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발명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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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8-0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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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발명의 씨앗은 종종 엉뚱한 꽃을 피운다.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가 그렇다. 레이서인 레이 하룬은 1911년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기념비적인 우승을 거둔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평균 시속 120㎞이다. 그가 몰았던 노란색 32번 마몬 스포츠카는 현재 인디애나폴리스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있다. 그런데, 우승 비결은 스포츠카 성능보다 ‘리어 뷰 미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량에 후방을 보는 거울은 없었다. 하룬은 누가 자신을 추월하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우승하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추월을 허용해선 안 된다. 참가 선수들이 차량 규정 위반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허용됐다. 거울 자체가 속도를 높이는 불법 장치는 아니니까.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작은 교수님’이다.

지금은 모든 차량에 룸 미러와 사이드 미러가 달려 있다. 스피드가 아니라 안전운전을 위해서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면 오히려 쏜살같이 달려드는 운전자들은 혹여 하룬에 패배한 루저의 유전자 때문일까.

‘스피드 카메라’도 비슷하다. 하룬이 인디 500에서 우승한 1911년에 네덜란드 레이서 모리스 갓초니데스가 태어난다. 그 역시 경주에 광적으로 몰입했지만 결정적으로 코너링이 약했다. 랠리에서 코너링은 승패를 가르는 열쇠이다. 시속 200㎞로 돌아야 하는 구간에서 190㎞로 돌면 우승할 수 없다. 210㎞로 돌면 탈선하거나 전복된다.

그는 얼마만큼의 속도로 돌아야 가장 효과적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도로에 고무밴드를 깔고 이를 카메라 셔터에 연결했다. 직선 경주로의 길이와 커브 구간 곡률에 따른 최적의 속도를 알아내려던 것이다. 마침내 1953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우승한다. 그에게는 모리스란 이름 대신 ‘마우스’란 별칭이 붙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유럽,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가 급증했다. 수많은 운전자와 행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스톱워치로 규정 속도를 위반했는지 측정했는데, 오차와 오류가 심해 운전자와 실랑이가 잦았다. 이에 착안한 그는 1958년 ‘갓소미터 BV’란 회사를 세운다. 자신이 고안한 속도 측정용 카메라를 과속 단속용 감시카메라로 용도만 살짝 바꾼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국가마다 경찰당국이 앞다퉈 사들이면서 금세 백만장자가 됐다. 번트로 홈런을 친 셈이다.

체스터 칼슨은 복사기로 대박을 쳤다. 당시는 모두 타자기나 펜으로 사본을 작성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처음 IBM을 찾아가 설명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9년 동안 20개 회사에서 퇴짜를 맞았는데, 헤일로이드라는 회사가 마침내 가능성을 알아봤다. 칼슨을 만나며 회사명도 바꿨다. 바로 제록스이다. 

그는 복사기 1대당 16분의1센트를 받기로 했다. 그래도 62세에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올린 수입은 2억 달러에 가까웠다. 그는 1억5000만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는데, 평소 소원이 '가난한 남자로 죽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닌가.

홈런을 쳤으나 베이스를 밟지 못한 경우도 있다. TV의 대부로 불리는 파일로 판스워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고교생이던 14세에 전자장치를 이해했고, 21세에 오늘날 TV시스템과 완벽히 동일한 기능의 해상(解像) 장치를 발명했다. 그런데 라디오 업계의 거물인 RCA가 그의 재능에 눈독을 들였다. 기술을 훔치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 그가 고교시절 과학교사 앞에서 칠판에 그린 개념도를 기억해 복원하면서 RCA와의 특허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결국 100만 달러를 특허료로 받았지만, 300개가 넘는 특허를 발명하는 과정에 오히려 가산을 탕진하게 된다. 만년에는 쪼들리면서 알코올 중독과 폐렴에 시달렸다. 정작 그는 TV도 멀리했다. 문맹퇴치를 위해 발명한 TV가 불륜 드라마와 오락물로 넘쳐난다고 불평했다.

하기야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본인 명의의 미국 특허가 1093개나 되지만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살상용 무기를 발명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황금은 줄리어스 시저의 유물이고, 이윤은 사탄의 발명품”이라 말했다고 전한다. 어쩌면 에디슨은 구속되지 않는 상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덧없는 인생에서 최고 갑부였는지 모른다.

바야흐로 비트코인 열풍이다. 암호 화폐를 2009년 공개한 익명의 사토시 나카모토는 98만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본원 가치 0에서 현 시세로 127억 달러 갑부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투자자 덕에 머지않아 세계 최고 갑부가 될 거라고 한다. 물론 거품이 꺼지면 쪽박을 차겠지만.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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