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미추(美醜)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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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입력 2018-0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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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畵裡姸媸且莫分(화리연치차막분) 그림에선 미추(美醜) 또한 분별이 없어
一任風雪滿征裙(일임풍설만정군) 눈바람 온통 맞아 먼 길 옷에 가득하다
當時枉殺毛延壽(당시왕살모연수) 그때는 잘못하여 모연수를 죽였으나
麟閣追宜策上勳(린각추의책상훈) 기린각에 일등 공신 추존해야 한다네
 
미인도를 보고 그린 작자 미상의 이 시에서 여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왕소군(王昭君)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옷 가득 눈보라를 안고 먼 여정을 떠난 그녀. 이는 앞으로 딛게 될 고생길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결국 왕소군은 한나라와 흉노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된다.
 
만일 화가 모연수가 실제의 미추(美醜)를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녀의 초상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원제는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순순히 왕소군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모연수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는 한나라에 큰 도움이 되었으나, 그는 그림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 왕소군의 희생이 양국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었기에 그녀의 공은 지대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초상화는 당연히 기린각(麒麟閣)에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진실은 모호하다. 위 일화가 실린 <서경잡기>와는 달리 <후한서>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에는 모연수에 관한 기록이 없다. 되레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는 한나라를 뒤로한 채 왕소군이 흉노로 가길 자청했다고 한다. 애틋함이야 덜하지만, 그녀의 자발적 선택이 돋보이는 <후한서>의 내용도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는 사람이든 일이든 ‘보고 싶은’ 한 면에 너무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대상의 미추(美醜)를 분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대로 ‘보여주고’ ‘보는 것’이란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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