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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⑧]조선영혼의 말살자, 사이토 총독 암살하려 했던 그들

이상국 T&P 대표입력 : 2018-02-06 14:38수정 : 2018-02-08 08:50
강우규와 송학선, 총독에게 폭탄 던지고 칼을 품고 차에 올라 '거사'
사이토총독은 부임 때부터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테러리스트는 노인이었거나 전문적인 독립투사가 아닌 청년이었다. 뜻밖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일제는 조선민족이 지닌 불굴의 강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 강우규 의사]



강우규 의거 = 1919년 9월2일. 65세의 강우규(1855~1920)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대문역(구 서울역)에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제3대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맞이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이었다. 그 속에 강우규가 있었다. 사이토총독 부부가 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그가 폭탄을 던졌으나 빗나갔다. 총독은 의복이 조금 탔을 뿐이었고, 동행한 경무총감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 미국 뉴욕 시장의 딸인 해리슨 부인 등 약 30명이 부상했다. 일본인 기자 2명이 즉사하였다. 재거사를 위해 도피한 강우규는 9월 17일 순사 김태석에게 체포됐다. 1920년 4월 25일 사형 언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그는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음이 부끄럽다.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만 충격이나마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될 때 일제 검사가 “감상이 어떠냐”고 묻자 "단두대상 유재춘풍 유신무국 기무감상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봄바람만 부는구나, 몸은 있어도 나라가 없으니 어찌 느낌이 없으리오" 라고 시를 읊었다.
 

[사진 = 송학선 의사 순국 추모제.]



송학선 의거 = 1926년 남자현이 서울로 내려왔던 때와 같은 시기에 테러를 감행했던 송학선(1897-1927)은 29세의 평범한 청년이었기에 일제의 충격이 더 컸다. 

송학선은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금호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눈여겨 봐두었다.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기엔 안성맞춤인 장소라 판단했다. 26일, 27일 양일간 칼을 품고 사이토를 기다렸다. 사흘째인 4월 28일 창덕궁에서 조문을 하고 나오는 일본인 세 명이 탄 무개차가 있었다. 저 놈들이 사이토 일행이구나. 천천히 다가오는 차에 뛰어올라 품속에 있던 칼을 꺼내 휘둘렀다.

순식간에 탑승자 세 사람을 죽였는데, 경성부회 평의원 다카야마, 사토, 이케다였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사이토처럼 보이는 고관(총독이 아니었지만, 당시 그는 알 수 없었다)을 향해 달려들어 가슴을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일을 끝낸 뒤 달아나다가 뒤쫓아오던 조선인 순사 오환필을 찔렀다. 다시 도주. 휘문고등보통학교 인근에서 일본 경찰과 격투를 벌이다 붙잡혔다. 송학선은 이후 사형 선고를 받고 192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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