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수 칼럼] 우리에게 ‘포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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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수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09-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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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수칼럼
 

                                                        [사진=손병수 초빙논설위원]


우리에게 ‘포용’이 있는가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 끝까지 대화와 평화적 해법을 추구할 책무가 있습니다.”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부터 바른정당 의석이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5천만 인구가 북한의 핵 인질로 잡힐 판국에 무슨 대화냐”며 항의하던 바른정당 의원들은 결국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했다. 그런 본회의장 앞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 참석을 거부한 채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를 규탄하며 농성중이었다. 북한 핵실험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폐기 준비 지시 등 핵폭탄급 악재들이 쏟아진 다음날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날 집권당 대표는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시대의 과제로 내세우며 남북관계는 물론 검찰과 사법부, 방송, 재벌 개혁등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거침없이 주장을 펼쳤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이른바 ‘지대(地代, 땅 사용료) 개혁’이었다. 지대를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으로 지목한 추대표는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대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까지 거론했다. 헨리 조지가 누구인가. 대표작 ‘진보와 빈곤’(1879년)을 통해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거둬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토지공개념 이론을 신봉하는 이른바 ‘조지스트’가 노무현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실장과 김수현 비서관이었으며, 그들이 만든 것이 일종의 부유세로 불렸던 종합부동산세였다. 종부세는 도입 3년만인 2008년에 일부 위헌,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으며 노무현 정부 부동산정책 실패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추대표의 발언은 그동안 명맥만 유지해온 종부세의 부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8‧2 부동산 대책이 흔들릴 경우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이 종부세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추대표는 이미 지난 6월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소득세, 법인세를 올리는 ‘핀셋과세’를 먼저 치고 나가 대통령의 호응을 얻은 후 정부 증세안에 관철시킨 전례도 있다. 부동산 보유과세 강화는 사유재산권 침해 시비와 조세 전가 등 정권을 뒤흔들 위험 요소들이 매복해 있는 과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지만, 현재의 집권셰력은 ‘적폐 청산’을 앞세우며 거침이 없다.
헨리 조지나 종부세 부활과 연결되는 흐름은 추대표의 ‘사법부 개혁’ 주장에서도 얼핏 드러난다. 추대표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을 거론하며 ‘재벌과 정치권력에 한없이 나약했던 사법부의 개혁’을 강조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이름으로 사법부 수뇌부의 전면적인 물갈이를 추진중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이나 종부세 위헌 판결, 지난 정부 시절 대법원의 원세훈 파기환송 등을 통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최고 법정의 위력을 절감한 현재의 집권세력은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진보 인사로 교체했다. 문대통령은 임기중에 대법관 13명 가운데 12명을 임명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나라 최고법원을 진보 일색으로 바꿀 수 있으며,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런 인적 개편을 통한 사법부 개혁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핵심 정책이 잇따라 사법부에 제동이 걸리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시도로 풀이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뉴딜 정책으로 극복해내 성공한 대통령의 상징으로 꼽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 출신이 지배한 연방 대법원의 발목잡기에 맞서 대대적인 대법관 교체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역사는 루스벨트의 이런 시도가 결국 실패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36년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된 루스벨트는 종신직인 대법관 임기를 70세로 제한하고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는 사법부 개혁법안을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 제출했다. 이제 대법원이 루스벨트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누구나 믿었지만, 의회는 법안을 폐기처분했다. 법안을 심의한 상원 법사위원회는 “불필요하고 쓸모 없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헌법정신 포기행위”라고 폐기 이유를 설명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의회 결정을 흔쾌히 수용했으며, 대법원은 뉴딜의 핵심 법안에 합헌 판결을 내려주면서 사태는 매듭지어졌다.
국내 정치인들에게도 필독서로 꼽히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공저)는 이런 역사를 소개하면서 “3권분립의 기본을 지키는 포용적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지킬 뿐 아니라 정치제도 자체의 지속성을 훼손하려는 시도에도 제동을 건다”고 설명한다. 다시말해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와 의회 장악을 무기로 사법부 마저 장악하면 무소불위의 독주를 막지 못해 결국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종부세 강화와 사법부 개혁을 추진하는 현재의 집권세력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의회, 대법원이 어울려 포용적 정치제도를 지켜낸 미국의 사례도 벤치마킹 했을까. 그들이 ‘적폐 청산’을 앞세워 모든 것을 장악하면, ‘포용’이 들어설 자리는 있을까. 우리에게 포용의 정치, 포용의 경제가 가능하긴 한 것일까. 4일의 국회 풍경에 가슴을 친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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