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⓼ ‘최저가 입찰제’ 과연 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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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6-0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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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어가는 철도차량 (중)

현대로템이 지난 2007년 수주에 성공해 2011년 납품을 완료한 뉴질랜드 웰링턴시 정부 지하철 마탕이(바람) 전동차[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철도차량 노후화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운영사와 생산업체간 시각 및 입장 차이는 크다.

철도차량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요구되는 국가기간 산업이다. 철도차량은 승용차나 버스, 항공기, 선박 등 다른 수송기관과 달리 철도 선로 위해서만 주행하가기 때문에 완성 차량 업체나 부품 업체 모두 철도라는 사회간접자본(SOC)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철도차량 및 부품 산업은 주문생산과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것이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수요를 예측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과 입찰에 의해시장이 형성된다. 대량 생산을 진행할 수 없으니 완성차량이나 부품 모두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즉, 대당 또는 개당 생산단가가 타 산업에 비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도차량을 구매하는 대상은 정부 산하 국영기관이다. 이들의 구매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혈세를 사용하니, 당연히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다보니, 내 철도 운영기관들은 전동차와 객차 구매방식으로 ‘최저가 입찰제’를 고수하고 있다. 최저가 입찰제는 구매 당사자가 사업 입찰공고를 내면서 총 사업비를 공개하면, 응찰 업체들이 이를 바탕으로 전체 사업진행 예산을 책정해 응찰하고, 구매 당사자는 이들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안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10년 간 전동차 가격 인상률 13% 불과
최저가 입찰제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판매자인 응찰업체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경쟁사 대비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도 회사가 원하는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부품 가격을 그만큼 낮춰야 한다. 완제품의 성능을 구매자가 원하는 항목의 수준만 가까스로 맞추면서 나머지는 가격에 맞춰 제작할 수밖에 없으니, 최신 기술이 접목된 부품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진다.

기업들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제품의 수명을 짧게 해 생산단가를 낮추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구매자는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새로운 부품보다는 상용화를 통해 성능이 검증된 부품을 사용해 주길 원하는데, 이 틈을 외국기업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전동차의 국산화 비율 향상 및 신기술 개발을 막는 원인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와 해외의 전동차 가격을 비교했을 때 사양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국내 시행청 예산 기준 수주에 따른 가격 인상의 한계로 유사한 성능의 해외 전동차 대비 국내 전동차 가격은 70%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 대비 고임금·고물가 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동차 가격이 다소 낮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04년 현대로템이 서울메트로에 납품한 2호선 전동차 1량당 가격은 9억3000만원 가량 이었으며, 2014년 2호선 신규 전동차 1량당 가격은 10억5000만원이었다. 10년 사이 전동차 가격 인상률은 13%에 불과했다.

현대로템은 현재 200여 개 주요 1차 부품업체를 비롯해 총 1800여개 부품업체들과 협력해 철도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부품사 대부분이 종업원 50명 미만의 중소 영세업체다. 한국철도차량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관련 부품업체의 연평균 매출액은 13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자료: 업계 종합


◆‘종합평가제’ 대상에 철도차량 포함돼야
최저가 입찰제가 100%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발주금액을 놓고 업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입찰할 수밖에 없고, 이는 부실 공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새로 개통되는 철도노선 마다 초기에 대량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이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도 최저가 입찰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산업은 이러한 제도개선 정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기획재정부는 제15차 재정전략협의회에서 공공조달시장 입찰방식을 최저가에서 최적가치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긴 입찰·계약비리 방지 및 계약효율성 향상 방안을 발표했다. 최저가 입찰제로 인해 발생하는 부실공사를 막겠다는 게 기재부의 취지다. 그런데, 적용대상은 300억원 이상의 공사에 해당되는 데다가 제조물품에 속하는 철도차량은 입찰제도 변경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대부분 최저가 입찰제도를 지양하고 종합평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지난 2013년 인도에서 수주한 1조원 규모의 텔리메트로 3기 전동차, 2009년 그리스 아테네 전동차 프로젝트는 가격 부문에서 각각 2위, 3위에 그쳤지만 기술력, 운영실적 등을 종합한 평가에서 우위를 나타낸 덕분에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2011~2013년 기간 동안 현대로템이 수주한 국내 프로젝트의 영업이익률은 3.5%인 반면, 같은 기간 해외 프로젝트(미국 4개 프로젝트 제외)의 영업이익률을 15.6%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종합평가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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