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메모리 초격차, '반도체 동맹'의 힘으로 지켜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기술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최신 장비를 먼저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 개발과 표준 마련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이다. 메모리 초격차를 지키는 경쟁의 무대가 개별 기업의 제조 역량에서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전체로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ASML이 주도하는 대형 마스크 컨소시엄에 참여해 미세공정 기준으로 자리잡은 기존 6인치 포토마스크(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틀)를 12인치로 확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동시에 2028년 첨단 D램 양산에 업계 최초로 하이(High)-NA EUV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2028년 D램 양산에 하이-NA EUV를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12인치 마스크 관련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 중이다. 

하이-NA EUV는 기존 EUV보다 더 미세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노광 기술이다. 여기에 대형 마스크를 결합하면 생산성을 높이고 제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ASML과 TSMC는 12인치 마스크 시범 생산라인을 2031년까지 구축하고 2033년 본격적인 양산 준비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과정에 조기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장비 도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향후 반도체 제조의 규격과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SML의 EUV 장비 사진ASML
ASML의 EUV 장비. [사진=ASML]


한국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D램과 HBM 등 메모리 분야에서 축적한 공정 기술과 양산 경험은 쉽게 따라오기 어렵다. 다만 중국의 추격세를 감안하면 안심해서는 안 된다. CXMT와 YMTC 등 중국 메모리 기업들은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아직 한국과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만,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쌓고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도체 경쟁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메모리만 잘 만든다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첨단 노광장비, 소재·부품, 설계,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소프트웨어와 AI 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야 한다. 특히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빅테크와의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앞으로는 빅테크가 요구하는 HBM과 차세대 메모리를 단순히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 개발 초기부터 함께 설계하고 새로운 메모리와 패키징 기술을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를 넘어 기술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정부도 우리 기업이 글로벌 협력망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내 투자가 늦어지지 않도록 규제를 정비하는 것도 시급하다. 기업의 경쟁력을 정부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정부의 몫이다. 

메모리 초격차는 영원한 권리가 아니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경쟁자는 끊임없이 따라온다. 이제 격차를 지키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의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ASML·TSMC·빅테크 등 글로벌 선도 기업과 기술 생태계를 촘촘하게 연결해야 한다. 혼자 앞서가는 기업보다 함께 기술의 방향을 만드는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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