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4강 리더십 특집] ①거래와 승리를 즐긴다"…세기의 협상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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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기자
입력 2018-06-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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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재벌로 쌓은 협상의 기술…기존 외교문법에서 탈피해 한반도 새 상황 전개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퇴장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에 살며시 손을 얹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 4강의 외교전이 치열하다. 지난 4월 남한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판문점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6월에는 북한과 미국이 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외교 지형은 급변하고 있다. 한·미·일 vs 북·중·러라는 과거의 대립 구도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동북아 지역 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국의 지도자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젠틀맨'으로 불리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지구촌의 대표적 스트롱맨들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 외교 문법도 무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고 더욱 세력을 키우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근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지만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버리지 않는 아베 신조 총리, 한반도 해빙 무드 속에서 실속을 챙기고자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두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들의 치열한 외교 수싸움은 향후 미래의 길목 길목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1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북·미정상회담이 현실화한 지금 4강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다시 한번 자세히 짚어봐야 할 요소다. [편집자주]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휼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87년에 발간된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이렇게 '거래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스스로를 '뛰어난 협상가'로 자처한다. 대선 기간 동안에도 풍부한 협상 경험이 있는 자신이 유권자들에게 끊임없는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 12일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과정에서도 거래와 승리를 원하는 트럼프의 '협상가 기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도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과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에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광기는 한반도의 상황을 순수하게 바라보도록 했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시작하도록 하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편견이나 한계에 개의치 않고 달려가는 트럼프의 사업가적 기질은 대선 유세부터 유감없이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협상술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의 이익을 핵심에 놓는 트럼프의 사업가적 비전과 전략은 한반도 정세를 극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앞으로 진행될 여러 협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신을 비싸게 팔아라"···워싱턴의 '정치 이단아' 백악관 입성 

2016년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선출됐을 때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2015년 6월 16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출마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그의 정치적 자산은 보잘것 없었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으며, 아버지와 형이 미국 대통령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의 출마는 농담거리로 치부됐다. 당시 공화당 프라이머리 유권자의 64%는 그가 일종의 '여흥'을 위해 대선에 출마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으며, 그를 '진지한 후보'라고 여긴다는 응답률은 29%에 불과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이나, 무슬림을 입국 금지시키겠다는 발언은 국내외적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고, 여성 비하 발언으로 몇 차례나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꺽이지 않았다. 

미국 내 상당수 유권자들은 "우리는 계속 이길 것이다"라고 확신을 심어주는 부동산 재벌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트럼프는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큰 거래를 하는 유능한 협상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이민자와 중국에 일자리를 빼앗긴 미국 국민들에게 지칠 때까지 승리를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전략은 미국의 쇠락한 공장 지대 '러스트벨트'의 유권자들에게서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트럼프는 저서 '강한 미국을 꿈꾸다'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이다.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끝까지 싸우는 그런 전투적이고, 악랄하고, 포악하고, 극악무도한,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투사'들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강한 협상자'로 만들어 팔면서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치인과 유권자의 거래인 선거에서 그는 또 이긴 셈이다.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가 비이성적이고, 즉흥적인 인물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 트럼프는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앞으로 내달리는 승부사에 더 가깝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다른 이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달려온 트럼프의 전략은 결국 백악관 입성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협상가의 본능'에 따른다···상대 압박하면서도 수용 가능한 조건 제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 자신의 비싼 가치를 유감없이 휘둘렀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도 기존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관세' 공격을 퍼부었다.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다시 보복을 맞설 것이라며 무역전쟁  긴장을 높였다. 미국이 중국 최대의 시장이며 대미 무역흑자가 중국의 경제성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오는 대담한 전략이다. 

이란과의 핵협상도 미국에 불리한 협상이라면서 빠져나왔고, 수많은 기업과 단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리 기후협정에서도 탈퇴했다. 19일에는 지나친 반이스라엘 성향을 이유로 유엔인권이사회에도 등을 돌렸다. 중국, 베네수엘라 등 다른 국가의 인권 탄압은 눈감으면서 유독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서만 유엔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논리였다.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바로 발을 빼는 전략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를 비롯해 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강한 미국을 꿈꾼다'에 나오는 것처럼 "인정사정없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미국의 이익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북·미 정상회담은 어려운 과제였다. 벼랑끝 전술로 유명한 북한은 쉽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담을 성사시켰다.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협상가의 자질로 '본능'을 들었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능력은 천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유전인 셈이다"라면서 똑똑한 것과는 별개로 브로커로서의 본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어찌 보면 북핵 문제에서 트럼프는 협상가로서의 '본능'에 유독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일삼으며 도발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어조로 맞섰다. 북한이 '분노와 화염'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미국 언론에 오르내리도록 했다. 유엔을 동원해 북한 제재 수위를 크게 높인 것 역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대화의 가능성이 부상하면서 돌변했다. 미국 외교가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다고 비판한 바 있는 그는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들이 워싱턴으로 들고 간 북한과의 정상회담 제안을 45분 만에 수락했다.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급물살을 탄 북·미정상회담 진행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았다. 회담의 진행 과정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때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 (We'll see what happens)"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대표적 강경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발언이 판을 흔들었을 때에도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오해를 불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은 협상 자리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자, 5월 24일 아예 판을 엎었다. 회담을 취소한 것이다. 극적인 제스처에 세계가 놀랐지만 트럼프는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의 대화재개를 요구하는 태도에 그는 다시 적극적으로 임했으며, 하루 만인 25일 회담 개최는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  

북·미 정상회담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1분만 보면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협상가로서의 본능을 강조했다. 오랫동안 사업과 협상의 경험을 쌓은 만큼 상대방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에 함께 일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자세히 써놓았으며, 자신의 판단이 대부분 옳았음에 대한 자부심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그는 상대방이 다소 부도덕하더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용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건물 관리인이 뒤로 돈을 빼돌린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트럼프는 그를 내치지 않았다. 빼돌린 돈보다 능력있는 관리자를 기용해서 얻을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 뒤 그에 대해 “김 위원장은 좋은 성격을 갖고 있고 매우 똑똑하며 영리한 협상가”라고 언급한 뒤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며 회담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번 회담을 '과정'이라고 지칭하면서,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이 지속될 것임을 밝혔다. 또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지라는 당근도 내밀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내걸고 "좋은 협상"을 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조건을 유리하게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협상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얻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 중지라는 성의를 보여주면서 북한이 보답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미국 내부에서 비난을 감수하면서 만든 상황에서 북한이 응답하지 않거나 합의를 불성실하게 진행시키기란 매우 힘들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담의 승자라면서 트럼프가 실패했다는 비판이 커졌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국외의 반응은 오히려 호의적인 편이다. 영국 매체인 익스프레스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좋은 전략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로 하여금 번영과 직업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 직접적으로 미국의 군사 개입이 있었던 지역은 여전히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적 방법으로 회담장에 나오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또 "비즈니스맨으로 미국과 북한 모두가 얻고자 하는 것을 챙기도록 해 협상에 성공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의 기술은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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