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빙' 이수연 감독 "한 줌의 팬들이 두 줌으로 늘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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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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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 인터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해빙'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수연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호불호(好不好)에 관해 알고 있다. “취향이 확고한 한 줌의 팬들이 두 줌으로 늘어날 때까지 노력하겠다”며 웃는 얼굴은 자신(自信) 내지는 초월처럼 느껴진다.

영화 ‘4인용 식탁’으로 시작된 이수연 감독의 심리·스릴러·공포는 영화 ‘해빙’을 통해 확고한 스타일을 갖추게 됐다.

우연히 살인의 비밀에 휘말려 점점 두려움에 휩싸여가는 내과 의사 승훈(조진웅 분)과 수상쩍은 주변 인물의 팽팽한 심리를 그린 이 작품은 배우 조진웅의 말을 빌려, 이수연 감독의 시그니쳐 메뉴라 부를 수 있다. 예리하게 내면을 파고드는 시선과 한 인물을 옭아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이건, 이수연 감독 영화구나!’ 하고.

영화 '해빙'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 그래도 긴장된다. 제가 워낙 호불호가 강하지 않나. 저도 저를 안다. 오죽하면 선배님들이 제게 ‘수연아 알아, 알아. 그런데 요즘 사람들 살기 힘들어’라고 하시겠나.

호불호가 명확하다. 이건 정말 취향의 문제다
- 물론 그 호불호에 관해 알고 있다. 마치 영화를 내놓고 ‘접니다. 저예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꽤 단련이 돼 있다. 데뷔작으로 실컷 얻어맞아서 ‘해빙’은 어느 정도 완화가 된다. 오히려 관객들과 배우들이 걱정이다. ‘이런 감독은 처음이지?’

그런데 ‘해빙’은 일정 부분 대중들의 편의를 봐준 느낌이었다. 명확한 결말을 내놓았다고 할까?
- 사실 저 같은 취향이라면 결말 전까지만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투자팀에서 답을 맞혀줄 것을 요구했다. 어디에, 어떻게 넣지? 고민하다가 블랙박스 장면을 넣었다. 우리 영화가 지속해서 CCTV, 블랙박스 이야기를 하고 있고 진실이 무엇이라는 것에 관해 좇고 있으니 일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마지막 장면이 임팩트가 있어서 맞출 수 있었다. 정서상의 충격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대명 씨와 신구 선생님이 잘 해주셨다. 결과물을 보고 마지막에 한 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타협한 부분일까?
- 예컨대 빨간색이 답이라면, 저 같은 경우 ‘이 색도 빼고, 이 색도 뺐지? 그럼 무슨 색이 남았니? 빨간색이지?’라고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제작사 측에서 ‘빨간색! 빨간색이에요! 짚어줘야 한다’고 하더라. 우리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에 상업영화기 때문에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하하. 분명 저보다 제작사가 대중적이지 않겠나.

기자간담회에서도 ‘떡밥’을 던져놓고, 회수하는 과정 역시 명확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 명확하지 않았나? 하하하.

회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 체질이다. 저는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떡밥을 던지는 것보다 회수의 수위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수위 조절이라는 것에 있어서 고민이 컸다.

영화 '해빙' 스틸 컷 중, 승훈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치밀하고 예민한 작품이라서 현장 분위기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 현장은 그렇지 않았나. 우리는 12시간 표준 근로 계약 현장이라서 힘들고 예민할 일이 별로 없었다. 스태프들에게도 ‘예술은 배우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 하에 체계적으로 작업했다. 배우들도 모나지 않아서 다들 웃으면서 즐겁게 촬영했다.

승훈 역의 조진웅 배우가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을 함께 해줄 사람은 온전히 감독님뿐이었을 텐데
- 오로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니까. 아주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영화는 텍스트가 있으니까 그것을 재료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상적인 건 진웅 씨가 굉장히 예민한 감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상대역이었던 윤세아 씨의 표현을 빌자면 진웅 씨는 솜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그것도 눈물에 푹 젖은 솜. 그 정도로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살려낸 부분이 있었다.

어떤 부분이 더 풍성해졌을까?
- 윤세아 씨와의 장면이었다. 집으로 찾아온 아내와 승훈의 감정적인 장면들과 체육 활동(멜로 신)이랄까? 하하하. 더 멜로적이고, 승훈의 감성이 잘 살았던 것 같다. 갑옷을 입고 있던 조진웅이 그 갑옷을 벗어 던지고 여린 감성을 보여준 것 같다.

조진웅이 ‘해빙’에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해빙’은 촘촘한 거미줄 같은 작품이 아닌가. 철저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즉흥이라는 말을 듣고 의아했었다
- 저는 철저하게 콘티를 만들고 아귀를 딱 맞게 만들어야 하는 스타일이다. ‘해빙’ 역시 그런 계산법에 의해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온전히 맡겨야 하는 장면들도 있다. 연기적인 부분인데, 세아 씨와 진웅 씨의 감정신이 그랬다.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문을 열고 곧장 침대로 가는 내용이었는데 리딩 과정에서 정서적인 부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 간 거다. 워낙 콘티가 철저해서 진웅 씨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은데, 중간에 제가 ‘컷을 100개로 쪼개도 진웅 씨 못하면 끝이야. 불편하면 진웅 씨 대로 바꿔도 돼’라고 이야기하니 이후 점차 연기적인 시도가 늘더라. 온전히 배우에게 맡겨진 장면들에 한해서다.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연기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그런 부담이 있었던 모양이다.

취조실 신도 인상 깊었다. 연극적 구조가 눈에 띄었는데 그 장면 역시 조진웅의 즉흥적인 면이 가미 된 건가?
- 그 신은 원래 구성 자체가 연극적인 톤이었다. 다만 여러 번에 나눠서 찍으려고 했는데, 진웅 씨가 감정을 끊지 않고 한 번에 가야 한다고 해서 OK를 내렸다. 편집에서 자르면 되니까. 하하하. 애당초 디자인하기를 모노드라마 같은 톤으로 구성했다. 그야말로 배우에게 맡기는 신이었다.

영화 '해빙' 스틸 컷 중 조진웅(왼쪽)과 송영창[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빙’의 정서를 가진 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 정육점을 찾는 게 중요했다. 정육 식당이되 뒷마당 같은 공간도 있어야 하고, 근처에 공터도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모든 조건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어서 내부는 세트를 따로 만들었다. 그런데 안산에 조건에 가까운 공간이 있더라. 바닥 느낌도 살아있고,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강렬한 건물을 발견해서 장소를 섭외했다.

공간적, 미술적인 부분들도 많이 신경 쓴 것 같은데
- 그 남자가 처한 환경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작은 공간에 조진웅이라는 거대한 배우가 들어차서 숨이 막히고 비좁고, 답답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이 장면을 찍을 땐 아마 조명 감독님이 제일 고생하셨을 거다. 보통의 작품들이 원룸을 찍더라도 비현실적이게 광활하게 설정하는 건 조명 때문이니까. 좁은 곳에서 조명 설정하고 카메라에 걸리지 않게 하는 데 고생하셨을 거다.

색감도 여타 스릴러와는 달랐다
- 보통 스릴러는 블루톤인데 우리는 한여름 대낮에 가위를 눌린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붉은색을 더했다. 정육 식당이나 승훈의 방한이 대개 그런 색감이다. 하지만 후반부 어느 순간이 오면 시점을 전환하면서 무채색으로 변한다. 시점에 따라서 변화를 주고자 한 거다.

좁은 방안을 차지하는 커다란 침대를 보면서 승훈의 전사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 깨알 같은 디테일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였는데
- 예전에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10평이 채 될까 말까 한 아파트였는데 거기에 엄청 큰 샹들리에와 침대가 하나 있더라. 보자마자 ‘아, 이전에 잘 살았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한눈에 보이더라. 그래서 승훈의 공간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많이 배치했다. 큰 침대, 쌓아올린 책, 그림 같은 것들. 그림의 경우에는 미술 감독님이 마크 로스코 전시를 보고 영향을 받으신 거였다.

개봉 후, ‘해빙’을 정리하자면?
- 무의식 안에 억압됐던 본모습, 부끄러운 모습을 대면하는 남자 이야기다. 결국, 진실의 상대성을 이야기하는데 여러 장르가 혼재되는 것 같아도 결국 퍼즐처럼 답을 맞혀가는 작품이다. 관객이 생각하는 답과 감독의 답이 딱 맞아떨어지거나 혹은 다르더라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떡밥을 던지고 답을 맞혀주지 않은 채 도망가지도 않으니까. 답을 딱 맞췄을 때 오는 쾌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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