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베어의 지옥? 아니 이것은 분명히 니키의 지옥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매사 극도로 소심한 남자 베어(마이클 존스턴)는 오랫동안 니키(인디 네버레티)를 짝사랑하는 중이지만 상처받기 싫어 곧죽어도 고백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답답한 나머지 베어는 어쩌다 구입한 ‘원 위시 윌로우’ 장난감으로 무심코 소원을 빌어버린다. “니키가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게 해줘”

이 한마디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원칙이 되었고 이렇게 니키는 자아를 박탈당하고 나 자신보다 베어를 더 사랑해야 하는 집착의 현신으로 재탄생되었다.

영화 ‘옵세션’의 설정은 오직 한가지다. ‘원 위시 윌로우’, 1인당 한가지 소원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 두 개의 소원 안되고, 소원은 취소·변경이 안되며, 발설된 소원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뤄진다. 이 한 가지의 굳건한 설정은 ‘옵세션’을 굉장히 신선한 공포영화로 만들어준다.
 
영화 옵세션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옵세션'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집착을 다룬 영화가 생각해보면 꽤 많다. 대표적으로 ‘미저리’가 떠오르고 이어 ‘위험한 정사’ 같은 치정극도 떠오른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오펀: 천사의 비밀’이나 ‘요람을 흔드는 손’ 같은 영화도 원하는 바에 집착한 나머지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극한 상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주인공의 의지와 욕망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비록 그 욕망이 비정상적이며 탈사회적인 것일지언정 주인공의 온전한 자아가 적극적으로 나서 벌이는 일이다.
 
영화 ‘옵세션’의 니키는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원 위시 윌로우’의 절차대로 그는 자아가 배제됐고, 그 어떤 괴물같은 또다른 니키에 장악된 채 속절없이 베어만을 사랑하는 지옥에 갇혀버린다.
 
영화 옵세션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사진=IMDB]

원래 자아가 봉인당한 채 느닷없이 들어앉은 괴물같은 자아로 살게 된 니키는 그가 벌이는 대부분의 행동이 예측 불가하다. 베어가 키웠던 죽은 고양이 고기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던가, 자고 있는 베어의 모습을 밤새 숨어서 지켜보는 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출근하는 베어를 배웅해준 그 자리에서 그가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도 안갔는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쓴 채 기다리기도 하고, 심지어 자해도 서슴지 않는다.
 
니키의 이 예측불가능성은 ‘옵세션’을 가장 공포스럽게 만드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다. 급변하는 표정, 급변하는 말투, 기괴한 행동 등 니키의 거의 모든 행위 자체가 공포가 된다.
 
인간 감정의 진폭이 1에서 100이라면 1부터 100까지 0.1초만에 왔다갔다하는 니키의 돌발행동이 관객을 공포로 압도적하는 이유는 영화의 단 한 가지 설정 때문이다. ‘원 위시 윌로우’, 이 기막히고도 단순한 설정 하나에 모든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은 이 설정에 절대 예외를 두지 않는 커리 바커 감독의 뚝심 덕분이다.

그 뚝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니키의 끔찍한 행동을 멈추게 해달라며 베어가 친구 이언(쿠퍼 톰린슨)에게 대신 소원을 빌어달라고 ‘원 위시 윌로우’ 장난감을 건넸을 때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때 이언은 “10억 달러나 생겼으면 좋겠네”라고 내뱉듯 말했고 갑자기 하늘에서 돈다발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 황당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관객들에게 절대 웃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막강한 소원의 효력에 질려버리게 된다.
 
영화 옵세션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사진=IMDB]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게 해 달라’는 베어의 소원은 그 워딩 그대로 이뤄져, 니키는 나 자신보다 베어를 더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자신을 향한 자해, 타인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니키 본래의 자아는 주구장창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지만 그 찰나의 절규는 베어에게는 닿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 ‘옵세션’의 또 하나의 공포는 베어의 지독한 회피성에서 나온다. 니키가 왜 저렇게 망가져 버렸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어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니키에게 설명해주거나 깨우쳐주기 위해서라도 진지한 대화를 해볼 법 했으나 대화는 겉돌기만 했고, 니키에게 소원을 빌게 해도 됐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니키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던 그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기보다 그 자리를 피해버리고 만다.
 
베어는 아마 니키를 온전한 자아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다기보다 자신이 그린 ‘로맨스’ 속 주인공으로서 대상화된 니키만을 사랑했던 것일 테다. 자신이 상상한 니키가 아닌 또다른 모습의 니키에게 당황한 베어는 그야말로 당황하기만 할 뿐 그 어떤 기본적인 대처도 못한다.
 
영화 옵세션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사진=IMDB]
 
베어의 지속적인 회피는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니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옵세션’을 다 보고 난 후 관객에게 주어진 다음 수순은, 상대를 온전히 한 인격으로서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가치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질 수순은,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극악의 커뮤니케이션 행동을 날마다 실행하는 빌런일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심플하면서도 무시무시한 공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방식을 심대하게 고민하게 해주는 영화 ‘옵세션’은 이제 27세의 어린 감독에게서 나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어떤 개념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까지 밀어붙이고 싶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다. 그것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동시에 현실을 더 솔직하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젊은 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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