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산지천' 옛 멋이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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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1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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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레 18 코스 시작점 ‘산지천’

 

아주경제 진순현 기자= 시끌벅적한 제주 원도심 한복판을 가로 질러 ‘산지천’이 흐른다.

산지천은 한라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제주시 건입동과 일도1동 번화가를 관통해 산지포구를 통해 제주항 해안으로 북하하는 길이가 약 13.12Km인 하천이다. 한때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동문로, 칠성로, 중앙로, 탑동, 동문시장 등의 젖줄 이었다. 지난 2002년 6월 30년이 된 노후화 건물 14동의 건물과 286가구, 그리고 동문시장과 각종 상가 건물을 허물고 일부를 복원한 후 길이는 474m, 너비는 20여m로 맑은 물이 흐르고 은어·숭어 등 각종 물고기와 새가 뛰노는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최근에는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인 탐라문화광장 조성이 한창이다.
 

 

산지천 일대는 개발붐에 신도시에 밀려 옛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하지만 오히려 제주다운 멋이 살아있다. 동문시장 순대국밥이 옛맛 그대로 이고, 서울의 노량진시장처럼 전복, 소라, 횟감 등 바리바리 싸들고 건네주면 척척 알아서 요리해주는 식당 여사장님의 인심 또한 그대로 이다. 정에 끌리는 곳이다.

섬과 육지를 잇는 뱃길의 중심지인 이곳은 기원전 1세기 경부터 외국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8년 8월 산지천 축항공사를 위한 암반 채취 중 한 용암굴에서 기원전 중국 전한시대의 거울과 칼, 화폐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또한 해상교통로의 관문이었다. 산지천이 있는 건입동을 옛 부터 ‘건들개’라 불렀다. 탐라순력도에는 ‘산지촌(山之村)’ 그 밖의 문헌이나 지도에는 ‘건입포’로 표기돼 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신라시대 제주 삼성(三姓)의 하나인 고을나의 15대손 고후, 고청과 그 아우가 신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성들이 맞이했던 포구로서 ‘건입포터’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이들 삼형제는 성주, 왕자, 도내라는 작위와 푸짐한 배를 싣고 들어 왔는데 그때 머리에 두건을 한 형제들이 들어왔다 해 ‘건들개’라 부르게 됐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홍수의 재앙을 막아주도록 하늘에 기원하던 신앙석. 옛 산지천은 태풍이 불어올 때나 큰 비가 내리면 홍수가 일어나 인면, 가축, 가옥 등이 떠내려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제주 성안 사람들은 이곳 경천암 (擎天岩)에 조천(朝天)이란 조두석(俎豆石)을 세우고 해마다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를 올렸다. 1736년 목사 김정은 이 바위를 지주암(砥柱岩)이라고 명명했다.

옛 제주 섬은 물이 귀했다.

화산 폭발 후 용암이 빠르게 굳어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제주 섬에는 비가 온 뒤 땅속으로 흘러내린 빗물이 바위 속 '숨골' 속에 오랜 세월을 품고서야 다시 땅에서 솟아 나와 생명수로 탄생했다. 그야말로 생명수인 용천수는 옛 제주인에게는 생명의 끈이었다.

산지천에는 은어, 장어 등이 많았으며, 이를 임금님께 진상하기도 했다. 산지천을 이루는 풍부한 용천수는 산짓물, 가락쿳물, 노릿물, 금산물, 지장깍물 등으로 예로부터 용천수를 중심으로 설촌됐다.

1565년(명종 20) 제주읍성을 동쪽으로 넓히면서 산지천을 성내로 끌어 들였다. 왜구에 대항해 성을 지키기 위해 물을 확보하려는 당시 제주 목사의 용단이었다.

山浦漁帆(산포어범) 산지포의 고기잡이 배

隱映垂楊繞壁汀(은영수영요벽정) 수양버들은 은근히 푸른 물가를 에워둘렀고
夕陽多處泛漁舲(석양다처범어령) 저물녘에 여기저기 고지잡이 배 떠 있네
齊唱蘆花乘水入(제창로화승수입) 소리맞춰 ‘노화곡’ 부르며 물결따라 들어와서
隔橋相問酒旗靑(격교상문주기청) 다리 너머 어느 주막 찾을까 서로 묻고 있네

추사의 제자로 제주의 대표적인 절경인 영주십경(瀛州十景)을 처음으로 지어 붙인 매계 이한진(1823~1881)는 한시이다.

매계 선생의 한시 “다리 너머 어느 주막 찾을까”에서 처럼 산지포는 옛 섬과 육지를 잇는 제주의 관문인 뱃길의 중심지로 제주 최고의 상권이었다.
 

▲의녀 김만덕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이 되고 있는 의녀 김만덕(1739~1812)의 객주터가 위치해 있던 곳도 산지포였다. 객주집을 시작으로 천냥부자가 된 만덕은 조선 영조때 흉년으로 인한 사태가 심각하자 나라에서는 서둘러 구휼미를 보냈으나 풍랑을 만나 배들이 모두 전복돼 구훌미를 잃게 되자 평생모은 재산을 내놓아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어 죽을 쑤어서 굶주리는 백성을 먹여 살렸다.

만덕이 선행이 전국에 알려지자 임금인 정조 대왕은 만덕에게 큰상을 내리고 소원을 물었다. 만덕은 상이나 지위를 원치 않고, 임금이 사는 대궐과 금강산을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 정조로부터 ‘의녀반수’라는 직함을 받고 만덕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임금을 직접 만나는 제주여인이 됐다. 한편 김만덕객주터는 최근 옛 모습 그대로 재현돼 마을주민들에 의해 주막집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객주터 바로 위 남쪽에는 복신미륵(동자석)이 떡 하니 서 있다.

이 건입동 복신미륵은 제주성 동쪽에 있는 자복이라 하여 동자복이라 불렀다.
현존하는 동자복은 입상으로, 신장이 286㎝, 얼굴이 161㎝이다. 눈 위에는 눈썹을, 앞가슴에는 맞잡은 팔의 소맷자락을 표현했다. 동자복이 서 있는 곳은 미륵밭이라고 부른다. 복신미륵은 행운과 복을 가져다주는 미륵보살을 뜻하는 말이다.

이 밖의 제주 최초의 제빙공장 터, 거울공장 터, 발전소 터, 1920년대 목욕탕 터, 이 욕탕은 처음 설치된 발전기에서 순환되는 열수를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지사에서 제주항 근처에 운영했던 주정공장 터, 일본군 진지·철수 터, 담배·성냥 배급 터, 소라 통조림 공장 터, 고마장(중앙에서 오는 '사객'이나 '목사'와 '현감'같은 벼슬아치들이 행차에 필요한 말을 기르던 곳) 등 근대 제주 역사의 중요한 사료가 남아 있는 곳이다.
 

 

올레 18 코스 시작점 ‘산지천’

올레 18코스는 동문로터리 산지천 마당에서 시작해 사라봉정상, 화북포구, 삼양검은모래해변, 닭모루, 신촌포구, 연북정을 지나 조천만세동산까지 18.2km(6~7시간)에 이르는 코스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산지천을 따라 걸음을 뗀 후 동쪽으로 사라봉 길목인 '고으니모르'(화북과 경계지점) 동산을 지나 사라봉에 오른다. 사라봉은 오르기 어렵지 않은 높이의 오름이지만 제주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특히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예로부터 ‘사봉낙조’라고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혔다.

사라봉에서 내려와 별도봉을 끼고 돌아 바다가 지척인 화북동에 닿으면 4.3 당시 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진 역사의 비극 현장인 곤을동 마을 터를 만나게 된다. 

삼양해수욕장 검은모래해변에서 모래 찜질을 하고 불탑사에 오른다. 불탑사는 구전에 따르면 고려 충렬왕 26년에 원나라의 황실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가 된 기씨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기황후가 태자가 없어 고민이던 원나라 황제 순제를 위해 이 곳에 오층석탑을 건립하고 불공을 드린 후 태자를 얻었다고 한다. 이 곳은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불탑사 경내에는 원당사의 오층석탑이 보물 제1187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제주도에 있는 유일한 불탑이다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해안선을 삥 둘러쳐 쌓은 석성인 ‘환해장성’을 지나 ‘닭머루’를 지난다. 닭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정을 떠나온 관리들이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그리움과 함께 나라를 걱정하며 조석으로 절을 올리던 장소가 ‘연북정’이다. 또한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보낸 서복 일행이 제주도에 처음 도착한 금당포도 이곳이다. 서복일행은 이곳에서 제주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하늘에 감사의 제를 올려 금당포가 조천이 되었다는 지명유래다.

올레 18코스 종점인 조천만세동산은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 신촌, 조천, 함덕 주민 500여 명과 그 당시 서울 휘문고등학교 재학생들의 주도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사진=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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