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나라살림이 820조원을 넘는다. 올해보다 12.8% 늘어난 규모로, 총지출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가파른 증가다. 종전 기록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싸우던 2009년의 10.6%였다. 위기도 아닌 호황기에 두 자릿수로 지출을 늘린 예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수는 더 크게 는다. 국세는 한 해에 49%, 194조원이 더 들어온다. 국회는 물어야 한다. 이 돈을 어디에 썼고, 무엇이 남았는가를.
급증한 세수의 용처에 대한 정부의 답은 미래 투자다. 여력이 있을 때 인공지능과 인재에 돈을 넣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취지는 옳지만 방식이 문제다. 한 해 반짝 호황으로 번 돈으로 해마다 나가야 할 지출을 늘린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무리다.
그렇게 쓰고 나니 남은 것이 없다. 세금이 194조원 늘었는데 관리재정수지는 여전히 3조원 적자다. 지출을 세수의 정점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2028년부터 총수입 증가율은 4.5%, 3.4%, 3.4%로 주저앉는데, 지출은 9%, 7%, 5%로 늘려 놓았다. 적자는 48조, 83조, 101조원으로 다시 커진다. 늘어난 지출의 상당수가 아동기본수당, 청년적금 보편화, 지방국립대 무상등록금처럼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항목이다.
거시정책의 균형도 무너졌다. 올해 경상성장률은 12%대로 30년 만의 최고치이고, 물가 압력에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렸다. 경기가 뜨거울 때 재정이 속도를 줄이는 기본 원칙을 정부는 거꾸로 갔다. 중앙은행이 브레이크를 밟는데 재정이 가속 페달을 밟으면 금리는 더 올라야 하고, 그 청구서는 대출을 안고 사는 가계와 기업이 받는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나라 빚이다. 세수가 49% 늘어도 국가채무는 106조원 늘어 1520조원이 된다. 적자가 3조원인데 빚이 106조원 느는 이유는 하나,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국채 발행 한도를 미리 승인받아 이 기금에 104조원의 여유자금을 쌓는다. 정부는 이것을 저축이라 부르지만, 왼손으로 빌려 오른손에 쥐고 있는 돈은 저축이 아니다. 곳간에 넣어 둔 104조원에 붙는 이자만 한 해 4조원이다. 이 이자를 주식과 채권 투자로 벌겠다는 것이 정부의 답인데, 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인허가권을 쥔 정부가 빚으로 수익을 좇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칭찬받을 수 없다. 칠레도 노르웨이도 안정화기금은 실제 흑자로 적립한다. 빚을 늘려가며 적립하는 나라는 우리가 처음이다.
이자는 이미 크다. 내년 국채 이자만 42조8000억원으로 2020년의 두 배 반이고, 2030년에는 53조원을 넘는다. 국방비 73조원의 6할이고 R&D 예산 39조원보다 크다. 빚은 늘고 금리는 오르니, 이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크기로 자라 결국 복지와 국방과 교육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건전성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국가채무비율이 51.6%에서 48.3%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분모가 서로 다른 전망치이기 때문이다. 올해 비율은 연초에 낮은 성장률로 전망한 2026년 명목 GDP로, 내년 비율은 반도체 호황이 반영된 2027년 명목 GDP로 계산했다. 지금 전망치로 다시 계산하면 올해 비율은 46.9%로 이미 크게 낮아지고, 내년은 48.3%로 오히려 오른다. 기금에 쌓아 둔 104조원을 빼면 45.0%다. 정직하지 않은 숫자 위에 세운 건전성은 건전성이 아니다.
미래기금의 속을 열어 보면 문제는 더 뚜렷하다. 기금 수입 162조원 가운데 사업에 쓰는 돈은 45조원이다. 미래를 위한 자본을 쌓는 사업은 그중 42%다. 나머지는 현금과 바우처, 지방 일반재원, 공기업 출자, 기관 운영비다. 아동기본수당 2조9000억원은 사회적 논의도 재원 대책도 없이 확대해 기금에 넣었다. 호황이 끝나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그때 이 돈은 일반회계로 돌아와 의무지출이 된다. 청년문화예술패스는 361억원에서 7925억원으로 22배가 되었다. 기존 일반회계 사업 61개, 18조원도 이름만 바꿔 기금으로 옮겨 왔다. 정작 고령화 돌봄이나 청년의 AI 역량 전환처럼 미래에 정말 필요한 사업은 거의 없다.
절차도 건너뛰었다. 국민생활편의 복합센터는 곳당 200억원씩 2년에 3조원을 쓰는데,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았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지방과 교육으로 갈 돈 39조6000억원도 산식을 고쳐 중앙의 기금으로 끌어왔다. 지방이 스스로 쓰던 돈이 중앙이 배정하는 돈이 되었다.
규칙은 없다. 기금법 18개 조문 어디에도 적립 상한이 없고, 인출 요건이 없고, 복원 의무가 없고, 일몰이 없다. 기금 돈을 일반회계로 빼 쓸 때도 국회 심의 없이 사후 보고로 끝난다. 기금을 심의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은 기획예산처 장관이다. 돈을 넣는 사람, 꺼내는 사람, 감독하는 사람이 같다. 이것은 기금이 아니라 국회 심의 바깥에 세운 제2의 예산이며, 미리 인출해 둔 마이너스 통장이다. 재원은 미래세대가 갚을 빚이니, 이 기금은 미래대응기금이 아니라 미래부채기금이고 미래세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기금이다.
정부가 선택할 만한 다른 더 좋은 길이 있었다. 총지출 증가율을 7.8%로 잡았다면 관리재정수지는 33조원 흑자로, 2007년 이후 20년 만의 흑자였다. 7.8%도 충분히 확장적인 증가율이다. 그 흑자로 두 해 동안 빚을 갚고, 그러고도 반도체 세수가 남으면 그때 기금을 쌓으면 된다. 저축은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이지 빌린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쌓는 기금, 그것이 흑자 위에 세운 미래기금이며, 그때 비로소 이 기금은 미래세대에게 짐이 아니라 유산이 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따져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적자가 사라진 해에 왜 적자 때와 같은 빚을 내는가. 그 빚으로 만든 기금을 누가, 어떤 규칙으로 쓰는가. 빚으로 저축하는 일을 멈추게 하고, 기금의 규칙을 법에 적고, 기금의 관리 주체를 예산처 장관과 관변 인사가 아닌 민간 전문가로 구성하며, 미래와 무관한 사업을 걷어내야 한다. 국회가 이를 반드시 짚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예산은 정부가 짜지만 빚은 국민이 갚고, 국회는 그 국민을 대신해 빚을 승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심의에서 바로잡지 못하면 늘려놓은 지출과 빚은 다음 국회, 다음 정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어간다.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세무전문대학원 교수▲한국재정학회 회장 ▲ 전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예산정책처 조세분석심의관▲전 지방규제혁신위원회,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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