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⓹ ‘1국 1업체’ 추세 역행···시장진입 장벽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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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6-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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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에 문호 활짝 열어준 한국 철도산업 (중)

현대로템이 제작해 공급한 신분당선 노선 열차[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철도제조산업은 수요자가 국가나 지방정부로 그 시장의 규모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사회적 목적 실현에 필요한 범위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철도제조산업의 자국시장 규모가 협소하기 때문에 이를 정책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각 국가들이 공정무역(Fair Trade)를 주장하면서 개방과 경쟁을 가치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정부조달협정(GPA) 체계에서도 철도산업은 예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특징 때문인데, 자국 발주물량이 부족한 대다수 국가는 산업 보호 차원에서 시장 개방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철도 선진국들은 1국가 1업체 체제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외국 업체들에게 자국 부품업체 사용을 강제하는 ‘현지화 기준’과 ‘엄격한 기술 및 환경기준’, ‘기술 제공 및 이전’ 등과 같은 규제를 설치해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진출 제약조건이지만 상대국 입장에서는 자국업체 육성책인 셈이다.

◆현지화·기술요구·환경기준 통해 진입 차단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은 계약가중 재료비의 60%(최근 100% 조정)를 미국산 부품으로 활용해야 하며, 최종 조립은 미국내 현지 조립 제작해야 한다. 중국은 총 계약가의 8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 자국 부품으로 사용해야 하며, 중국측 기업과 공동으로 응찰해야 한다.

일본은 자국 철도기업인 JR과 공동 설계 원칙을 적용하고, 동시에 민관 연합 카르텔을 형성해 수의계약 체제를 구축해 해외업체들의 입찰참여를 원천 차단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계약가 중 재료비의 30%는 자국 부품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현지제작 비중이 60% 이상이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개정된 세계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WTO GPA)을 통해 철도차량 조달을 신규 양허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철도 선진국 답게 유럽표준규격 및 엄격한 기술·환경 규정 등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철도차량의 주요 수출국가중 하나인 터키도 계약가 중 재료비의 25~35%는 자국 부품 사용을 의무화하고 현지 자체제작 비중은 51%를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철도 수요 국가들의 현지화 정책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저성장 기조가 완연해 지면서 기존 몇몇 국가에서 이뤄진 자국산업 보호 정책(현지화 요구 등)이 다른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중국, 브라질, 터키, 인도, 이집트 외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철도차량 조달과 관련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규정 제정에 관심을 나타내는 등 사업자 선정에 필수적인 평가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지화 요구는 자국 부품 적용, 기존 차량과의 호환성 및 품질확보를 위한 제3국의 특정 부품사 제품 적용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 철도차량 기업이 해외진출을 해도 국산 부품 적용이 제한돼 국내 부품업체의 해외사업 진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료=업계 종합]


◆무분별한 해외 시스템 도입, 호환 안 돼
상황이 이런데, 한국은 WTO GPA를 통해 철도차량 조달 시장을 사실상 완전 개방했다. 개방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다른 국가들처럼 현지화, 현지생산 등과 같은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재료비 사용 비율 책정 및 현지 제작을 요구하는 이유는 세금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니 만큼 자국 산업이 일정 부분 수익을 거둬들이고, 기술을 이전받기 위함이다. 한국은 이러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특히, 각국은 철도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지방정부별로 추진되는 철도사업에 있어 시스템과 기술 규격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철도차량의 모델과 부품들을 통일화 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않다.

서울특별시과 부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등 광역시의 지하철 철도차량 모델이 제각각인 것처럼, 한국은 시대적 흐름과 환경에 따라 다른 사양의 철도차량이 생산되어 노선별 또는 시행처(사) 별로 차량 외관과 부품이 다르게 적용되어 제작,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철도 시스템은 세계 철도차량의 전시장 같다”는 철도업계 관계자들의 말 속에는 눈 앞만 내다보는 철도행정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더 큰 문제는 전동차 부문에서 벌어진 오류가 트램, 경전철 분야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최소 70여개 국내 도시에서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램과 경전철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입하고자 하는 철도 시스템과 차량 모델이 모두 제각각이다.

타 지방간 시스템·차량간 호환이 필요없는 데다가 잠재수요가 큰 한국시장을 글로벌 기업들이 외면할리 없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진입장벽이 사실상 없는 한국은 기회의 시장이라고 여긴 것이다. 철도산업 관계자들이 한국이 해외 철도차량업체들의 각축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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