개인적인 해석을 첨가했다. 원작 팬들은 원작의 아우라를 기대했겠지만, 너무도 염세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에 여름 시장 블록버스터로 만들 때는 무리가 있었다. 대중적 화법과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국을 배경으로 특기대가 만들어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므로 재해석이 필요했다.

김지운 감독이 생각하는 ‘멜로라인’ 부각의 이유는 무엇인가?
- 저는 영화가 임중경(강동원 분)이 친구와 여자, 아버지 같은 존재를 거치며 무언가 깨우치고 자각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인 한상우(김무열 분)는 공안부를 대변하고 여자 이윤희(한효주 분)는 섹트를 대변하고, 아버지 같은 존재 장기태(정우성 분)는 특기대를 대변한다. 이 관계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특히 윤희와의 관계가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라고 판단, 개인의 감정으로 부딪치는데 그것을 멜로라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여자, 스승을 거치며 변화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 오독과 오해, 잘못된 전달을 겪은 게 아닐까 싶다. 또 저를 비롯해 많은 한국영화가 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인랑’은 인물보다는 프로세스가 보이는 영화고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개인의 감정을 감추고 생각을 감추되 전체 구조와 동선이 보이는 방식이다. 관계의 숨겨진 감정이 드러나는 과정에서도 오독될 수 있다고 본다.

멜로 라인이 오독이라면 원작과 다른 온도차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뜨거운 것을 경계하는 원작과 김지운 감독의 전작과는 달리 ‘인랑’은 미묘한 온도를 가지고 있다
- 그럴 수 있다. 원작 만화를 옮기면서 당황했던 것은 2차원의 캐릭터를 3차원으로 바꿀 때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똑같은 상황, 대사를 하는데도 피가 돌고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은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더라. 이걸 기계적으로 누를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런 오차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인랑' 스틸컷[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지극히 일본적인 원작 애니메이션의 배경을 한국화하는 과정도 궁금하다
- 한국 배경으로 ‘인랑’을 실사화하기로 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원작처럼 스팀 펑크 SF(Steampunk, 대체 역사물의 하위 장르)를 해볼까….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까지 고민하다가 현실감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을 다뤄보기로 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징후나 불안 요소를 가지고 미래상을 과장해 극단적으로 가자고 결정한 것이다. 실업률, 출산율 다양한 문제점들을 생각하던 중, 통일 이슈를 떠올렸고 이것을 원작이 가진 권력기관 암투나 투쟁 등으로 이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원작과 가깝되 한국적인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설정했다.

영화화를 하면서 한국적인 요소들로 치환되었는데
- 한 프로세스가 과정이 보이며 드러내는 방법을 설정한 거다. 윤희는 중경을 속이고 있고 혼자 있을 때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자괴적인 오열을 하는 캐릭터인데 표현을 자제한다. 원작도 영화도 건조하게 자기표현을 안 하다 보니 인물의 힘든 상황과 조건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치적으로 이들의 전사나 디테일을 부여했을 때,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보완해주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인물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에서도 인물의 상황이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원작자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영화에 대해 어떤 평을 했나?
- 그의 반응을 보는 게 가장 떨렸다. ‘기대한 것의 최대치를 보았다’고 하시더라. ‘일본에서는 이렇게 만들 수 없다’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고 하셨다.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 등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신 것 같다.

영화 '인랑' 스틸컷 중, 임중경 역의 강동원[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극의 중심인 임중경 역의 강동원이 원작을 그대로 살려줬다
- 오프닝 장면은 정말 그림 같지 않나. 하하하. 스턴트맨이 연기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강동원이 직접 강화복을 입고 액션에 임했다. 동작은 스턴트맨이 훨씬 더 좋아도, 어떤 결이라고 해야 하나? 동작에 감정이 느껴지는 건 강동원이었다. 그가 안에 있을 때 드라마가 느껴진다고 할까? ‘배우는 배우구나’ 싶더라. 수 없는 작품, 수 없는 배우와 함께했는데 이제 와 새롭게 느껴지는 게 신기하고 배우에 대한 리스펙트가 생길 정도였다.

고사 때도, ‘모든 인물이 섹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이지 않았나
- 저의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인랑’은 모든 캐릭터가 멋지고, 섹시하길 바랐다. 남자든 여자든, 악당이든 선인이든 모두!

영화 중간과 엔딩에 원작의 메인 테마곡인 미조구치 하지메의 ‘그레이스 오메가 프래그런스 레인 롱 데스티니’(Grace Omega Fragrance Rain Long Destiny)를 삽입한 것도 어찌 보면 도전일 수 있었다
- 원작 팬들에 대한 서비스였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든 그 곡을 쓰려고 했었는데, 윤희가 중경에게 ‘빨간 모자’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잘 어울릴 거로 생각해 넣었다. 그 장면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직접 연출한 장면이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인데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분위기에 아스트랄한 음악이 나왔을 때 묘한 기운과 분위기를 충만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원작 팬들에 대한 서비스가 곳곳에서 보였다
- 대표적으로 ‘인랑’을 상징하는 강화복이나 빨간 모자 동화, 원작에 등장하는 MG40 기관총 같은 것들은 빠질 수 없었고 이 외에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도 알면 재밌지만, 몰라도 크게 상관없어지도록 만들려고 했다.

영화 '인랑'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원작이 잿빛으로 그려졌다면, 영화는 많은 색을 사용했다. SF적인 무드를 보여주기 위함인가?
- 현대영화보다 더 색깔을 많이 썼다. 장르적인 구성도 그랬지만, 어떤 공간이나 분위기가 섹시하기를 바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촬영 감독과 조명 감독이 만든 설정의 결정이기도 했다.

원작 역시 같은 설정이지만 빨간 망토 소녀와 이윤희는 ‘빨간색’으로 어떤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 이윤희는 무의식적으로 임중경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고,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들고 나타난다. ‘빨간모자’ 이야기도 임중경과의 결말을 암시하는 거다. 이윤희는 자기 파괴적인 인물이다. 자신을 파괴하며 임중경을 건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빨간 망토 소녀와 이윤희는 빨간색으로 인해 동일성을 가지게 되는데 영화 말미, 이윤희가 빨간색 코트를 벗고 그의 동생이 빨간색 점퍼를 입고 등장하는데
- 영화 말미 윤희가 빨간색 코트를 벗고, 노란색 코트를 입고 나타나는 것은 단체와 임무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돌아갔다는 상징이다. 그리고 동생이 빨간색 점퍼를 입는 것은 일종의 페이크(Fake)다. 편집된 부분이 있었는데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다가 동생이 빨간 점퍼를 입고 마치 폭탄을 나르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아직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을 유발하기 위함이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점도 ‘인랑’의 재미 중 하나일 텐데
- 많은 부분 친절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상징성이나 빨간 모자 이야기를 강조하거나, 임중경의 그림자가 늑대로 바뀌는 것 등등.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코드를 찾는데 다소 인색하다는 느낌이다. 시네마틱한 표현 방법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나 해독 없이 쉽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두고 작품을 평가하는 게 아쉽다. 진실을 전할 때 뱉는 말보다 감추고 흐리는 것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데 표면화된 것들을 가지고 전체 평가를 하고 규정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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