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메모리 매각]‘파벌다툼·첨예한 이해관계’에 산으로 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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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7-10-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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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바 메모리의 교훈 - (1)


도시바가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 메모리’의 매각 계약을 ‘한미일 연합’과 체결했다고 발표한 지난달 29일.

한미일 연합의 주체인 미국 투자펀드 베인 컴퍼니는 이날 오후 일본 도내 모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회견 시작 시각 이후에 뒤늦게 일정을 취소했다. 10여분 후 회견장에 나타난 스기모토 유우지 베인 일본 지사장은 “기자회견 개최에 대해 관계자들의 합의를 구하지 못했다”면서도, 어떤 기업이 왜 기자회견에 반대했는지 등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지난 3월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 매각 방침을 표명한 이후 약 7개월간 이어진 조정작업은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이날 1차 작업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인수주체인 도시바가 벌인 우유부단한 태도는 인수 희망자는 물론 자국 여론들로부터도 모진 질타를 받았다.

인수자를 최종 결정했던 이날 마저도 베인 컴퍼니측의 기자회견 취소로 의미가 퇴색됐다. 항간에서는 도시바측의 반발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매각 후에도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미일 연합에 투자한 도시바로서는 베인과 참여사 관계자들이 단상에서 기자들에게 도시바 메모리의 미래를 밝힐 경우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매각 과정에 곡절 많아
도시바 메모리 인수 과정은 한화로 20조원이 넘는 ‘거대 인수·합병’(Mega M&A)이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후진적이었다.

지난 6월 말 우선협상대상자를 한미일 연합으로 결정해 발표한 이후 2개월 만에 이를 변경하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합작 파트너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주축이 된 ‘미일 연합’과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 등 다른 측과도 협상을 병행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연출했다.

이에 대해 산업계 전문가들은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을 ‘파벌갈등과 이권 차리기를 위한 이전투구’라고 칭했다. 그 중에서도 도시바 내부의 파벌 다툼이 최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룹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자신들의 파벌을 지키겠다는 ‘줄 싸움’이 평행선이 되어 그나마 남은 내부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들은 ‘전문경영인 경영체제’가 낳을 수 있는 최대 약점이 도시바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1875년 설립된 다나카 제작소를 모태로 한 도시바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전제품 붐에 힘입어 급성장한 데 이어 글로벌 IT기업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에 허덕이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백색가전 등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기업 해외매각 등이 진행될 때에도 도시바는 특별한 사업 구조개편 없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도시바의 두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7월 일본 증권거래감시위원회(SESC)의 의뢰로 제3자위원회가 관련 의혹을 조사한 결과, 도시바가 2008~2014년 기간 동안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562억엔(한화 약 1조5000억 원)의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이 드러났다. ‘일본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도시바는 이 사건으로 ‘부정기업’으로 전락했고, 그룹을 10년 이상 이끌어왔던 당시 다나카 히사오 사장, 사사키 노리오 부회장(전임 사장), 니시다 마쓰토시 상담역 등 3명이 사임했다.

◆7조원 미 원전 사업 손실 직격탄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도시바가 원자력발전 사업부 손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조사를 시작했으며, 2017년 1월 도시바는 미국 원전사업으로 7000억엔(약 7조1620억원)의 손실 입었다고 발표했다. 시가 시게노리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동시에 도시바는 그룹 해체라는 극단의 사태에 몰리게 되었고, 이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메모리 사업부 매각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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