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는 지난해 12월 현 정부가 야심 차게 출범시킨 프로젝트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차 등 첨단산업 영역에서 글로벌 패권전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일 정책펀드로는 역대 최대인 150조원을 조성해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출범 10개월이 지난 국민성장펀드는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산업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승인 금액 대비 집행률은 너무 낮았고, 투자자금 배분에 있어서도 특정 영역에 편중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25%에 그친 자금 집행률
국민성장펀드는 정부가 미래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마련한 15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 프로그램이다. 5년간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 자금 75조원으로 조성된다. 첨단전략산업기금과 재정이 위험을 먼저 부담해 민간 자금의 참여를 유도하고,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이차전지 등 전략산업과 관련 기업·인프라 등 생태계 전반에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직간접 투자, 인프라 투융자, 저리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다.정부는 연도별 펀드 조성 규모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지만 30조원 이상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한민수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9월 말까지 국민참여성장펀드와 K-콘텐츠 펀드를 제외한 국민성장펀드 승인금액은 18조원으로 남은 기간 30조원이라는 목표 달성은 가능할 전망이다.
대기업 60%, 수도권 55% 쏠림
집행 속도와 함께 배분 방식도 문제다. 출범 초기 국민성장펀드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중견·중소기업과 지역 산업 생태계까지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10개월간 승인·집행 내역을 보면 펀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정 자산으로 평가받는 대기업과 수도권에 쏠려 있었다. 지난 9월 말 기준 대기업 승인액은 10조9370억원으로 전체 중 60.6%를 차지했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승인액 비중은 각각 27.5%, 11.9%였다. 승인 건수는 총 35건으로 대기업 13건, 중견기업 17건, 중소기업 5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승인 건수 중 37.1%에 해당하는 대기업 13건이 전체 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을 가져간 셈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에 10조원이 승인돼 전체 중 55.4%를 차지했다. 호남권이 5조2000억원(28.7%)으로 뒤를 이었으며 영남권 1조4000억원(7.9%), 충청권 1조4000억원(7.5%), 강원·제주 1000억원(0.4%) 순이었다.
이 같은 자금 배분에는 대규모 전략산업 프로젝트의 특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필요한 자금 규모가 큰 데다 국민 자금이 투입되는 정책펀드인 만큼 투자 대상의 사업 규모와 자금 수요, 수익성과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우량기업이 많은 수도권,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익률과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자금 배분 과정에서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지만 점검 필요"
하지만 국민성장펀드가 대기업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자금을 배분하면서 정책금융으로서 차별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책자금이라면 민간이 위험 부담 때문에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초기 기술기업이나 공급망 기업 등에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리스크 때문에 자금을 못 넣는다면 당초 취지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지역별 승인 실적 차이가 특정 지역에 대한 지원 편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호남 지역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반영되면서 승인 규모가 커졌으며 부산·경남 지역에서도 미래 모빌리티 등 유망산업을 중심으로 향후 승인 사업이 나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비해 중소·중견기업 지원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 역시 간접투자 방식의 펀드 조성이 본격화되면 관련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고 산업은행 측은 말했다.
물론 현시점의 승인·집행 실적만으로 국민성장펀드의 성과나 투자 방향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펀드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고, 시장 충격도 있었던 만큼 현시점에서 성과나 투자 방향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며 "실질적인 효과를 판단하려면 최소한 운용기간을 충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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