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평행이론: 고르비와 김정은의 몰락

입력 : 2014-01-17 15:56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 국제관계학 박사
 
1992년 외무성 산하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을 방문한 한 미국대학 총장이 러시아 대학생들에게 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소련 전문가여서 80년대에도 자주 구소련을 방문하였는데 1989년 겪은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미국대학 총장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대학 식당에서 줄을 서 한 50분 정도 기다렸는데, 갑자기 주방 아줌마가 큰 소리로 “양배추가 떨어져 더 이상 스프를 못 만드니 줄 선 사람들은 그만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이때 대부분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한 사람이 자조적으로 소리를 쳤다.
“에따 러시야(이게 러시아다)!”
 
그 때 미국 총장의 머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에따 러시야!
러시아는 예전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고, 앞으로 오랫동안 가난할 것이다. 40년간 냉전체제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의 소비예트(Soviet) 개념은 허구였다. 러시아는 단 한 번도 국민이 잘 산 적이 없었다. 국민이 부유하지 않고 강대국일 수는 없다.>
미 대학 총장의 연설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러시아를 비하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러시아학생들은 묵묵히 듣기만 했었다.
 
 
1985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한 이후 6년 뒤인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 9월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정은은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인 고르바초프?김정은과 구소련 북한 체제의 유사성은 결국 둘 다 동일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평행이론이란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인데 바로 고르바초프와 김정은이 해당될 것 같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전의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을 최초로 추진하였다. 1981년 집권한 美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소련을 압박하였고, 소련은 더 이상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소련 경제는 파탄 났고, 40년간 지탱해왔던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적으로도 소련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서구유럽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동독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이 소련을 버리고 서구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하였다. 소련국민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시장경제를 접하였고, 돈과 사적재산을 소유하기 시작하였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 역사상 최초로 영부인 라이사 여사를 동반하여 외국을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강대국 소연방을 해체한’ 매국노로 취급당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권력기반은 상당히 취약하여 1991년 8월 보수파와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쿠테타는 3일만에 진압되었지만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같은 해 12월 26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권력은 넘겨주고 소련은 공중분해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에서 유학하였다. 서구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마식령스키장을 개발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대북정책의 일관성으로 김 위원장은 점차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는 공갈?협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와의 성공적인 정상외교로 북한을 확실히 고립시켜 나가고 있다. 이번 ‘장성택 사태’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대북정책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주민들은 이미 230만대의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고, 무너진 사회주의 배급체제를 대체하는 시장이 이미 북한전반에 퍼져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신흥부자들이 돈과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하였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식석상에 북한 최초로 부인 리설주를 동행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과 어울리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은 30세의 어린 김정은을 ‘한심한 과대망상 환자’ 이상이하로 보지 않는다.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이번 ‘장성택 사태’로 사실상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왕조의 붕괴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로부터 왕조와 제국의 붕괴에는 공통적인 몇 가지 조건들이 교집합처럼 얽혀 있다. 어린 왕자의 등극과 그를 둘러싼 섭정들의 세력 다툼, 이어지는 숙청과 수렴청정 역시 빠질 수 없다. 혼란한 정치 상황과 과도한 세금에 백성들의 경제난이 심화되고, 그 틈을 타 외세의 간섭이 시작된다. 붕괴를 눈앞에 둔 지도층의 통제 강화로 사태는 더 악화된다. 이러한 ‘몰락의 징조’ 교집합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 부분 겹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손발이 잘린 군부의 꼭두각시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그 어떤 형태의 권력 공고화 시도가 있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1991년 소련체제에서 시도된 ‘8월 쿠데타’는 러시아 국민들의 격한 저항으로 단 60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미 자본주의의 단맛에 젖어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러시아 국민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장성택 사태’ 이후 북한주민 경제활동을 통제하거나 사적 재산을 강탈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북한주민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좌절될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연구기관 랜드연구소는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준비(Preparing for the Possibility of a North Korean Collapse)’라는 보고서에서 동독처럼 북한도 “갑작스레 경고 없이” 붕괴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미 북한은 ‘장성택 사태’라는 경고와 더불어 붕괴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붕괴에 철저히 대비하여 통일된 국가를 이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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