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기업 문화재단, ‘동정’에 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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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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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화부 정등용 기자]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동정(同情)이란 말 그대로 정이 같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단종 때 지어진 ‘동정곡'(同情哭)은 폐위되고 관노(官奴) 신세로 전락했던 정순왕후가 억울함을 못 이겨 청령포를 향해 곡을 하면 이웃 아낙들이 함께 불렀던 곡이다.

한때 왕비였던 정순왕후의 처지가 관노가 된 후에는 여느 아낙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정이 같지 않았기 때문에 ‘동정곡’은 큰 위로가 못 됐다. 정순왕후에게는 오히려 동정받고 있다는 것만 상기시켜 상실감만 더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문화재단’이란 이름을 따로 걸고 시혜와 자선의 차원에서 별도 운영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금호문화재단 롯데문화재단과같은 개별 문화재단 외에도 최근에는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16개 대기업이 489억원을 출연해 문화재단 ‘미르’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기업들의 문화재단 운영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문화재단 설립의 본래 취지에 맞게 문화 소외계층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에 문화 향유의 기회가 돌아가지 않고, 공연 수익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월에는 김의준 롯데콘서트홀 전 대표가 개관 5개월여를 앞두고 돌연 사임했다. 김 전 대표는 그동안 의욕적으로 대표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당시 그의 사퇴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월 롯데콘서트홀 내부를 공개하는 행사에서 취재진과 대화 도중 콘서트홀 운영 방향에 롯데측과 이견이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그 이후 롯데측은 운영적자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김 전 대표는 이윤추구보다 문화사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맞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 축적을 통한 수익 창출이 대기업의 본질이라지만, 문화재단 운영만큼은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의 순수한 자세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문화 예술인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한다. 문화 소외계층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문화 사업은 그들의 상실감만 키우는 동정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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