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who?]성로비한 러 스파이? 부티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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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입력 2018-07-2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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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미총기협회 힘 업고, 미 정계 침투 노렸다"...美대학원 러 유학생의 진실은

러시아판 마타하리가 나타났다
현대판 색계(色戒)가 등장했다
안나 채프먼이 재림했다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 국적의 여성 마리아 부티나에 대한 언론들의 흥분이 담긴 레토릭들이다. 18일(현지시각) 미국 검찰은 부티나가 지난 4년 동안 미국 정계에 침투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 부티나의 죄목은···

부티나의 혐의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규정 위반이다. 이 법은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외국정부를 위해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티나는 미등록 상태에서 러시아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것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그녀가 러시아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 15일 부티나를 체포했으며 16일 워싱턴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18일 연방법원의 데버러 로빈슨 판사는 부티나를 보석 없이 구금하라고 명령했다. 즉 법원은 부티나를 풀어줄 경우 앞으로 재판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방검찰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 연방검찰은 부티나의 혐의를 강조하기 위해 몇 가지 사실들을 공개한다. 이 발표 내용이, 상당히 자극적이어서 언론들을 먼저 흥분시켰다. 이 여성에 관한 쏟아지는 '스토리'는, 검찰발표에 기초한 것들이다.
 

[마리아 부티나=연합뉴스]



# 미 검찰이 밝힌 주요 내용 6가지

(1)부티나는 워싱턴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와의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고, 크렘린의 지시로 미국의 정치조직에 침투하려 했다.
(2)한 특수이익집단(전미총기협회로 추정)에서 일자리를 얻는 대가로 성관계를 제공했다
(3)56세의 정치권 관계자(전미총기협회 회원이자 공화당 자문가인 폴 에릭슨으로 추정)와 동거했다
(4)연방수사국 조사 결과, 부티나는 지난 3월 첩보요원으로 의심되는 러시아의 외교관과 저녁식사를 했으며 관련 사진을 입수했다.
(5)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로 보이는 인물들의 연락처를 소지하고 있었다.
(6)부티나의 집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FSB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는 내용이 있었고, 세르게이 키슬랴크 전 미국주재 러 대사와 함께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다.

과연 부티나는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들여다보기로 하자.

who? - 마리아 부티나(Maria Butina)

# 총기마니아, 러시아 실력자 토르신을 만나다

마리아 부티나(1989년생, 29세)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출신으로 부친에게서 사냥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총을 다루는데 익숙했고, 사격을 즐겼다고 한다. 속옷 차림에 총을 든 그녀의 화보사진이 패션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2011년 '무기를 가질 권리(Right to Bear Arms)'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일종의 총기옹호단체였다. 이 단체를 러시아 신흥재벌인 알렉산드라 토르신이 주목했다. RBA를 운영하면서 부티나는 토르신과 자주 만났는데, 그녀는 그를 멘토로 생각했다. 토르신은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이다. 푸틴의 오른팔로 손꼽히는 인물로, 미국 재무부는 2018년 4월 그를 '제재대상'리스트에 올린 바 있다.

부티나와 토르신은 미국에서 열리는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NRA)의 행사에 동행했으며, 부티나는 이 자리에서 미 공화당 의원들을 소개받기도 했다. 또 부티나는 2013년 러시아에서 개최한 RBA행사에 미국 총기협회 회원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 참석해서 부티나와 저녁식사를 했던 미국 회원은 그녀를 가리키면서 "젊고 예쁜 자신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폴 에릭슨과의 만남과 미국 비자

그해 미국에서 열린 총기협회 행사에서는 폴 에릭슨을 만났다. 에릭슨은 전미총기협회 회원이자 공화당의 컨설턴트였다. 부티나는 에릭슨에게 미국에서 거주하는 방법을 물었고, 그는 "학생 비자를 받게 되면 체류가 쉬울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듬해인 2015년 부티나와 토르신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장남(트럼프 주니어)과 한 자리에 앉아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해 7월 트럼프 대선후보(출마 선언 직후였다)의 토론회장에 부티나가 참석했다. 뿐만 아니라 부티나는 그 자리에서 손을 번쩍 들고 “러시아 제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 미국 대선의 해에, 미국으로 들어온 부티나

부티나가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입국한 것은 2016년 8월이었다. 9월부터 워싱턴 아메리칸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었다. 에릭슨의 '꿀팁'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그녀가 도미(渡美)한 시기는 우연이었을까. 그해 11월 8일 미국 대선이 있었고, 트럼프 당선이라는 이변에 가까운 사건이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러시아관련 의혹을 떠올리면, 우연이 아닌 맥락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에릭슨이 누구던가. 대선 후보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대통령의 만남을 두 차례(2015년과 2016년) 주선한 인물이다. 총기협회를 통해서였는데, 성사되지는 않았다. 트럼프의 ‘크렘린 커넥션’의 한 고리가 에릭슨이라는 얘기는 이 때문에 나왔다. 부티나의 간첩의혹 사건에 미국 정가가 유난히 예민할 수 밖에 없는 건, 여전히 저 문제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 나이 29살 연상의 남자와 동거?

입국한 뒤 부티나는 56세 남성과 동거를 시작했다고 미 연방검찰은 밝히고 있다. 56세라는 나이를 강조한 것은, 당시 27세였던 부티나와의 연령차를 강조하면서 '성로비'의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였을 수 있겠지만, 언론은 이미 56세였던 에릭슨으로 추정했다.

미국이 여전히 낯설 수 밖에 없는 그녀가 입국하자마자 동거를 시작할 정도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총기협회 모임으로 익숙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것 또한 에릭슨이라는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징후가 있다. 부티나는 미국으로 건너온 뒤 정기적으로 토르신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속에 “56세 남자랑 사는 건 짜증이 나는 일이예요”라고 쓴 구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에릭슨과의 연결과 동거가 순수한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 목적의 정체가, 부티나 간첩의혹 사건의 실체를 가리는 핵심일 것이다. 그 목적이 단순히 총기모임 활동을 확장하는 일이었다면, 스파이사건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이상의 국가적인 미션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 제2의 남자에게 성로비?

미 검찰은 또다른 묘한 정보를 흘렸는데, 부티나가 동거남이 아닌 다른 이와도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 성관계는 특정 이익단체에 들어가는 대가였다. 검찰은 이 사실을 밝힌 까닭은, 부티나의 성적(性的) 선택이 상식적인 방식이 아니라 성로비 수단이었다는 점을 함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특정이익단체는 전미총기협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들은 추정한다.

총기협회 회원인 에릭슨과 이미 동거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 다른 인사에게 성로비를 했다는 점은 다소 아리송하다. 이 제2의 남성이 미-러의 정치권 인사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마도 에릭슨보다 더 핵심적인 정치적 지위를 지닌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대목은 수사 과정에서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에릭슨과 제2의 남성이 미 정가를 뒤흔들 수도 있는 미러 관계의 비밀을 쥐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러시아 스파이로 미국서 추방된 안나 채프먼.]

 


# 토르신과의 메시지에 등장한 러시아 여자스파이

미국의 부티나와 러시아의 토르신 사이에 오간 메시지들은 인상적이다.

2017년 1월 트럼프 취임식 때 행사장에 간 부티나는, ‘증명’사진을 찍어 토르신에게 보냈다. 토르신은 “저돌적인 여자”라고 칭찬을 겸한 멘트를 보내왔고, 부티나는 “다 선생님께 배운 거죠”라는 응답을 날렸다.

3월 미국 잡지에 부티나의 총기옹호 활동이 소개됐을 때, 토르신은 “안나 채프먼이 받았을 인기를 그대가 가로챘군.”이라면서 “사실, 그녀를 이미 능가했지”라고 말했다. 안나 채프먼은 미국서 암약하다가 2010년에 추방된 러시아 스파이다. 이런 대화들을 놓고 ‘간첩’으로 바로 추정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메시지들은, 농담 차원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한 총기마니아에 대해 고국의 지인이 보낸 사소한 코멘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수사국이 부티나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외교관과 저녁식사를 하는 사진을 입수한 뒤였다. 이 외교관은 정보요원으로 의심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검찰은 부티나를 미행해 자택을 수색한다. 거기서 발견한 것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취업제안서와 의문의 러시아인 연락처 리스트였다. 그녀는 이미 이삿짐을 싸두고 있었다. 이 내용은 검찰의 조사발표 내용에도 들어있다.
 

[마리아 부티나]



# 미-러 정상회담 성과 폄하하려 내놓은 '수사작품'?

러시아 당국의 반응은 어떨까. 물론 간첩 활동은 강력히 부인한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부티나 보도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접했다. 러시아 국민에게 씌운 억지혐의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는 미-러 정상회담 성과를 폄하하려고 미국측이 부티나를 때맞춰 기소했다면서 지정학적 게임에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부티나의 변호인 측은 "모든 혐의가 과장되었다"면서 “부티나는 단지 미국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한 젊은 학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티나의 혐의가 유죄로 판결나면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러 간의 외교적 갈등의 또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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