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외로움 정책의 다음 과제로 '관계 회복'을 꺼내 들었다. 24시간 상담전화로 시민 목소리를 듣고 마음편의점으로 머물 곳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예고한 '외로움 없는 서울 2.0(외없서 2.0)'이 상담·복지 중심이던 대응을 시정 전반으로 넓히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은 최근 충북 충주시청 특강에서 "외없서 2.0을 준비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체육활동과 정원 가꾸기, 반려식물·반려동물 등을 고립·은둔 해소 수단으로 언급하며 체육·정원·도시공간 디자인 등 여러 실·국·본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로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외로움을 복지 부서의 상담과 지원만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구상이다. 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털어놓더라도 다시 돌아간 일상에 만날 사람과 갈 곳이 없다면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외없서 2.0의 관건은 상담 이후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있다.
이 같은 방향을 보여주는 거점이 지난달 23일 성동구에 문을 연 '서울잇다플레이스'다. 외로움 예방부터 고립·은둔 시민의 일상 회복, 사회적 관계 형성까지 한곳에서 지원하는 광역 거점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외로움안녕120' 콜센터와 대면 상담실, 청년마음편의점, 치유·교류 프로그램 공간, 공연·문화공간 등을 모았다.
서울시가 2024년부터 추진해 온 외로움 정책은 상당한 이용 수요를 확인했다. 2025년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외로움안녕120의 누적 상담은 8만여 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서울마음편의점에는 16만4000여 명이 다녀갔다. 현재 19개소인 마음편의점은 연말까지 25개 자치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다만 상담 건수와 방문 인원이 곧 외로움 해소의 성과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서비스를 이용했는지와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상담 뒤 집 밖으로 나오게 됐는지, 다시 찾을 장소와 만날 사람이 생겼는지, 어렵게 회복한 관계가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오 시장도 서울잇다플레이스 개관식에서 이 지점을 짚었다. 그는 "외로움 없는 서울 정책의 성과는 수치로도 일부 가늠할 수 있지만 어떤 장소에 반복적으로 얼마나 마음 편안하게 갈 수 있는지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동네 공원·마음편의점 등을 "아무 부담 없이 와서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사회적 인프라'와 '제3의 장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집과 일터를 벗어나 특별한 목적이나 의무 없이 머물 수 있고,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사람과 연결되는 공간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이 발언은 외없서 2.0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시민에게 상담 창구를 알려주는 데서 나아가 공원과 정원, 체육시설, 문화공간 등 일상의 장소를 관계 형성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함께 운동하고 식물을 가꾸며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이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잇다플레이스의 프로그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청년에게는 상담·교류·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중장년에게는 정서 치유와 관계 형성, 재고립·재은둔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고립·은둔 당사자 가족에게는 상담과 교육, 자조모임 등을 지원한다. 서울숲을 활용한 '정원 처방', 문화·예술 프로그램, 소셜다이닝 등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과제는 프로그램 참여를 지속적인 관계로 연결하는 일이다. 한 차례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다음 주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은 다르다. 시민이 본인 속도에 맞춰 참여하고, 잠시 발길을 끊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관계 회복을 위한 기반이 된다. 교류를 권하는 과정에서 참여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운영도 중요하다.
여러 부서가 함께하는 사업으로 확대되는 만큼 연결 방식도 구체화해야 한다. 체육·정원·문화 부서가 각각 프로그램을 늘리는 수준에 머물면 시민은 필요한 서비스를 다시 찾아다녀야 한다. 상담에서 확인한 필요를 지역의 활동과 연결하고, 참여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도록 돕는 체계가 갖춰져야 공동 프로젝트의 의미가 살아난다.
외없서 2.0의 세부 사업과 예산, 추진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확인된 것은 복지 영역을 넘어 서울시 여러 부서와 도시공간을 외로움 예방에 연결하겠다는 방향이다. 기존 시설과 프로그램을 어떻게 엮을지, 고립·은둔 시민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을 마련할지가 발표 때 확인해야 할 핵심이다.
서울시 외로움 정책은 상담전화와 마음편의점을 거쳐 관계 회복을 지원하는 단계로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다음 성과는 상담을 몇 건 했고 공간에 몇 명이 다녀갔는지에만 머물 수 없다. 도움을 요청한 시민에게 다시 갈 곳과 만날 사람이 생겼는지, 그 관계가 일상에 남았는지가 외없서 2.0의 실효성을 가를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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