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S 아주경제 - 아주 잘 정리된 디지털리더 경제신문

검색
5개국어 서비스
실시간속보

[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習황제' 최고 공신은 역대 최약체 총리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입력 : 2018-03-12 06:00수정 : 2018-03-12 06:00
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리커창 총리(3)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시 황제’로 만든 최고 공신은 역대 최약체 총리 리커창(李克强). 이전의 중국의 주석과 총리, 장쩌민-주룽지, 후진타오-원자바오 등은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호 협의 아래 중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리커창,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이유극강(以柔克强)'이라는 이름이 통하지 않을만큼, 신사복을 입은 정치군인 시진핑의 힘이 너무 강했을까?

▲낙제점 면한 지방정부 행정 성적표

“텐안먼 광장, 한 소녀가 머리를 온통 그을린 채 '엄마, 엄마'를 울부짖고 그옆의 한 남자는 가솔린을 몸에 끼얹고 불을 붙인 뒤 가부좌를 틀고 있다.”

2001년 1월 30일, 중국 국영중앙(CC)TV 오후 8시 메인뉴스는 끔찍한 화면 세례를 퍼부었다. 그 어떤 엽기 드라마보다 참혹한 실제 상황에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중국의 중원 허난(河南)성에서 올라온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5명이 텐안문 광장에서 집단으로 분신자살을 하는 장면이다.

이때 허난성 성장은 리커창 현 총리. 그가 1998~2004년 7년간 수장으로 있던 허난성은 조직폭력, 에이즈와 파룬궁 창궐 지역으로 차별대우받는 이른바 ‘중국의 고담’이었다.

세계 4대 문명발상지 황허(黃河)의 남쪽에 위치한다고 이름 붙여진 허난성은 일망무제의 대평원이 까마득히 펼쳐져 있다. 그러나 창강(長江) 남쪽의 장쑤성과 저장성에 비하면 땅이 메말라 풍작과 흉작의 격차가 심했다. 예로부터 허난성 주민들은 유약하고 온화한 강남인과 반대로 거친,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이르는 곳마다 무법지대가 있고, 도박꾼과 무뢰배는 물론 마적에서 무덤 도굴꾼에 이르는 어둠의 무리가 들끓고 있었다.

1998년 6월 리커창은 44세 나이로 허난성 성장 대리 겸 부서기로 임명돼 최연소 성장 및 첫 박사학위 보유 성장을 기록했다.(1*)

리커창은 허난성 성장과 당서기로 재직하며 ‘중원굴기(中原崛起) 슬로건을 내세웠다. 동부 연해안의 자본·인재를 끌어들여 성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990년대 초 31개 성 중 28위에서 중위권인 8위로 상승시켰다. 그리고 한때 허난 주민의 ‘4분의 1이 에이즈 감염자, 40분의 1이 파룬궁 신도’라는 악명높던 허난성 형편을 어느 정도 호전시켰다. 하지만 그의 실적은 '평균작'이었다. 리더십과 탄탄한 경제이론 지식을 갖춘 리커창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었지만 당중앙이 당초 기대했던 바에 비한다면 그의 성적표는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이었다.

리커창은 그의 강력한 후견인 후진타오가 집권한 이듬해인 2004년 12월 노후 공업지대인 동북지방 진흥의 임무를 받고 동북3성의 맏형격인 랴오닝(遼寧)성 서기로 옮겼다.

유사 이래 20세기 전반까지 중국의 주류민족인 한족(漢族)의 가슴속 영토에는 만주(滿洲)가 없었다. 만주가 중국인의 영토의식의 판도밖에 있었다는 것을 방증해 줄 수 있는 자료들은 반만년 중국사의 벌판에 수북하게 널려 있다.

세세대대로 한족에게 만주지역은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鷄肋)'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의 입장에서 만주는 조상대대로 국경선인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의 본토를 위협하거나 지배해 온 이른바 오랑캐들, 부여·고구려·발해·말갈·거란·여진·몽골·만주족의 본거지였으니.

특히 랴오닝성은 1895년 청·일 전쟁의 패전으로 랴오둥(遼東)반도를 일본에 할양했던 치욕의 역사와 만주국(1931~1945년)시절 일제식민지배 14년간의 회유책과 친일의식화교육, 랴오닝에 집중투자한 일본 자본의 영향 등으로 중국 전역에서 반일감정이 비교적 약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랴오닝성 당서기로 부임한 리커창은 국유기업 개혁과 대량해고 난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모든 사람은 집이 있어야 한다(人人有房住)’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택 120만호 공급을 통해 주택난을 일시에 해결, 랴오닝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후계자 전쟁···시진핑에게 '추월'당한 이유

하지만 랴오닝성에서도 허난성과 마찬가지로 리커창은 주목할만한 업적을 쌓지는 못했다. 반면 시진핑은 저장성 성장과 서기 재임 7년간(2001~2007) 성 1인당 GDP를 광둥성을 제치고 전국 최고로 도약시키는 눈부신 업적을 거두었다.

리커창이 랴오닝 당서기 재임 당시 대다수 일본 언론은 그가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 국가부주석을 맡아 2012년 후주석에 이어 당 총서기로 오르게 될 것으로 앞을 다투어 보도했었다.

리커창은 일본과는 오래전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1985년 3월 중·일 청년우호교류 협회의 중국측 청년대표단의 간사로 일본을 방문한 이후 일본 정계인사들과 긴밀한 교류를 지속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 일본 민주당 대표는 2005년 랴오닝성을 방문, 리커창을 예방한 후 “그가 장차 중국의 최고 영도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공언했었다.

특히 랴오닝이 중국 31개 성·시 중 일본과 경제·문화 교류가 가장 활발하다는 점도 일본 정계가 리커창의 국가주석 등극을 고대했고, 또 ‘재패니즈 프랜드리 리 주석’ 시대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목이다. (2)*

그러나 리커창은 200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9인 중 서열 7위로 입성, 시진핑(서열 6위)에 한발 밀렸다. 이듬해 2008년 3월 시진핑은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 자리인 국가부주석에 임명되고 리커창은 원자바오 총리의 후계자 자리인 상무부총리를 맡았다.

앞서 있던 리커창이 시진핑에 역전당한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리커창 실적이 시진핑보다 미흡했다. 덩샤오핑 개혁개방 이후 공직자 인사고과에는 실적이 절대적 비중을 하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 대다수는 성급 이상의 지방수장을 10년 이상 맡게 한 후 그 중 실적이 탁월한 자로 충원돼 왔다.

둘째, 권력 핵심중의 핵심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실 비서이자 현역 중령급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십수년간 지역군구 총지휘관을 겸직한 시진핑에 비해 리커창의 군부내 인맥과 지지가 비교할 바 없이 취약했다.

끝으로 (이는 필자의 조심스러운 초보적 추론이지만) 중국의 주적인 일본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었던 리커창이 중국 내지에 비해 반일정서가 비교적 약한 지역인 랴오닝성 당서기 재직 중 일본 언관학계가 차기 영도자로 그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띄워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13년 3월 시진핑과 리커창이 각각 중국의 ‘오너’와 ‘CEO’인 국가주석과 국무원 총리에 취임하자 ‘시-리 체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었다. 경제학 박사 리커창은 역대 최고의 경제 총리로 기대되며 그의 성을 딴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라는 말을 낳았다.

그러나 2015년 증시 폭락사태에 이어 리 총리가 역점을 뒀던 국유기업 개혁, 자유무역지대 건설 등은 점차 ‘변방의 북소리’가 되어갔다. 더구나 2016년말 개최된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 때 시 주석에 '핵심' 칭호가 부여됐다. 직후 리 총리를 시 주석과 병렬로 두는 '시-리 체제'라는 표현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2018년 3월 현재, 시 주석은 리 총리가 묵묵히 '시진핑 핵심'을 추종하는 태도로 보아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지는 않을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리커창을 시진핑 제2기 정부의 총리에 유임시킨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리커창 비판 3선, 어록 8선

[리커창 총리]


리커창 총리에 대한 세간의 비판적 평가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절대 강자 시진핑의 위세에 밀려 존재감 없는 역대 최약체 총리.
둘째, 최고학부 출신 최고학력(베이징대 법대졸, 경제학 박사) 총리나 무색 무취 무능한 경제정책.
셋째, 아내와 딸과 영어로 대화할 정도로 영어에는 능통하나 중국어 명언이 별로 없음.

필자가 리커창이라면 첫째, 둘째의 비판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셋째 비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리커창도 적지 않은 명언을 남겼다.

1. 큰길을 가고,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천하를 이롭게 한다’(行大道, 人爲本, 利天下)
<2013.3. 중국 제7대 총리 취임사>

2. "옛날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봤지만(人在做 天在看)' 클라우드컴퓨팅 시대인 현대는 '권력의 사용은 구름이 보고 있다(權在用, 雲在看)'. 공직자는 사회각계 온라인에게 감독받는 걸 환영해야 한다."
<2013.3.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3. "글로벌화 현대 세계 각국은 ‘지구촌’에 동거하고 있다. 어떠한 나라도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로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중국 경제의 구조조정과 업그레이드는 세계경제 번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13년 다보스포럼 연설>

4. "중국은 더 이상 高투입,高배출,高오염의 암회색 길을 갈 수 없다. 녹색의 길로 대전환해야 한다. 환경오염의 신규 빚을 지지 말며 오랜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2014.3 전인대 정부업무보고>

5. "서적은 문명의 캐리어, 독서는 행복한 재테크."
<2014.3.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독서광 리커창 총리가 전국민의 독서습관화, 일과 독서를 결합, 문화 창조력과 도덕 수준을 높이자는 '전민열독(全民閱讀)'슬로건을 내걸며. 

6. "바둑에서의 사활은 독립된 두 눈(집)을 낼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안정적 성장과 구조조정은 바로 두 개의 눈에 해당한다."
<2015.3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바둑고수(아마추어 3~4단쯤) 리커창 총리(3)*

7. "대만 기자: “중국정부의 대만상공인 우대정책의 목적은 뭔가?”
"리커창 총리: “특별한 목적은 없다. 우리는 한 동포이기에"
<2016.3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8. "알파고는 사람이 만든 것. 상호 보완성이 높은 한·중·일 3국은 서로 손을 잡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스마트 과학기술 신제품을 개발해내자. 3국이 함께 광활한 세계시장을 개척해 나가자."
<2016.3.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 주석
(1)* 리커창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 재직기간인 1995년에 베이징대에서 '중국 경제의 삼원(三元)구조'라는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한국의 최다 투자지역은 산둥성이라면 일본은 랴오닝성이다. 2013년 현재 랴오닝과 일본의 도시간 자매결연이 20여쌍에 이르고 랴오닝에 진출한 일본 기업이 7천여 개, 일본자본 투자액은 153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3)*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 화제가 됐던 웹툰과 TV 드라마 미생(未生)도 대표적 바둑용어다. 미생은 바둑에서 완생(完生)의 최소 조건인 '독립된 두 눈(집)' 없는 상태를 말한다. 대국자들이 착수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미완성의 상태다.




 

네티즌 의견

1개의 의견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0자 / 300자
뉴스스탠드에서 아주경제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