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9·11 이후 25년…위기는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시대'를 열었다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9·11 이후 25년…세기적 기술혁신은 왜 일어났는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꼭 25년이 흘렀다. 4반세기다. 당시의 충격적인 장면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9·11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지만, 이제 세계에는 9·11 이후 태어난 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25년은 하나의 사건을 추모하는 시간을 넘어 그 이후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역사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세월이다.

필자가 지난 25년을 되돌아보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 국제정치의 변화 못지않게 기술의 변화다. 현대사에서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기술이 동시에 등장하고 발전하고 서로 결합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산업, 국가의 모습을 바꾼 시대가 또 있었을까. 2001년의 세계를 떠올려보자. 인터넷은 이미 등장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바일 인터넷은 없었다.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SNS도 없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상상의 영역에 가까웠고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의 기술이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조차 완성을 앞둔 단계였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기업들의 면면도 지금과 크게 달랐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기술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은 스마트폰으로 이어졌고, 다시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거쳐 딥러닝과 생성형 AI의 시대로 발전했다. 이제 AI는 인간의 지시에 답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이동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로봇, 공장과 결합하는 피지컬 AI의 시대도 열리고 있다.

반도체에서는 CPU 중심의 컴퓨팅에서 GPU와 HBM, AI 가속기가 전략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바이오에서는 게놈 분석과 정밀의료, 유전자 편집과 합성생물학이 발전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배터리와 전기차가 거대한 산업을 형성했다. 우주산업 역시 정부가 주도하던 시대에서 민간기업과 위성 네트워크가 경쟁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필자는 이 25년을 ‘세기적 기술혁신의 시기’​라고 부르고 싶다. 그러나 기술의 화려한 성과를 나열하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이처럼 많은 혁신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왜 기술혁신은 한두 차례의 붐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는가.

첫 번째 이유는 기술혁신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위대한 범용기술은 존재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만들었고 전기는 공장을 바꾸었으며 자동차는 도시와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그러나 21세기의 기술혁신에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하나의 기술이 다음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진 것이다. 반도체의 발전은 컴퓨터의 성능을 높였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은 인터넷을 확산시켰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을 연결했다. 그 연결에서 엄청난 데이터가 만들어졌다.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축적됐고 GPU라는 강력한 계산수단과 만나 AI 발전을 가속했다. 그리고 이제 AI가 다시 반도체를 설계하고 신약과 새로운 소재를 탐색하며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로봇을 학습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혁신이 컴퓨팅과 인터넷, 데이터와 AI로 이어지고, AI의 발전이 다시 반도체와 바이오, 로봇과 소재의 혁신을 촉진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른바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회로’​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은 인간이 기술을 이용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한다. 앞으로는 인간과 AI가 함께 다음 세대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기술발전이 점차 복리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2026년의 AI 상황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스탠퍼드대의 ‘AI Index 2026’에 따르면 세계 AI 컴퓨팅 역량은 2022년 이후 연평균 3.3배씩 증가했다. 자연과학 분야의 AI 관련 논문은 2025년 약 8만 건에 이르렀다. AI가 단순한 정보처리 도구를 넘어 과학기술 연구 자체를 가속하는 도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지난 25년이 역설적이게도 끊임없는 ‘위기의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9·11은 미국과 세계에 안보의 개념을 바꾸도록 요구했다. 미국은 2003년 22개 기관과 조직을 통합해 국토안보부를 출범시켰다. 정보공유와 사이버보안, 국경관리, 감시와 탐지 등 새로운 기술적 능력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9·11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멈춰 세웠다. 이어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충돌이 이어졌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역시 세계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때마다 기술은 문제 해결의 최전선으로 호출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감시와 통신, 위성과 무인기 기술을 자극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디지털 금융과 플랫폼 경제가 성장했다. 코로나19는 백신과 바이오 기술뿐 아니라 클라우드, 원격근무,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전환을 단기간에 확산시켰다. 미·중 경쟁은 반도체와 AI를 단순한 산업의 영역에서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값싼 드론과 위성통신, AI가 전쟁의 방식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25년에는 이처럼 또 하나의 순환구조가 작동했다. 위기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면 국가와 기업이 자본과 인력을 투입했고, 기술은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다시 새로운 산업을 낳고 국가와 기업 간 경쟁을 촉발했다. ‘위기의 연쇄’와 ‘혁신의 연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9·11이 지난 25년의 기술혁명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터넷과 반도체, 바이오와 디지털 기술의 기본적인 흐름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9·11의 역사적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이미 진행되던 디지털 혁명에 안보와 국가경쟁,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새로운 가속장치로 결합되는 시대를 상징적으로 열었다는 것이다. 기술이 경제성장의 수단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안보, 패권을 결정하는 전략자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5년을 세 단계로 나눠볼 수도 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가 ‘디지털 기반의 시대’​였다면, 2008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결과 데이터의 시대’​였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SNS와 플랫폼이 세계의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면서 인간의 행동과 경제활동이 거대한 데이터로 축적됐다. 2020년 이후에는 전혀 다른 국면이 시작됐다. ‘지능의 시대’​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반도체, 클라우드와 컴퓨팅 능력이 AI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결합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기계는 인간의 언어를 대규모로 이해하고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AI는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에서 코딩과 과학연구, 기업경영과 제조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25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최첨단 AI 모델의 90% 이상을 기업이 개발했고, 조직의 AI 이용률은 88%에 이르렀다는 조사도 나온다. AI 혁명이 연구실을 넘어 산업과 사회의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5년의 기술문명은 결국 디지털화에서 연결로, 연결에서 지능화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지능화에서 자율화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그렇다면 기술혁신은 이제 정점에 도달한 것인가. 필자는 오히려 반대로 본다. 앞으로 기술혁신이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AI가 바로 그것이다. AI는 이미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며 신약 후보와 새로운 소재를 탐색한다. AI를 활용한 과학 논문의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직 AI가 인간 과학자를 대체한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복잡한 연구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에서는 여전히 인간 전문가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왔다. 앞으로는 인간과 AI가 함께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이 다시 더 강력한 AI를 가능하게 하며, 그 AI가 다시 기술혁신을 가속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01년부터 2026년까지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나온 25년은 기술혁명의 완성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술혁신의 자기증폭 시대’가 시작된 첫 25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9·11 25주년을 맞는 오늘 세계는 당시와 전혀 다른 위험 앞에 서 있다. 25년 전 가장 큰 공포가 테러 네트워크였다면 지금은 AI 패권경쟁, 반도체 공급망, 사이버공격, 드론전쟁, 기후위기, 에너지와 핵심광물 확보가 국가안보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기술과 경제와 안보의 경계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떤 기술을 따라갈 것인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다음 25년의 기술혁신 자기증폭 회로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만 잘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전력과 에너지, 로봇과 바이오, 소재와 제조업, 그리고 인재와 자본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어느 하나의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들 기술이 서로 다음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지난 25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쩌면 이것인지 모른다. 혁신은 더 이상 혼자 오지 않는다. 혁신이 혁신을 부르고, 기술이 기술을 만들며, 위기가 다시 혁신을 재촉한다. 2001년 9월 11일에서 2026년 9월 11일까지 25년. 인류는 이 짧은 시간에 인터넷에서 AI까지 왔다. 그렇다면 다시 25년 뒤인 2051년 9월 11일,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필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지난 25년을 ‘세기적 기술혁신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목적은 과거를 정리하는 데 있지 않다. 다음 시대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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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챗GPT}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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