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초대석]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외교·문화적 수단 병행해 문화재 환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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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2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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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해외 소재 문화재는 강탈, 절도 등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며 "기증 등 유화적 방법으로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세구 기자 k39@]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16만8000여 점. 다양한 연유로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문화재 수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숫자일 뿐, 실제로는 몇 백만 점의 문화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은 이처럼 국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하고 환수‧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 설립된 문화재청 산하의 전문기관이다.

재단의 주요 임무는 해외 박물관·미술관·민간 등이 소장·보관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로 재단은 지난 4월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실태조사를 완수했고, 도쿄의 일본민예관이 올해 6월까지 개최한 '조선공예의 미(美)'전에 소장 유물 보존‧복원, 도록 제작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현지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부당하게 유출된 것이 확인될 경우엔 이를 되찾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재단의 핵심 사업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기관은 아니지만, 재단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곳에 지난 10월 '국내 대표 고고학자’, '한국 문화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건길(73) 이사장이 부임했다. 1970년대 풋내기 학예사로 문화재와 마주한 지 이사장은 국립 부여·광주·경주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영월국제박물관포럼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누구보다 한국 땅의 흙냄새를 많이 맡아 왔다. 

◆ "기증 같은 유화적 방법으로 문화재 환수 유도해야"

지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을까. 그는 "국민들은 국외소재 문화재라 하면 먼저 '약탈'·'강탈' 그리고 당위적인 '환수' 등의 단어를 떠올리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고 운을 뗐다. 물론 절도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반출된 것들도 있지만, 외교·선물·구입 등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나간 것들과 반출 경위가 밝혀져 있지 않은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에 있는 16만여 점의 문화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당장은 아니겠지만 재단을 국외문화재연구원(가칭) 같은 조직으로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정과 학예 두 축으로 재단을 편성하고, 문화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게 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솝우화에는 강한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이 길을 걷는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이를 언급하며 "문화재 환수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은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화재를 모으는 방법으로는 발굴, 구입, 기증 등이 있는데 이 중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를 다시 가져오는 데에는 유화적인 방법, 즉 기증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재직 시 기증실 조성을 주도하기도 했던 지 이사장은 "국가·기관·개인 등 문화재 소유자가 해당 유물을 우리에게 반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재단이 해야 할 일이지만, 예산 등의 제한이 분명히 있다"며 "그들을 기증으로 유도하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외교적·문화적 수단을 병행하는 현명한 환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해외 문화재 중에서 어떤 것들을 우선적으로 환수해야 할까. 지 이사장은 '생명력'을 가늠자로 여기며 "일단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중요성을 가려내야 한다. 그런 다음 회화 유물처럼 습기, 온도 등에 취약해 생명력이 길지 않은 것들을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관리'라는 단어를 쓴 것은 시급한 환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현지에서에서의 보존과 수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 그런 조치를 통해 한국을 홍보한다는 전제 조건이 수용될 경우에 한해서다. 

◆ '곽분양행락도' 각광…훼손된 문화재 가져와 새 생명 불어넣어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 회화'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가 화제다. 재단이 2014년 구입해 고궁박물관에 기증한 이 그림은 일생동안 부귀, 장수, 다남(多男) 등의 만복을 누리고 분양왕(汾陽王)에까지 봉해진 당나라 명장 곽자의(郭子儀)의 노년 연회를 그린 병풍이다. 이런 뜻에서 조선 후기에는 길상화로 왕실 가례나 귀족들의 경사 등에 애용됐다. 이번 전시에선 미국 캔자스대와 필라델피아미술관이 각각 소장하고 있는 곽분양행락도 2점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지 이사장은 "조선 왕실의 회화 문화를 보여주는 귀한 작품이지만, 외국 박물관 수장고에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 두 작품은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작품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국내에서 엉성하게 보수 처리를 하는 바람에 병풍 뒷면에 신문지, 벽지 등이 너저분하게 붙어있을 정도였다. 그는 "수리·보수를 위해 재단은 '가례도감의궤' 등 이 병풍의 제작에 사용된 재료와 형태를 샅샅이 조사했다. 현미경, 마이크로 X선 형광분석기 등으로 유물의 크기, 손상상태 등도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온 두 작품은 아쉽지만 내년 초 다시 소장자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지 이사장은 지난 5일 한국박물관협회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우리나라 국·공립, 사립, 대학 박물관 800여 곳이 속해 있는 협회에서 재단이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각 박물관들과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국외 문화재에 대한 관심 환기 등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크리스티, 소더비 등 해외 경매업체를 통해 문화재를 구입할 때 여기에 나온 유물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생각보다 경매장에 가짜가 많아 놀랐다"며 "그래서 재단에는 외국어와 문화재 감별 둘 다 능통한 인재들이 많은 것 같다"고 웃었다.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린 '제6차 문화재 환수 전문가 국제회의'는 '경주 권고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협력하고 정보 교류 네트워크를 강화하자'는 게 권고문의 골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일각에선 상투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 이사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 중국, 터키 등 문화재를 많이 뺏겨본 나라들이 아무래도 회의에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낸다"면서도 "애석하게도 이는 '외로운 외침'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회의는 지난 2011년 한국에서 처음 시작돼 지난해까지 그리스, 터키, 중국 등에서 개최됐다. 그는 "영국 등 선진국 인사들도 참여했지만 솔직히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움직여야 구체적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내년 회의는 관련 예산이 잡혀 있지 않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사진=김세구 기자 k39@]


◆ 반성과 각성 담은 '고고학 백년사'…"체계적인 학술발굴 절실"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는 지난 10월 한국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8억원(현재까지 총 35억원 이상)을 추가로 문화재청에 기부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LG전자, 에쓰오일 등도 문화재 후원에 적극적이고, 미르치과네트워크 같은 경우는 매년 5000만 원씩을 재단에 직접 후원하고 있다. 지 이사장은 "매우 고마운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워싱턴 D.C.의 대한제국공사관(문화재청이 2012년 350만 달러에 구입) 리모델링에도 LG하우시스 등이 도움을 줬다"며 "국가가 문화의 전반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민간, 특히 대기업 등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9월 '한국 고고학 백년사'(열화당)를 출간했다. 이 책은 1880년부터 1980년까지 시기를 나누고 사진과 도면 등을 첨부하는 등 요즘 보기 드문 '고고학 역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금석학'이 우리 고고학의 단초"라고 전제한 뒤 "1880년 당시 일본의 젊은 첩보장교였던 사코 가게노부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사실상 처음 발견했는데, 그가 비문을 변조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일본이 가야 등 한반도 남부지방을 지배했다)설을 퍼뜨렸다는 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선 논란이 거세게 일었는데 지 이사장에 따르면, 이때가 우리 고고학의 공식 출발점이었다. 이후 한국인들은 일본 고고학계에서 조수 수준에 불과한 활동만 하다가 1945년 광복 후 경주 호우총 발굴을 시작으로 발굴조사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1980년까지로 시기를 끊은 이유는 그 이듬해부터 한 해에 1000여 건 이상의 발굴이 이루어질 정도로 전국 각지가 파헤쳐 졌기 때문"이라며 "발굴엔 학술 발굴과 구제 발굴이 있는데, 요즘은 거의 다 후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 발굴은 학계의 순수한 필요에 의해 조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개발, 공사, 복구 등으로 발굴작업이 수반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는 "유물을 발굴하면 보고서가 나와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서가 없이 발굴된 사례가 숱하게 많았다"며 초급 학예사 시절 참여했던 무령왕릉 발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근 지역에 대한 조사·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등을 두고두고 아쉬워 했다. 1971년 여름 실시된 무령왕릉 발굴은 묘실 개봉부터 유물 수습까지 보존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마무리돼 한국 고고학 역사상 최악의 발굴로 거론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 이사장은 오래 전 국제박물관협회 인사와 경주를 찾았을 때 그로부터 '관람객은 많은데 관람 태도는 방글라데시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끄집어 냈다. "예전엔 먹고살기 힘들어 문화에 미처 신경을 못 썼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요. 경제성장 속도와 문화적 성숙도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국민들 개개인이 문화를 진심으로 대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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