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이 같은 변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은행을 가지않고도 100여 가지 금융업무를 24시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빨랫감을 맡기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출퇴근길을 오가며 공과금을 납부하거나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공문서 출력도 이제는 손쉽게 한다. 도시락과 작은 포장김치, 원두커피를 손에 든 채 귀가하는 직장인의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렌터카까지 편의점에서 이용하게 됐으니 ‘편의점 전성시대’란 말이 헛말은 아니다.
편의점이 우리생활에 첫 선을 보인 것은 30여년전이다. 올림픽 이후 소비수준이 높아지던 시기인 1989년, 서울 방이동에 들어선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 편의점의 시초다. 당시만 해도 편의점은 ‘비싼 24시간 슈퍼’ 개념에 가까웠다.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술, 담배, 음료수 등을 살 수 있는 말그대로 '편의를 제공'하는 슈퍼였다.
그러나 그 ‘비싼 슈퍼’는 어느덧 30년의 시간이 흘러 다기능 유통채널인 ‘작은 백화점’으로 변신하며 소비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국내 편의점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개를 돌파했다. 올해 중에도 5000여개 점포가 더 생긴다고 한다.
시장구조 관점에서 편의점의 상승세가 무서운 것은 기존 유통채널의 소비자 점유율을 뺏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 증감률을 살펴보면 대형마트의 경우 2014년 3.4%, 2015년 2.1%, 2016년은 1.4%씩 매년 감소했다. 이에 반해 편의점은 2014년 8.3%, 2015년 26.5%, 2016년 18.1% 등 급성장세를 보였다.
유통업체 매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대형마트와 편의점 간 격차가 점차 줄고 있다. 대형마트는 2014년 전체에서 27.8%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26.3%, 지난해에는 23.8%로 꾸준히 떨어졌다. 반면 편의점은 2014년 13.4%에 불과한 점유율이 2015년 15.6%, 2016년 16.5%까지 늘어났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전체 비중 격차가 7%포인트로 좁아든 셈이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 편의점은 '나홀로 성장'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늘 그늘이 있기 마련. 편의점 수가 늘어난 만큼 개별 가맹점주들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매출하락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새로 문을 연 편의점은 5508개로, 하루 평균 15곳이 문을 열었다. 편의점주들이 경쟁점포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매출과 수익성 하락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신림동의 한 편의점주는 “자고 일어나면 근처에 편의점이 새로 생기는 지 꼭 챙긴다”며 “벌써 석달 사이 주변에 3곳이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분산되다 보니 지난달부터 매출이 조금씩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아르바이트)생들의 낮은 시급도 시장성장과 함께 개선돼야 할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편의점들이 앞다퉈 다양한 상품판매에 나선 탓에, 알바생들의 업무영역도 예전에 비해 훨씬 광범위해졌다. 단순한 상품 계산과 재고물품 관리가 과거 편의점 알바생의 주 업무였다면 이제는 즉석 신선식품 관리는 물론, 금융·택배서비스 등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서울시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알바천국이 조사한 결과 그해 3분기 서울 지역에서 편의점 업종이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가장 많이 냈다. 총 107개 업종, 31만3089건 중 편의점 모집공고가 6만1921건(20.9%)이나 됐다.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평균 6277원으로 공고 수가 많은 상위 40개 업종 평균(6756원)보다 낮았다.
무엇보다 편의점의 무한성장 뒤 드리워진 가장 큰 그림자는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현재 편의점 시장은 롯데, GS, 신세계 등 유통대기업들이 휩쓸고 있다.
몇 년 전 대기업들이 동네 빵집과 피자가게, 치킨가게 등을 접수했을 때만 해도 동네상인들의 공분으로 대기업이 발길을 돌린 사례가 많았지만, 왠지 편의점 업종은 큰 '문제없이' 대기업 자본들이 벌써 골목을 잠식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서민경제 살리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네 슈퍼’들을 찾는 게 이제는 어려워진 것이다. 작은 슈퍼들이 대기업 대자본의 쓰나미에 밀려 사라지거나, 대기업의 ‘일원’이 돼 편의점주로 신분을 바꾼 사이 서민들에게 작은 시장 역할을 하던 ‘구멍가게’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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