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후계자' 결정 지은 사카린 밀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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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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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그룹 제공, 아주경제DB]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이 아버지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눈 밖에 난 결정적인 사건은 1967년 있었던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이 일이 삼성의 후계자가 이맹희 명예회장에서 현재의 이건희 회장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일본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하려 했다.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농촌인구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일종의 숙원사업이었다.

당시 일본 미쯔이 물산과의 차관교섭과 도입과정, 조건협상은 이병철이 직접 담당했고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는 것으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제일비료는 사카린 원료를 비롯해 당시 수입금지품목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대량으로 밀수한 뒤 이것을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냈다.

1966년 5월 24일 부산세관을 통해 사카린 2259포대(약 55t)를 밀수한 후 판매하려다 정부 당국에 적발됐다. 밀수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고, 그해 9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검에 전면수사를 지시했다.

삼성은 이 일로 회사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하고, 24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됐고 이병철 당시 회장도 퇴진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맹희 명예회장은 1968년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주요 직위에 올라 공식 후계자로서 행보를 내디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밀수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했다는 의심을 받아 부자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사카린 밀수와 탈세, 외화도피 등에 이병철 창업주가 직접 개입됐음을 고발하는 내용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다.

이맹희 회장은 그룹 내 지위를 상실한 채 야인으로 떠돌아야 했다. 그의 자리는 삼남 이건희 회장이 대신했다. 그 이후 이맹희 회장은 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삼성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는 약 40년을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은둔하며 지냈다. 1993년 개인 자금으로 대구에 제일비료라는 중소기업을 세워 비료 개발에 들어갔으나 2003년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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